영웅본색 이후 중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와호장룡과 영웅을 비디오로 빌려보고, 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을까 두고 두고 후회를 한다.
영화를 보러 언제 갔지? 어느 비오는 날 극장가를 서성이다 술만 마시고 온 뒤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가 찿은 적은 없는 듯 하다.
혼자보는 영화. 멋적어서가 아니고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 온 뒤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허전함을 감당할 길이 없어 못 간다.
친구와 보는 영화. 십수년 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 괜찮다는 평을 듣고 기아 농구단에서 연일 합숙훈련을 하다 외박 나온 추일승과 서울극장을 찾은 적이 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추색완연한 뉴욕의 거리가 화면 가득이 나오는 엔딩에서 이 영화는 남자와 볼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드디어 불이 들어오자 주변은 온통 쌍쌍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는 사람이라도 보면 일승이와 나를 동성연애라도 하는지 알까봐 얼굴을 붉히며 복잡한 계단을 일행이 아닌 듯, 멀직히 떨어져 나왔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쪽팔리다는 말을 일승이와 나누는 순간, 누군가 내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를 한다. 공군파이럿으로 있는 병엽이의 목소리. 부인과 함께 해리샐리를 보고 나오다 나를 보게 된것이다.
상시 비상대기를 해야 하는 파일럿이라 서울에서 보기 힘든 병엽이를 종로거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윽고 병엽이부부는 나에게 시선을 거두고 내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혼자서 왔어?"
"어, 아니 저기 말야."
"야 일승이 아냐. 너하고 둘이서 보러 온거야. 에라이..."
십수년이 지난 일이라 웃고 넘기는 추억이 되었지만, 이 소문은 동창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일승이는 결혼할 여자 찾기에 적극 나서게 되어 지금의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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