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世上萬思

지리산 피아골산장에서

오체투지해무 2009. 2. 12. 17:53


잎새 끝에 단풍이 살짝 들 무렵 피아골 산장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때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훌쩍 산행을 다녀 오는 것은 고독이니 우수니 사치스러운 감정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고 여럿이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유난히도 싫어하는 모난 성격 탓이다.

혼자 산행에서 가장 편할때가 밥을 먹는 일이다. 시장하면 퍼질러 앉아 행동식을 먹기도 하고, 준비해온 재료로 찌게며 밥을 해먹기도 하는데 설겆이를 싫어하는 탓에 코헬에는 언제나 여정중 해먹은 반찬의 종류를 추측할 수있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라면을 두개에 물은 한개 끓일 양만큼만 넣는다. 스프는 하나 만 넣고

조금 걸쭉해진 국물을 몇모금을 남았을때 일이다.

직장 동료인듯 3명의 일행이 점심으로 라면을 해먹고 남은 국물을 버리려다 내 눈치를 살피다 반이나 남은 라면국물을 들고 내게 와서 물어본다.

"저 이거 버리려면 어디다 버려야 하나요?"
짜증난다. 지저분한 그릇이지만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개밥에도 쓰이지 않을 라면 먹다 남은 것을 들이밀고 버릴 곳을 물어보는 가련한 자연보호의식.

" 산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잔소리해봐야 잔소리일뿐이다) 화장실에 버리세요."

피아골 산장에는 가끔씩 함태식선생님이 자리를 비울때 그 동생분이 산장 관리를 한다. 상황을 보고 있던 동생분.

내 이야기를 듣고 화장실로 코헬을 들고 가다 함선생님 동생분 한테 일갈을 듣는다.

"그거 갖고 어디 가는거야?"
"라면이 좀 남아서 화장실에 버리러 가는데요."
"어디다 버리겠다는거야. 똥 보다 더 더러운 라면국을...화장실이 음식물 버리는데 인지 알아. 똥은 배 속에서 한번 썩어 나왔지. 음식물을 그냥 버리면 그게 썩으면서 얼마나 자연을 오염시키는지 알아. 저기 저 혼자 온 사람 봤지."

시선이 일제히 라면국물을 홀짝이고 있던 나에게 쏠린다.
" 산에 와서는 먹을 만큼만 음식을 해야지. 남은 음식은 똥 보다 더 환경을 오염시킨다는거 모르나. 마셔 버릴 생각하지 말고 다 마셔."

음식 끝에 버릴 곳을 몰라 들이 민 코헬의 라면을 보며 입맛이 살짝 가셨는데 함선생의 동생 분은 똥 보다 더 더러운 라면 국물 운운하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른다.

피아골 산장 앞의 동생 분, 샘 터 부근에서 마지막 라면 국물을 마시려던 나, 먹다 남은 라면을 들고 화장실을 향하며 가고 있던 그 사람.

나는 똥 보다 더 더러운 식은 라면 국물을 꿀꺽 삼켰다.

그 3명은 라면국물을 앞에 두고 이걸 마셔야 하나 어쩌야 하나 망연자실 그릇과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지켜보던 동생분. 딱해 보였는지 다음 부터는 산에 와서는 식사량을 맞춰서 하라며 화장실에 버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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