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대로 오후가 되니 체감 기온이 뚝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겨울에는 추워야 제맛이다. 눈이 펑펑 와줘야 할텐데... 겨울가뭄이 극심해서 산에 가면 먼지가 풀풀 날린다.
종각역을 내려 라메르갤러리를 시작으로 몇몇 전시회를 둘러본다.
" 안국역 3정거장 전이야."
" 인사동 입구에서 전화해."
" 신설동이야. 금방 도착할테니까 빨리 고갈비집으로 와."
" 거기 춥고, 생선 굽는 냄새 증말 싫다."
" 잔소리말고 와."
" 양꼬치 어때? 과메기나 굴찜은 겨울에 먹어줘야된다구."
" 고갈비에 막걸리 먹고..."
두시간을 꼬박 둘러봤더니 수술한 발도 아파오고, 벌써 갤러리 문을 닫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철수와 고갈비집에 자리잡고 앉아 기다리기로 한다.
여기서 잠시 전해져 오는 피맛골의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피맛골은 종각을 기준으로 동피맛골과 서피맛골로 나뉜다.
고갈비집은 금강제화 뒷골목 중간 쯤에 자리잡은 곳으로 내 기억으로는 대학교 일학년 때의 어설픈 기억이 있으니
그 이전부터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피맛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는 벼슬아치 행차가 많았던 길,
유세 떠는 꼴 보기 싫은 백성들은 대로를 나두고 뒷길을 이용하게 됐고, 그에 따라 음식점이 발달하게 되었다.
말을 피한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 피마거리, 그게 피맛골 이름의 유래이다.
화랑가를 거닐다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
간판도 없이 고갈비집이라고 불리지만
엄연히 와사등이라는 상호가 있는 곳이다.
와사등
-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김광균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悲哀)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임연수 튀기는 냄새가 거의 죽음이다. 왝~ 우에에에엑!!!
철수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까지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임연수 혹은 이면수라는 물고기에 대해서
`쥐노래미과에 딸린 바닷물고기`
이면수는 찬물에 사는 어종으로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북동부에 분포한다. 관북지방(마천령북쪽, 즉 함경 북도 지방)에 사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물고기를 잘 낚았다는 데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비롯했다. 옛날 강원도 동해안에 사는 부자가 비싼 이면수로 쌈만 먹다가 망했다고 하여 `이면수 쌈 먹다가 천석꾼이 망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맛이 좋고 비쌌다고 한다.
그래도 분위기 만큼은 있다.
안주만 좀 내 입에 맛는거 이를테면 장어, 복불고기, 송이구이, 영덕 대게 이런거만 있다면... 돈 없어서 못 사먹을거다. ㅋㅋ
이집의 특징은 인원수만 말해주면 알아서 임연수 한마리와 막걸리를 양재기 째 나온다.
그외 안주로는 변태떡, 생두부(김치없음)이 되시겠다.
첫추위가 찾아 온 어느날 영재와 이집을 찾았다가 달달달 떨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날 추위도 장난 아니게 춥다. 그나마 난방을 하고 이곳 저곳 문풍지를 발라놔 그때보다는 온기가 있다.
거기는 왜 보라는 거냐 !
바람의 전설 태휘가 풍성한 바바리코트를 입고 들어서자
"휘이잉~~~~"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너는 여자, 나는 남자. 여자와 남자가 어리얼싸 바람이 난다. 얼싸좋네 아 좋네 군밤이여~
태휘가 지한이 한테 뭔가 부탁을 해서 어렵사리 찾아왔다.
" 고갈비집이라고 해서 갈비집을 찾았더니 뭐야 이거~ 간판도 없는 집에서..."
약속이 있어 가봐야 한다면서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발길이 안떨어지나 보다.
" 가봐야 된다면서..."
" 먹고 더 먹을꺼야?"
" 이거만 먹고 과메기 먹으러 갈꺼야."
" 그럼 그때 같이 일어서지."
철수와 태휘가 식은 생선 튀김을 참 맛있게 먹는다.
음식 맛있게 먹는 사람이 복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삼청동에 괜찮은 라이브 재즈바가 있다고
거기서 양주 한병 사라니까 그거 괜찮겠단다.
D-day는 지한이 생일이 되시겠다.
지한이는 저녁 접대가 있어서 자리를 떠나고,
우리는 과메기 찾아 삼만리는 아니고
20 여분을 찾아 헤멨으나, 찾아 낸 맛집에는 이미 과메기 손님으로 만원.
대충 종3 뒷골목 목살구이와 갈매기살 맛있는 골목으로 데려가려는데
태휘가 방향을 튼다.
과메기 먹기로 했으면 먹어야 한다는 거다.
날도 추운데...
대략 십오년 단골인 고창집 목살구이에 콩나물 된장찌게, 서비스 돼지껍데기 크하하~~~
결국 피카디리 극장 옆 횟집에서 과메기 발견.
따땃하니 방석을 깔고 앉자 얼었던 얼굴이 녹으면서 화끈거린다.
얘들아 아~ 과메기 한쌈!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꽁치로도 만든다.
꽁치가 잘잡힌 해에는 청어가 안나고,
청어가 잘 잡힌 해에는 꽁치가 안잡히는게 바다의 법칙이라는 설명을 포항 현지 어민에게서 들은 젖이 있다.
(참 희안하네 적이라고 쳐도 자동으로 젖으로 고쳐지네. 거참 희한하네.)
청어나 꽁치의 눈을 지프라기로 꿰어 겨울바다바람에 말리면
불포화지방산과 DHEA 성분이 생물일때 보다 몇배 늘어난단다.
눈을 꿰었다 해서 관목어(貫目魚) 그래서 과메기라 부른다.
4~5년 전만 해도 서울사람들에게 과메기는 낯선 음식이었다.
겨울철 포항 죽도시장이나 구룡포에 가면
오로지 이 안주로만 술을 먹는다.
과메기 한점에 소주 두잔이라는 말도 있다.
비려서 못먹었는데, 고등학교 동창들이 해마다 겨울이면 박스채 갖다놓고 술을 마시는데
깡소주를 마시다 할 수 없어 먹어 본 것이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씹다 보면 고소한 맛 뒤에 비린맛이 느껴지지만,
나 처럼 육고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불포화지방산은 필수,
건강생각한다고 꾹 참고 먹는다.
과메기 말리는 덕장에 가보면
햇볕 따스한 날 과메기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거 참, 다 좋은데 새벽에 또 난리나게 생겼다. 잘먹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소식이 팍팍 온다.)
과메기는 비린 생선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추, 마늘, 파, 마늘쫑, 배추 없이는 잘 못먹다가,
요새는 날로도 잘 먹는다.
미역이나 다시마는 비린내가 나서 패쓰...
많이들 먹어~ 부인한테 사랑 받을껴.
밖에 나가서 제 아무리 인기 좋아야 부인이 몰라주면 허당이야.
좀처럼 친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언과 충고, 으르고 뺨치기가 테이블을 넘나든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다고 우울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오십이 내일모레다.
서른 아홉살일 때도 그랬는데, 마흔 아홉살이면 기분이 얼마나 묘할까?
사십대를 누릴수 있는 해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아홉, 스믈 아홉일때는 좋았는데 그 다음 부터는 막장에 다다른 이 기분은 도대체...
전철 다닐때 헤어지자고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철수가 선물을 내민다. 정성이 가득 담긴...
" 속물적이지만 어떠랴 세상이 그러한걸, 돈 많이 벌어야 친구 맛있는 것도 사주고, 기분도 내지.
올 한해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자."
태휘한테 약속 받아낸게 하나 있다...양꼬치에 청도맥주
도대체 숯불하고는 원수를 졌는지, 부침게에 막걸리 아니면 끽해야 수육이다.
태휘 말을 잘들으면 자다가 떡이 나온다는 말에 코가 꿰어 좌지우지 당하고 있지만,
안주와 주종, 술 먹는 장소까지 적어도 세번에 한번은 내가 하자는데로 해줘야 되는거 아닌가.
해서 담에는 무조건 양꼬치에 칭따오다.
홍대클럽도 올해 지나면 정말 출입하기 힘들다. 락카페라도 가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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