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世上萬思

페북 문윤정님의 안철수에 관한 글.

오체투지해무 2017. 4. 26. 00:39

대한민국 엘리트의 민낯 - 어제 안철수의 토론을 지켜보며, 많은 분들이 의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의대 출신에, 한국 최초의 IT 스타, 한국인 최초의 부부 동반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 게다가 대선후보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을 가진 진골 성골 엘리트의 민낯이 어처구니 없게 초라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 개인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그를 만든 한국의 엘리트 생산시스템은 문제 삼아야 한다. 어제 우리가 목격한 안철수의 모습은 우리 주변(적어도 내 주변)에서 너무 비일비재 목격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유아론적 과대망상에 빠진 이 인물은 대한민국의 학벌주의가 만들어낸 역작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인간적, 사회적 검증을 무사통과하고, 컴퓨터 전문가라는 이유로 철학도 비전도 없는 미래담론을 브랜드로 장착할 수 있었다.

 

이름만 있고 내용은 없고, 이미지만 있고 실체는 없는 가상의 엘리트(virtual elite)는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있다. 단언컨대 교수, 의사, 공학자들의 상당수가 고속성장시대에 시험과 학벌 이외에는 어떤 단련도 검증도 거치지 않은 신기루 엘리트들이다. 물론 나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자기 전문분야 외에는 참담할 정도로 무지하고, 사회적 소통능력은 전무하고, 윤리적으로 아둔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검증하고 성찰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해 자신의 진짜 모습에 무지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대통령도 노벨상도 원하기만 하면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성장불능자들이다.

 

이건 단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 스스로 성장을 멈추지 않고는 시스템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머물러야 생존 자체가 가능했을테니까.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요구를 단 한번도 거스른 적 없는 착하고 똑똑한 엄친아, 엄친딸. 우병우, 조윤선이 아마 그랬을거다.

 

물론 서울대 출신 중에는 치열한 단련과 처절한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쳐 존경할만한 공적 인재로 성장한 분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조국의 미래를 보려면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는 경구가 영 엉뚱한 소리로 들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비율은 나날이 줄어들고 빈껍데기 가상 엘리트들의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벌 자체를 문제 삼아 서울대혐오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공적 인재에 대한 담론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거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대입성적이, 고시패스가 인간의 자격에 대한 유일무이한 잣대로 군림하는 세상의 비극을 끊어낼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자기망상에 빠진, 체제의 가여운 피해자이며 동시에 생각없는 가해자인 그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차원에서도 말이다. 안철수는 자신이 망신을 당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있을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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