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맛따라멋따라

홍대 곱창전골

오체투지해무 2010. 7. 2. 15:31

 

곱창전골의 DJ box

 

 

2월도 끝나가는 어느날이었다.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마음은 기댈 곳이 없고, 불러 주는 이도 한동안 없는 어느날 바람 결에 나부끼는 비닐봉지 처럼 신촌의 허름한 골목길에서 닭꼬치를 안주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간판도 없고, 안주와 서빙을 함께 하는 아주머니가 한 분.

일용직 노무자, 인근 가내수공업의 하루 일을 마친 공원들, 혹 졸업 했거나 재학 중인 가난한 여학생들이 같은 안주에 소주를 홀짝 거렸다.

들려오는 음악도 없이, 술집이라고 하기에도 차분한 작은목소리의 술꾼들이 두런두런거리는 21세기의 공간 같지 않은 곳.

 

80년대 어느 선술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인분에 오천원하는 닭꼬치의 속은 해동이 안돼 덜 익었고, 양념은 캡사이신을 넣어서 인지 정신없이 혀 끝을 아리게 만들었고, 예리한 칼 끝으로 가슴을 저미듯 속을 아프게 했다.

 

두병째의 소주를 마시다 스마트폰에 담긴 브루스곡을 스피커를 통해 틀여놨지만, 두테이블 건너 여학생 둘이 가끔 음악에 신경을 쓸 뿐 아무도 내 음악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묘하게 형광등 밝은 조명 아래 선술집과 삶에 찌든 노무자들과 가끔 이쪽테이블을 힐끗 거리는 여학생 둘이 브루스 음악과 잘어울려 한편의 뮤직 비디오라도 보는 듯 했다.

 

연일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에 덜 익은 닭꼬치보다 매운 콩나물국물에 수저가 더 많이 가고, 콩나물국이 비워질 수록, 취기는 더해져 갔다.

 

소주 두병을 다 마시고, 투가리에 담긴 콩나물국을 다 비우고 술집을 나왔어도, 거리는 여전히 살풍경스럽게 춥고 갈 곳은 없었다.

 

연대 앞을 거닐다 홍대철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발길을 홍대로 돌렸다.

그리고 찾아 들어 간 곳이 곱창전골.

 

6,70년대 가끔은 80년대 가요만을 들려주는 바.

혼자 바에 앉아 꽤나 많은 음악을 들었고, 옆자리를 오가는 사람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없이 흠뻑 취했다.

 

밖에는 눈이 하얗게 왔고, 대중교통이 다니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

또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는 여행자라...

 

며칠 전에 역시 혼자 곱창전골에 들렸다.

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 서유석의 ' 담배 '를 청해 듣고 다른 사람들이 신청한 동시대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