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다시 지리산 주능선 백리길

오체투지해무 2009. 10. 23. 15:39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가 자주 있을지 알았더니, 거의 두시간 간격.

구례행 버스가 출발한지 십여분 정도 지났다.

전주에 왔으니 터미널 인근에서라도 비빔밥을 맛보고 갈까 싶은데, 맞바로 남원 가는 버스편이 있다.

남원에서 구례 가는 버스편은 많을 듯 싶어, 남원행 버스에 올라탔다.

전주시내를 빠져 나가기 전 한옥마을 코리아나호텔 근처에 간이정류장이 있는 것을 알게된다.

이년 전 모악산을 가기 위해 구이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했을때 봤었던 정류장이다.

 

전주에서 남원까지의 요금은 6,000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시간은 한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 하다.

남원 터미널에 9시 조금 못미쳐 도착.

구례까지 가는 버스편이 10시 30분이 되어야 있다.

전주에서 비빔밥 먹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뒤 맞바로 구례-화엄사 행 버스를 타는 것과 시간 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간밤에 마신 술과, 미리 해장한다고 먹은 왱이집 콩나물국밥과 모주 덕분에 기상 후 움직인지 꽤 된 시간이지만 시장끼를 느끼지는 않는다.

 

오래전 일이지만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한루 까지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았던 듯 하다.

버스 출발 10분 전까지 도착하면 되니 한시간 반의 여유가 있다.

다만 노고단 들려 뱀사골까지 갈 도착할 시간과, 뱀사골 산장이 공사 중이라고 했었는데 운영을 할까도 염려된다.

일박 산행이던, 무박산행이던 해마다 지리산을 찾다 발길을 끊은지 8년.

피아골산장은 지금도 산행객들이 쉬어가는지 소식 전해주는 사람이 없다.

 

광한루로 걸어가면서 오늘 걸어야 할 지라산 코스에 대해 머리에 그려본다.

뱀사골 산장이 공사 중이라면 반야봉까지 갔다 노고단 산장에서 묵는 경우,

피아골 산장에서 묵고 피아골 단풍감상과 연곡사 사진을 찍고 상경하는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연하천산장에서 숙박하고, 음정에서 시작되는 칠암자 코스를 밟는 경우.

가능한 코스를 이리 저리 그어본다.

 

광한루의 입장료는 2,000원. 광한루와 오작교 사진 몇장 찍고 발품도 쉬어가지 못하는 비용치고는 비싸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광한루를 언제 다시 들려 볼 것인가 하는 계산이다.

 

완월정 앞에는 화려한 국화가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공원 이곳 저곳에는 공원관리하는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분주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작교도 거닐어 보고, 오래 전 들렸던 춘향사당에서 영정 그림도 감상하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지리산 들어가려는 마음이 급하다.

 

십여 년 전 지리산을 오가는 길에 잠시 들려 보고, 취재 차 두어번 들려보고,

여러차례의 방문이지만 마음 편안히 광한루원을 거니는 것은 그나마 버스 시간을 목전에 둔 지금인 듯 싶다.

여행길에서도 그렇고, 취재길에서도 그렇고, 일상을 벗어난 여유를 이곳 광한루에서 느껴 본 적이 없다.

이번 방문 또한 6끼의 식사와 산행장비, 카메라가 들어 있는 배낭 한 번 내려 놀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내게 있어 광한루는 지나치는 길에 빼놓기는 어딘지 석연치 않고, 한, 두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어딘지 모자란 여행지라고 취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후문을 이용해 왔던 길을 되돌려 남원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그사이 길이 눈에 익어서인지, 같은 거리임에도 심리적인 거리는 짧게 느껴진다.

이쯤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곱창전골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는데, 긴가민가 싶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야간산행을 해서라도 연하천산장까지 운행을 해야 다음날 일정을 정할 수 있겠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지만, 이곳까지 내려 온 이상 지리의 능선은 밟아봐야 한다.

 

터미널 앞 3,000원 하는 비빔밥을 먹으며 전주 비빔밥 생각이 간절하다.

남원10시 30분 출발, 11시 40분에 구례에서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를 오르는 버스가 출발한다.

시간이 늦어 환승이 되지 않으면 두시간의 공백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반야봉이고 연하천이고, 화엄사로 코스를 돌려 천은사까지 구경하고 노고단에서 자야 한다.

오늘 저녁은 연하천 산장에서 자는게 최종목적이다.

취재의 압박도, 원고 마감의 급박함도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한 산행인데, 뭔가에 자꾸 쫒기는 것이 못마땅하다.

 

비빔밥에 얹어 나온 고추장은 회 찍어 먹는 초장용 고추장인 듯하고,

밥은 미적지근한데다 딸려 나온 국물은 오뎅국물이다.

적어도 6끼의 식사를 김치와 야채 없이 해야 할텐데...

노고단에서 점심으로 김밥 두줄을 부탁한다.

 

인근 마트에 들려 랜턴 종류를 살펴보는데, 가격이 비싸거나, 용도에 맞지 않는다.

헤드랜턴이 두손을 사용하는데 용이한데, 제조원을 알 수 없는 수입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벽돌 크기 만한 국내산 손전등은 배낭에 들어 갈 자리도 없다.

등산객의 유동인구가 아무래도 많은 구례버스터미널 인근 가게에서 구해보기로 한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데 파리바게트 제과점에서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은 빵을 3,000원에 판다.

아마 어제 팔고 남은 빵을 싼값에 처분하려나 보다.

행동식 하나 변변히 준비하지 않은 탓에 그 중 마음에 드는 비닐봉지를 배낭 속에 우겨 넣는다.

 

곡성 경유 구례행 버스에는 연로하신 노인네 몇 분이 손님의 전부.

연세와 체력에 비해 과하다 할 만큼의 짐을 들고 들어오는 시골의 노인들.

그나마 조금 나은 노인네가 더 연로한 노인의 짐을 들어준다.

대부분 병원에 들려 치료를 받거나 진료를 받고, 필요한 물건을 장 본 뒤 돌아가는 길이다.

 

피곤했던지 곡성까지는 꼬빡꼬박 고개를 제끼며 잠이 들었다.

들녘에는 벼가 익어 황금들판을 이루고, 햇살은 눈부시지만 청량함이 묻어난다.

 

 10시 30분 남원을 출발한 버스는 꼭 한 시간을 걸려 11시 30분에 구례시외터미널에 정차했다.

11시 40분 구례발 노고단행 버스가 바로 옆에 정차하고 있다.

십분의 여유 동안 어둠을 밝혀줄 랜턴과 물휴지를 사야 한다.

얼핏 둘러 본 구례터미널 상가는 십여 년 전에 비해 한 눈에도 많이 죽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찬이 맛있었던 식당도 묻을 닫은지 오래 인듯 하고, 가게의 물건들도, 그 가게들의 주인 얼굴에서도 생기를 찾아 볼 수 없다.

 

시간이 있었다면 그렇게 느끼게 된 나름대로의 연유를 짐작해 볼 만한 자료들을 직관적으로 수집해보겠지만, 금방 출발해야 하는 탓에 썰렁해진 터미널 상가에서 오직 랜턴에만 관심을 갖는다.

 

제품과 가격은 남원의 마트에서 본 것과 똑같다.

가래떡 굵기만하고 크기는 그 1/3만한 것의 중국산 손전등이 5,000원. 여유분의 밧데리와 물휴지와 함게 8,000원에 구매하고 성삼재행 버스를 탄다. 요금은 3,200원.

 

눈에 익은 화엄사 가는 길에 잠시 들려 건장한 체격의 등산객 한 명을 태우고, 성삼재를 오른다.

성삼재 도로를 만들어서 가장 이익을 본 단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천은사이다.

성삼재 도로에서 매번 겪는 길이지만, 겪을때마다 부조리하다고 생각되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 것이 천은사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십여 차례 이상의 성삼재 통과 때마다 들리지도 않는 사찰의 입장료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것은 어쩔수 없이 뜯기고 마는 한여름 모기에 대한 헌헐 같고, 깡패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상납하는 돈 같기도 하다.

사찰 입장료를 내야 하는 국,공립공원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 속으로 그 사찰에 대해 욕을 해된다.

부처님에게 하는 욕은 절대 아니다.

그 돈을 쓰는 사찰관계자에게 하는 욕이다.

 

 

천은사 입장료를 낼 때는 여타의 사찰 입장료를 징수하는 다른 사찰보다 10배 만큼 욕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절대 잘먹고 잘살라고 안한다. 못먹고 못살라고 한다.

 

 

이곳을 레간자로 오르다 오토트랜스미션이 아작나 인월에서 칠십만원을 드려 교환한 적이 있다.

그때가 2001년 초인듯하고, 일년 후 남원을 들려 실상사, 추송리 서암을 들렸던 듯 하다.

이젠 기억의 순서가 서서히 움직이고, 뒤바뀌기 시작한다.

버스 앞좌석에서 보는 성삼재의 커브는 몇 번의 왕래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고, 위험천만하다.

몇몇 코너에서는 반대쪽 차선 안쪽까지 바짝 들어서서야 버스의 회전반경이 나오기도 한다.

 

성삼재 회차 지점에서 내리자 바람을 몰아치고, 체감온도는 한겨울이다.

그나마 반바지를 입고 올까 하다 입고 있는 산행바지 중 가장 얇은 바지를 입고 온 탓도 있다.

땀이 많은 탓에 산행 중에는 반바지를 입고 산장에서는 춘추계용 바지를 입어야 했으나,

늘어난 카메라 장비의 무게로 모든 여유분의 장비는 빼놓고 왔다.

 

 

성삼재에서 바라 본 상위마을

 

 

성삼재에 올라서 본 것은 십여차례가 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때라면 혹한기 상위마을에서 만복대를 올라 일몰 후 늦은 시간 바람과 눈가루가 휘몰아치는 휴게소에 혼자 서 있었을 때이다. (혹한기 지리산 종주기 링크)

하도 오랜만에 찾으니 어릴때 자란 동네 어귀에 찾은 기대감과 설레임이 인다.

 

가장 고생스럽게 올랐을 때는 처음 지리산을 찾아 노고단을 오를 때이다.

체격에 맞지 않는 배낭 끈은 어깨를 파고 들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팬티까지 적셨고, 오른쪽 Y자 인대가 터져 나간 다리는 질질 끌고 올라섰다.

 

혹한기, 당일 종주, 폭우 속 종주,  여러번의 지리산 종주 경험이 있지만 가장 고생스럽고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코스는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올랐던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의 코스였다.

그래서 그런지 성삼재에 서면 컨디션이 좋던 나쁘던 왠지 모를 긴장이 되고, 노고단 대피소 전 마지막 경사인 선교사 건물 오르막에서는 그때의 비맞고 오르던 기억이 빼놓지 않고 난다.

 

 

코가 땅에 닿는다는 코재도 수월하게 올라섰고, 이제까지 올라선 성삼재 노고단간 소요된 시간도 가장 짧은 듯하다. 체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가볍게 진 배낭 덕이다.

대피소 옆에 있던 펜션 같던 건물은 언제 헐렸는지 없어지고 평지만 휑하다.

취사장의 구조도 조금 바뀌어서 식탁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운무가 가득한 바깥은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치지만 취사장은 사람과 취사의 온기로 훈훈하다.

남원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테이블 건너편에서는 털복숭이 서양남자가 슬라이스햄과 치즈 몇장, 비스킷과 땅콩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사과 한알을 먹더니 윈드자켓을 꺼내입고 취사장을 나선다.

남원에서 구입한 천원에 한줄하는 김밥 두줄을 먹었지만, 포만감은 전해지지 않는다.

행동식으로 구입한 빵주머니가 있으니 그나마 든든하다.

 

13:00 노고단대피소 출발

대부분 노고단대피소에서 식사를 하고 오르느라 노고단까지 짧지만 은근히 가파른 경사에서 다리에 펌핑이 오기 십상이지만, 역시 배낭이 가벼운 탓에 이제까지 오른 어느때 보다 쉽게 올랐다.

전날의 숙취도 말끔히 없어진 듯 하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보행 중 현기증도 전혀 없다.

제2 노고단에서는 지리산케이블카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과 프래카드가 눈에 뜨인다.

 

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 설치 된 곳이 많다.

낙후 했던 중국만 해도 어떡해 이런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 했을까 할 정도로 기암절벽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그런나라는 그래도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케이블카 설치를 하면 안된다.

케이블카를 설치 할 만큼 국토가 그리 넓지 않다. 바위를 오르기 위해 볼트를 박는 것도 안된다.

사람의 발길이 이어져 안전사고가 난다고 철난간이나 안전로프를 설치하면 안된다.

자력으로 갈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한다.

환경보호 한다고 개떼 같이 모여 종주산행을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운문에 쌓여 시야가 채 30여 미터도 안되는 노고단에서 추위와 바람과 습기와 자본주의 논리에 맞서고 있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 식사는 했느냐, 후원 단체는 빵빵하냐, 수익은 어디서 나서 이 행사를 진행해 나갈 수 있느냐.'

 

묻고 싶은것은 마음 뿐 연하천 까지의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원추리 군란지 관목 숲으로 들어섰다.

 

 

운무에 쌓인 노고단대피소.

 

 

봄이면 주홍색 원추리가 지천에 깔리는 곳, 왼쪽으로 경사진 등산로의 돌뿌리 하나, 산행객들의 손잡이 역할을 하느라 맨질맨질해진 나무줄기,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 관목 숲을 빠져 나와 우측의 조난자의 영혼을 기리는 표지목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은 지리를 가까이 하지 못했던 물리적 시간의 흐름의 멀어졌던 거리를 축지법처럼 앞당긴다.

왕시루붕에서 돼지평전으로 오르는 관목 숲의 패쇄되다 싶은 통로를 보고서야 드디어 지리의 품 안에 들어섰다는 실감이 난다.

아 오랜만에 안아보는 여인의 몸놀림 같은 것. 몸이 기억하는 지리산.

 

 노고단 안부를 지나 돼지평전 만나기 전에 세워진 조난자의 묘비는 80년대 후반에 것으로 추정된다

심설기 피아골을 출발하여 노고단 산장을 찾던 고교생 5명이 눈보라로 인한 화이트 현상으로 방향을 잃고,

모두 동사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조난자의 묘비가 있는 곳에서 노고단 산장까지 느린 걸음으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임에도 기상악화로 조난을 당하고 만것이다.

 

 

 

왕시루 능선에서 돼지평전 오르는 길목.

 

 조난자의 묘비를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등산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이 왕시루봉으로 이어지던 능선길이다.

십수년 전 왕시루에서 일박하고 질매재에서 피아골산장으로 빠진다는 것이 그만 돼지평전까지 치고 올라왔다.

40kg의 배낭을 메고 거의 한시간여를 허리 한번 피지 못하고 관목 숲을 헤쳐 올라 온 곳이 돼지평전.

운무에 가렸다 열리는 능선길에서는 산발한 처녀귀신이라도 나올 듯 을씨년한 바람과 안개로 두려움 마져 갖게 했으나, 무엇보다도 타는 듯한 갈증으로 인해 임걸령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왕시루로 향하는 등산로는 이제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은 듯 관목으로 닫혀있다 싶이 한다.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은 등산로 중 한 곳이다.

 

 

피아골 삼거리 인근 구상나무 군락지.

 

구비를 돌때마다, 안부에 내려설 때 마다, 훤칠하게 잘생긴 나무를 만날 때 마다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주능선의 풍경. 2009년10월의 지리산 속에서 그 이전의 지리산 길 속을 걷는것만 같았다.

그때 스쳐 지나갔던 석유등짐을 지은 스님과 기계충이라도 걸렸는지 알았던 머리제 브릿지를 넣은 어린여자의 한톤 높은 목소리가 피아골 삼거리 인근에서 들리는 듯 했다.

 

" 혼자 산에 왔어요?"

" 아뇨, 뒤에 일행와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 노고단에서요."

" 그쪽은 피아골 쪽인데..."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산불통제기간 중 임에도 키를 넘는 배낭을 메고 뱀사골에서 노고단으로 홀로 산행 중인 이십대 후반의 당찬 여자. 당시만 해도 산에서 여자 만나는것이 쉽지 않았지만, 단독산행 하는 여자는 더더욱 보기 힘든 때였다.

 

임걸령 샘.

 

 비를 핑계로 임걸령 샘터 부근에서 이틀을 야영했었다.

처음 찾았을 때는 토굴에서 도를 딱는 다는 어떤이가 빨래를 하고 이었고, 어느 해에는 노트북을 켜고 주역공부를 한다는 한국판 히피 같은 젊은이 두명이 각자의 텐트에서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모습으로 보기도 했다.

국립공원 내에서 일체의 야영이 금지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산장 주변이나 샘 주변에서 야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아골의 단풍.

 

 잇달아 태풍이 남한의 이곳저곳을 할퀴고 다녔을 무렵 임걸령 인근에서 비를 피해 있다 피아골 산장으로 긴급히 대피한 적이 있었다.

산장에는 우리 일행 3명과 함태식옹 이렇게 넷이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텃밭에서 기른 열무에 된장을 찍어 먹기도하고, 함옹이 내려주는 콜럼비아 커피에 카루아를 섞어 먹기도 했다. 이제 까지 산장에서 지냈던 그 어느 순간보다 한적하고 느긋한 시간이었다.

노고단 호랑이로 소문난 함태식옹의 새로운 면을 알게되었고, 산장지기 삶의 여유를 더불어 만끽하게도 했던 그런 산행이었다.

이제는 함태식옹도 산장을 떠나 피아골 입구 탐방지원센터에서 지낸다고 한다.

 

노고단에서의 함옹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왕시루봉 외국인별장에서 하루를 같이 지냈던 인연이 있기도 한 분이다.

피아골의 단풍이 1할쯤 들은 듯 하다.

지리산이라는 산이름을 알기 전, 어렸을 때 들었던 영화제목 "피아골"에서 익히 들은 피아골.

태풍이 지난 뒤 찾았던 피아골 계곡에서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뼈자리게 느꼈던 곳.

피아골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서도 잠시 해지기 전 연하천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길을 옮긴다.

 

노고단에서 돼지평전을 거쳐 임걸령까지 표고차를 느끼지 못할 만큼 평탄한 길을 걸어서 인 듯, 임걸령을 지나면 길지 않지만 오르막길을 만난다. 숨을 돌릴 때 쯤이면 노루목삼거리가 나온다. 시계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반야봉 오르는 길은 지나치고 만다.

 

 

삼도봉.

 

구십년대 까지 다녔던 지리산 산행길은 찾았던 연도가 차례차례 기억나는데 이천년대 들어 지리산 주능선을 찾았던 일이 긴가민가싶다.

누구와 왔는지, 계절은 언제였는지, 사진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기억할 수 없거니와, 그때만 해도 필름카메라를 사용한 탓에 슬라이드 더미에서 찾아봐야 그마나 연도와 계절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의 꼭지점을 이룬 곳, 삼도봉에 올라서서 반야봉을 바라 본 적이 언제였던가?

종주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체력을 아낀다는 이유로 반야봉은 지나치기 일수였다.

이번 산행에서도 시계가 탐탁치 않다는 이유로 반야봉은 오르지 않지만, 삼도봉 표지석에서 한참을 바라본다.

 

지나가는 구름에서 비라도 후두둑 떨어질것 같다.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능선의 이름은 불무장등, 왕시루능선 사이에 피아골을 품고 있다.

인적이 드물어 산길이 희미하다는 이 능선을 마음에 품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불무장등이라는 네음절의 능선이름은 어딘지 육중함이 풍겨 나온다.

반야봉과 이어지는 이 능선의 이름은 반야의 또 다른 이름인 불모(佛母)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단풍이 깊게 들은 어느 가을 불무장등을 거쳐 반야봉에 올라 피아골로 내려서는 동선을 계획해본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는 충격이 수술한 왼쪽발목에 그대로 전해온다.

채 20kg이 안되는 배낭의 무게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약해진 왼쪽 아킬레스건에는 무리.

양손에 스틱을 사용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쪽 발목 탓에 자꾸 오른쪽 발이 계단을 먼저 내려서게 된다.

화개재까지 하염없이 내려서는 나무계단.

 

허옇게 맨땅을 들어내 놓고 있던 화개재 안부에는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헬기장 표시가 되어있는 곳에도 풀이 살아난다.

관리가 잘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구십년대 중반 혹한기 지리산을 찾았을  비슷한 시기에 뱀사골 산장이 지척에 있는 화개재에서 동상에 걸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대학생 두명을 지나던 스님이 발견하고 산장으로 옮겼으나, 한명은 깨어나지 못하고, 한명은 손과 발을 잘라내야 할 만큼 심한 동상에 걸렸다. 그들을 발견한 시각은 대략 오후 2시경 하루의 기온 중 가장 높을 때라 할수 있을때에 당한데다 산장에서 화개재는 체 200여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당한 변이라 더욱 소식을 들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뱀사골 산장이 없어지고 자연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가파른 길을 내려섰다 오르려니 짐작만 해 볼 뿐이다. 화개재 안부에서도 쉬지 않고 토끼봉 오르막으로 들어선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은근히 깔딱인 토끼봉이 의외로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까지 지리산행 중 가장 가볍게 진 배낭 덕분일것이다.

 

이전에 다녔던 지리산 산행에서의 배낭은 꼭 필요한 장비들이었지만 혼자 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들이었다.

1,600그램 침낭, 2~3인용 텐트, 우모복, 취사도구와 여분의 연료, 푸짐한 식재료들.

지리산 한 번 들어가려면 75리터 배낭에 하나 가득 지고 다니기를 당연시 했었다.

군대 시절보다 체력이 더 좋았던 시절이었다.

 

토끼봉까지 숨 몇 번 고르고 올랐다. 연하천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감이 안온다.

아마도 혹한기 체중의 1/2 무게 나가는 배낭을 메고 연하천에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했던 때만 기억 날 뿐이다.

총각샘 근처에서 쉬고 있던 등산객 두명이 나를 앞서갔다.

바위 틈으로 오르던 길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있다.

 

별 어려움 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오후 1시에 노고단 취사장을 떠나 오후 5시 20분에 연하천에 도착한것이다.

4시간 20분이 걸렸으니 중간중간 휴식한 시간을 계산하면 느린 걸음은 아니었던 듯 하다.

산장 주변은 저녁을 준비하는 등산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연하천산장의 해발고도는 1,440m.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온이 내려간다.

땀 흘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한기를 막기위해 얇은 파일자켓과 오버자켓을 입고 저녁 취사를 준비한다.

이박삼일 식사 중 두끼분의 쌀을 한꺼번에 밥을 짓는다.

충분히 불지 않은 쌀이기에 뜸을 오래 들여야 한다.

반찬으로는 즉석카레 한봉. 이번 산행에서 먹는 즐거움이란 없다.

지은 밥의 반을 다음 식사 몫으로 남기고, 카레에 밥을 비벼 우물우물 씹어 넘기는 것으로 저녁식사를 마친다.

 

지리산 산행 중 가장 염려하던 산장에서의 첫날 밤을 맞는다.

숙박비 8,000원, 담요 사용료 2,000원에 메트리스 사용료라고 1,000원을 더 받는다.

물품대여사용권 영수증에는 침낭 한장이 2,000원, 담요 한장이 1,000원이다.

침낭을 가져온 사람은 산장바닥에 깔려있는 메트리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분명 부조리한 처사다. 예전 같으면 납득할 사유를 들을 때 까지 따지겠지만,

돈 1,000원에 기분상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치고 만다.

 

노고단에서 비스킷으로 식사를 하던 외국인이 옆에 옆자리, 옆자리에는 구례를 출발 화엄사 입구에서 버스를 함께 탔던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

산장에서 주어지는 잠자리의 폭은 채 70cm가 되지 않는다.

산장의 소등시간은 8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빨리 산장을 나가라는 얘기다.

연하천은 외부 전력이 닿지 않아 자가발전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산장에 비해서 소등시간이 한시간 빠르다.

 

시월 중순 해가 진 뒤  해발 1,500미터가 되는 연하천주변은 살갗이 아리기 춥다.

옷차림은 가을 복장에 기온은 한겨울의 빙점 이하.

산장 안에 난방이 되고 있지 않은 탓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파일자켓에 경량다운쟈켓을 껴입어야 맘 편히 볼 일을 본다.

 

산장에서 화장실 가는 길 우측 산비탈, 명선봉에서 산장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묘지가 한 기 있다.

화장실을 가는 길에 그비날 아래 사람들이 모여 늦은 술자리라도 벌이고 있는지 알았다.

혹은 산장이 만원이라 비박이라도 준비하는 것일까?

헤드랜턴을 빼놓고 구례에서 중국제 값싼 손전등을 마련 한 탓에 광량이 산비탈 아래까지 미치지 못한다.

 

화장실을 나와 산장을 향하는데 뒷덜미가 써늘하다.

산장의 불빛에 의존해 산비탈 아래를 봐라봐도 희미한 불빛의 흔들림과 소란스럽지 않은 인적이 느껴진다.

산장관리인의 허락이라도 받아 비박하는 일단의 일행이 있으려니하고 산장으로 들어갔다.

 

홀로 산행에서 고역이라면 고역인 것이, 먹는 일과 자는 일이다.

운좋게 맘좋은 일행과 섞이며는 나름 취식의 외로움에서 벗어 날 수 도 있지만, 아는체를 해야하고, 접대성 멘트에, 포커페이스 조차 짓기 힘들때는 혼자인것이 편하다.

 

산장에서 주어지는 취침폭은 일인당 70cm, 배낭은 침상 머리맡에 박은 대못에 걸어놔야 발을 제대로 뻗을 수 있다.

노고단에서 행동식으로 점심을 들던 외국인의 국적은 헝가리,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하와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여행 중 이란다. 취미가 등산인지 대부분의 지니고 있는 장비들이 전문산악장비 브랜드를 지니고 있다.

화엄사 입구에서 노고단행 버스를 동승하고 온 경상도 말씨의 남자가 내 왼쪽에, 그 옆에 헝가리학생이 자리를 잡았다.

 

늦은 저녁을 마치고 100kg를 넘어 보이는 50대 남자 둘이 이층침상으로 올라온다.

저런 덩치의 사람이 옆에서라도 잔다면 그날 밤 잠은 다잤다고 봐야한다.

코고는 소리, 잠 덧, 이라도 가는 밤이면 온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한다.

 

적당히 술이라도 마시고 숙면을 취하는 체질이라면 스테인레스 보틀에 양주라도 담아 올텐데, 술을 한 잔 마시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체질이라 이번 산행에는 술 한 병 담아오지 않았다.

 

다행히 오른쪽 옆자리에 인원이 차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리를 넓게 쓸 수 있었다.

8시 소등.

 

추운데도 불구하고 산장 야외식탁에서는 산행 경험담을 주고 받으며 술잔이 오고 간다.

술이 과해지면 언성이 높아지고, 일행이 여럿이면 실수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영하의 산 중 추위에도 불구하고 식탁을 사이에 두고 술잔과 함께 이야기는 끊임이 없다.

9시가 조금 넘자 술자리를 정리했는지 산장 밖이 조용해진다.

 

상황에 따라 부럼움의 대상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다.

비좁은 산장에서 선망의 대상은 자리에 눕자 마자 죽은 듯이 잠자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일 수록 코를 심하게 골고, 이까지 곤다. 어떤 경우에는 자다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는 비좁은 산장 침상에서의 힘겨운 첫째날이 그렇게 갔다.

 

 

연하천 산장의 여명

 

강한 요의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0월 일출 시각은 대략 6시 전,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산장 문을 나서자 동녘 하늘이 붉게 달아오른다. 산장 앞 공터 묘지가 있던 산비탈에는 밤새 비박을 하고 짐을 정리하는지 희미한 불빛과 함께 움직임이 엿보인다.

수풀에 가려 천왕봉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붉은색과 푸른색이 마음에 들어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몇 장의 사진을 찍는 사이 산장 주변도 푸른색을 띠며 밝아진다.

화장실 가는 길 우측의 산비탈 아래 밤 사이 비박한 사람들이 짐은 챙겼나 싶어 살펴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 붙었다.

조금 전 까지 두런두런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느꼈는데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산비탈 위 묘지만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95년 처음 연하천을 찾았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산장지기에게 산비탈 아래 사람들이 있는것 같다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 귀신을 본 모양이구만..."

 

당시 산장지기 노시철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산장을 오르내리는 계단에 서리가 두껍게 내려 앉아 미끄럽기 십상이다. 계단을 오르며 미끌하며 허리를 삐끗했다.

언제부터 인지 일상에서 사소하게 허리가 뒤틀리고 나면 짧게는 십여일 길게는 한달 동안 허리를 쓰기 불편해진다.

무릅을 껴안는 자세를 취해주고, 허리를 앞으로 숙여 혹시나 꼬였을 허리 인대를 풀어주는 동작을 취한다.

산에 와서 허리 통증이 재발하면 하산 할 때 까지 불편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무래도 운동 부족인 듯 하다.

근육량이 줄어 들면서 사소한 충격에도 인대가 손상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통증을 수반한다.

 

 

 

연하천 산장의 아침.

 

지리산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산장 뜨락에도 햇살이 비추인다.

산비탈 아래에는 아무런 비박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간밤과 새벽에 본 것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서 인지 아침에는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다.

간단히 라면 하나를 끓여 먹고 연하천 산장을 나선다.

 

 

 

명선봉.

 

지리산을 처음 찾았을 때 서 있떤 명선봉 고사목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칼로 새겨지기도 하고, 낙서가 씌여지기도 하고, 나무 홈통에는 쓰레기가 박혀 있기도 했던 고사목이 쓰러져 있다. 언제인가 쓰러지겠지 하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빨리 쓰러질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막연한 기대 하나가 떨어져 나간것 같이 가슴 한 쪽이 휑하다.

 

명선봉을 내려서 부자바위라고도 하고, 형제바위라고도 불리는 곳에 서자 감회가 새롭다.

한참 실내암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지리산 힘든 종주길에서도 크레터슈즈를 신고 이곳 형제바위를 크랙과 침니를 이용해 오르기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연하천과 벽소령 사이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 부자바위 위인 탓도 있고, 육산 위주인 지리산에서 바위를 만져볼 손맛을 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벽소령 산장이 보이는 능선에서.

 

 

세석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벽소령 산장.

 

 

벽소령의 낯인은 임도.

 

 

덕평봉 선비샘.

 

 

세석평전.

 

 

세석산장 앞에서.

 

 

세석평전에서 바라 본 주능선.

 

 

주목.

 

 

연하봉.

 

 

한신계곡과 멀리 보이는 방야봉.

 

 

장터목산장.

 

 

반야 일몰,

 

 

장터목 산장의 일몰 후.

 

 

장터목 산장 제석봉실 내부.

 

 

천왕봉 여명.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천왕봉 일출.

 

 

 

 

천왕봉.

 

 

 

 

 

제석봉, 세석평전,벽소령, 명선봉 반야봉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통천문.

 

 

마징가 바위.

 

 

제석봉 전망대.

 

 

제석봉 고사목 지대.

 

'SOUL TRAIN > SOUL TR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백운대-사자능선 단풍산행  (0) 2010.05.06
지리산 둘레길 매동마을과 추성동  (0) 2009.12.29
친구와 전주에서 막걸리 먹기  (0) 2009.10.21
오대산   (0) 2009.05.20
지리산 종주  (0) 2009.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