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지리산 종주

오체투지해무 2009. 5. 20. 13:42

1월 30일 화요일


생각보다 빨리 서울역에 도착했다. 23시 35분 서울발 진주행 통일호 열차를 타기 위해선 아직도 한시간여를 더 기다려야 한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등산복차림의 사람들이 몇몇 개찰구 주변에 서성이는것이 보인다. 저들중 반 이상이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 일것이다.


복장을 보면 관광객인지,등산객인지, 산꾼인지 알수있다. 70L이상되는 배낭을 지고 있는 사람은 빙벽이나 종주를 목적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이고, 같은 가죽등산화라도 동계용 비브람화를 신은 사람과 트랙킹용 등산화를 신은 사람과 또 차별이 된다. 청바지에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등산양말을 신은 사람들은 등산초보거나 어영부영 산근처까지 가서 밥이나 해먹고 오는 사람들이다.


진주행 통일호열차가 개찰을 시작했다. 개찰구에 사람들이 빠져나갈때 쯤 배낭을 둘러메고 개찰구로 향한다.


'이제야 떠난다!'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텐트도 안가져가고 만약을 대비해 비박 준비만 해가지고 가지만 6일치 식량과 부식들이 만만치 않은 무게다. 32kg. 휘발유 두통에, 쌀 4kg, 감자와 양파, 팩소주 6개, 기타등등. 텐트도 안가져가는데 내려놨던 배낭을 짊어지는데 용을 써야 된다.


좌석을 확인하고 짐칸에서 떨어지지 않게 가슴벨트와 허리벨트로 잘 고정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작년 6월 소백산 가는 길에 짐칸에서 배낭이 떨어져 앉아있던 50대 남자분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다른 짐들은 괜찮았는데 내 배낭만 유독 굴러떨어져 30kg 가까이 되던 배낭이 머리위로 떨어졌으니 그때 당시엔 좀 띵하고 정신없었겠지만, 추돌 당했을때 처럼 자고 일어나면 뒷목이 뻐근할것이다. 백배사죄했던 기억이 있어, 그후론 배낭을 짐칸에 확실히 고정해 놓는 버릇이 있다.


'정말 가게 되는군'


옆자리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앉자마자 잠을 청하고 눈을 감는다. 그 역시 옆자리에 같이 가게된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 일찌감치 얘기 나누기를 포기하고 잠을 청하는것이다. 나 또한 눈을 붙혀보지만 창가에 앉은 자리라 히터열이 상당하다 잠바도 벗고 남방도 벗고 반팔 티샤쓰 차림이지만 그래도 부분 부분 올라오는 히터열에 잠자기 갑갑함을 참을수 없다. 앞으론 그 좁은 침낭안에서 자야하는데 ......  맥주한병을 꼴깍 꼴깍 마시며 잠이 오길 기다리지만 통일호 불편한 자리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등산에 대한 흥분감 같은건 있지 않았다. 당연히 가야 하는 산행이였기에.


논산역이란 안내방송을 듣고 설핏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다음이 남원, 이제 30분만 더 가면 구례구역이다. 몸은 피곤하지 않으나 눈이 자꾸 감기고 눈 따로, 몸 따로인 것 같다.



1월 31일 수요일


구례구역에 내려서니 20여명의 등산객들과 현지 주민 10여명이 플랫폼에서 기차가 빠져나가 개찰구로 가는 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이때의 느낌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영화'만추'에서 김헤자와 이영하던가가 기차에서 싸한 밤공기를 가르며 내려서는 그런 기분을 들게 한다.


기차시간에 맞추어 운행되는 구례버스터미널행 버스가 서있고 몸안 가득히 냉기를 품고, 이제서야 사람의 온기들이 배어들기 시작하는 버스 안에 올라탄다. 시외버스터미널 안은 대부분이 등산객들이다. 화엄사행이나 연곡사행 버스들을 기다리고 있다. 구례에 도착하면 늘 들리는 가게집에서 상위 마을로 가는 차편을 물어보자 온천에 가려고 하는냐고 되묻는다. 다름재로 해서 만복대를 타려고 한다고 하니 고개를 끄떡거린 후 9시나 넘어야 상위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그럼 일단 지리산 온천이 있는 중동마을로 가야지. 지리산온천랜드까지가 780원 그쪽으로 가는 등산객은 나 혼자 뿐이다.  예순이 넘어보이는 노인네에게 상위마을을 물어보니 이 버스 종점에서 한 30분 걸어 들어가야 한단다. 일단 종점까지 가야겠군.


상당히 추운 날씨라 화장실에 들어가 타이즈를 껴 입고 나오는데 학생 둘이 가게 아줌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폼이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온듯하다. 체격들은 좋지만 장비라곤 하나도 없고, 가게에서 생수를 사는 것을 보니 취사도구도 없이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온것 같다. 그중에 키가 나만한 학생이 180은 넘어 보이는듯한 친구에게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게 아닌지 몰라"

"걱정마 우리나라 산이 2000미터도 안되는 산들인데 가다가 안되면 내려오면 되지"

아니 이 학생들이 지금 준비도 없이 겨울설산에 들어가서 무슨 민폐를 끼칠려고 하는지...

"지리산 왔어요?"

"예"

"어디까지 갈려고요?"

"천왕봉이요"

"그럼 종주를 하겠단 얘기인데"

"예, 2박3일 일정 잡고 왔읍니다"

"식사하고 잠은?"

"예. 산장에 가면 밥하고 잠잘수 있다는데요"


딸랑이 배낭안엔 벌써 쵸코파이 한상자와 생수로 그 조그만 배낭이 땡땡하다.


"산장에서 누가 밥을 해줘 혹 컵라면이나 팔면 모를까......"

"그러면 그거 먹죠 뭐"


어디서 났는지 지리산핸드북을 보여주는데 어느 출판사인지도 모르겠고 종주코스에 지명과 거리만 나와 있고, 시간이나 몇박을 소요된다는 명기도 없이 경유지 이름만 나와 있는 책을 보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런 복장에 장비도 없이라면 화엄사나 쌍계사에서 문화재나 관광하고 그냥 집으로 가고, 정 가고 싶다면 화엄사로해서 노고단까지만 부지런히 갔다와. "

"그럼 천왕봉은요?"

"천왕봉 보고 싶으면 중산리로 가던가 다시 남원으로 가서 백무동으로 해서 천왕봉만 보고 오고, 근데 아이젠하고 장갑모자는?"

"아이젠요? 눈이 있을까요? 장갑은 있어요.털모자하고 아이젠은 화엄사입구에서 판다니까 거기서 살꺼구요"

"젊으니까 용기가 가상한건지, 무모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화엄사로 해서 노고단 까지만 가보고, 오후 4시 되기전에 산장에 들어가고 그 이후론 절대 산행하지 말아요"

"예, 그러죠. 4시 넘으면 등산을 멈추면 되니까요"

"야야~ 겁먹을꺼 없어 여기가 히말라야도 아니고 등산객들이 있으니까 길 잃어버릴 일 없을꺼야. 자~ 천왕봉아 기다려라"


참 무모한 짓이다. 하긴 삼풍사태때도 20대 초반은 물한방울 안먹고 보름씩 살아났으니, 하지만 지금은 겨울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들어가는 길엔 해뜨기전의 그 냉랭함과 어둑어둑하고 푸른빛으로 인해 마을이 한츰 더 차가워 보인다. 이곳도 온천이 발견된 후, 전엔 옥토였을 법한 곳, 이곳 저곳이 파헤쳐져 봄 부터는 일제히 날림건물들이 들어 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종점에 들어서기 전에 운전기사가 대뜸 욕찌거리를 해단다.


'아니, 해장욕인가. 이유없이 왠 욕지거리를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려'


종점이라고 버스 두대 들어 갈 곳에 벌써 출발했어야 하는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어서 였나 보다. 하차하면서 상위 마을 가는 곳을 물어보니 내려서 왼쪽으로 4km 정도 가야 한단다. 4km면 한시간 거리인데 con'c 포장길을 한시간이나 '하이고~ 발바닥 따가워서 어떡해 가나.' 운전사가 7시에 상위마을 가는 버스가 출발하니 기다렸다 그걸 타고 가란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주위가 푸른빛을 띠며 날이 서서히 밝아진다. 상위마을에 도착하니 그냥 산간마을로 어디로 부터 진입해야 다름재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위엔 이른 새벽이고 천수답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갤로퍼차에서 대머리 아저씨가 내린다.


"다름재, 만복대로 갈려면 어느길로 접어들어야 합니까?"

월간'山'을 펼쳐 보이며

"우리도 만복대에 가려고 하는데 이쯤이 맞지요?"

"예. 저도 만복대에 가려고 하는데 여기가 상위마을 맞습니다."


둘다 월간'山'지에 소개된 코스를 보고 산을 타러 온것이다. 그러니 둘다 지도만 보고 어디가 산행시점이 되는지를 대충 짐작으로만 알뿐 기존의 국립공원이나 등산로 처럼 산행기점을 알리는 표지판이라곤 전무한 산자락 마을에서 둘다 조금은 갑갑한 마음이다.


"전 다름재로 해서 노고단까지 가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만복대만 갔다가 오려고 하는데......"

"즐거운 산행되십시오."


일단 기억해 놓은 산자락으로 접어들었다. 그제야 소여물을 주는지 나와 있는 마을 사람에게 다름재를 물어보았다.


"일루해서 이길로 죽~가면 나옵니다"


죽~가면 평양인들 못가고 로마인들 못가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해 있으니 둘러가도 로마 들렸다가면 다름재도 갈 수 있겠지.

할수없다. 감으로 찾아들어가야지. 지도의 능선을 상기해보면 저쯤 돌아서 가야 할텐데 이쯤에서 능선을 치고 올라가면 다름재와 만복대 중간으로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개설한지 얼마안되 보이는 임간도로를 타고 올라가본다. 어딘가에서 만복대 고리봉엔 물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알고 있으며 산정상에도 눈이 얼마 없는것이 보여 본격적인 산행이 되기 전에 물부터 구해야 했다.


배수횡단구조물에 DIA800쯤 되 보이는 흄관이 거푸집도 안 띤 채 도로법면 밑에 있다. 강우면적에 비해 배수구조물이 너무 작은거 아닌가? 전공은 못 속이나 보다. 하기사 이런 새마을 공사에 무슨 우량계수 따져보고 흄관을 설치했을까. 기존 배수로만 보아도 배수단면이 너무 적다. 이번 봄장마도 못 견디겠군!. 물이 찔찔 흐르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다.


코펠에 물을 받고 수통에 물을 채우고 쌀을 한공기 넣었으나 춥기도 하고 밥하고 하다보면 아까운 아침 시간을 다 보내는 것 같아 간단히 야채스프를 먹는다.


'으~ 이놈에 다시다맛! 조미료 맛 좀 안내고 못 만드나 느글 거린다'


물에 불려놨던 쌀을 비닐봉지에 담아 놓고 임간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오잉~! 왠 산양목장이 나타나고 철조망이 쳐져있다. 군지정사업이라는 안내간판과 함께, 그래서 임간도로를 딱아놨군. 철조망을 넘어가보니 염소소리인지 산양소리인지가 난다. 사람은 없는듯 다름재로 가려면 왼쪽 안부로 들어서야 하는데 노고단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 있고 이길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그냥 오른쪽 경사면 너덜지대를 따라 올라간다.


바위들이 확실이 물려있지 않아 밟으면 꺼덕거리는 바위들이 위태 위태하다. 먼저번 연하천에서 음정으로 빠지는 길로 하산하다 너덜지대에 잘못들어 움직이는 바위를 밟았다가 그대로 바위와 함께 굴러 왼쪽 팔목에서 팔꿈치까지 날카로운 바위에 찍힌 흉터가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시간이 걸리드라도 일일이 바위가 흔들리거나 사태위험이 없는지를 살피며 그래도 간혹 이끼가 닳아 사람이 다닐 법했던 길로 올라서는데 밑에서 봤던 것 보다 가파르고 관목들이 많아 헤치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가슴 정도 오는 철조망을 넘어올라서니 이번엔 키우던 산양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장애물을 만들어 놓은듯 활엽수들이 산아래쪽을 향해 베어져 있다. 85L 키를 넘는 배낭은 수시로 베어져 넘어가 있는 가지에 걸려 한걸음 내 딛으면 그대로 배낭을 낚아채 두걸음 물러서기를 2시간여, 입에서 욕이 나오길 시작한다. 사람이 다닌듯한 이끼나 낙엽이 밣혀 있는 자리는 산양들이 다닌 흔적인지 도저히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는 덤불과 베어진 나무들로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기가 무척 힘들다. 배낭이 가지에만 걸리지 않아도 좀 나으렴만 벌써 평지가 그리워진다 어디 잠시 평탄한곳에서 쉬기라도 했으면.


30분이면 오를 것 같던 지능선상에 2시간이 넘게 관목과 너덜지대를 오르고 나자,  이제 10시 반인데도 허기가 진다.  국립공원 표석이 있는 능선 상에 왔으니, 밥을 먹자는 마음에 불려 놓은 쌀과 일분카레를 꺼내 콜맨버너에 불을 당기고 밥을 한다.  물을 아끼기 위해 좀 적게 넣은 듯 했더니 그래도 불은 쌀이라 제대로 퍼지지는 않았지만 먹을 만 하다. 김과 김치를 내어 먹고 담배 한대를 피워 물자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군데 군데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있다. 산악회 표지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약초꾼이나 동네사람들 말곤 오지 않는 길인가 보다.

상위마을과 지리산온천랜드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 옆엔 낙낙장송 소나무도 몇그루 휘휘 감아 돈다. 모습이 발길 닿기 좋은 장소라면 이름이 붙을만한 장소이다. 산세를 살펴보니 주능선상에서 평지로 내달리는 지능선중 제일 짧다.


'엄청 가파르겠군! 좀 자세히 묻더라도 다름재 가는길로 제대로 들어설걸 그랬나 '


도봉산 칼바위능선 정도 되지는 않지만 자주 자주 나타나는 바위들은 때론 좀 급한 경사로 우회하게 만든다. 배낭만 없으면 제대로 릿지를 해보겠는데. 간혹 능선 상에서 벗어나기도 하며 7부 능선 쯤 오르니 당초에 오르려고 했던 다름재와 고리봉 만복대가 고개를 한참이나 치켜들어어야 보인다.


'저쯤이 묘봉치니 얼치 오긴 왔는데. 도저히 경사가 죽을지를 모르네'


이젠 바위는 없고 경사 60도쯤 되보이는 관목 숲이다. 산죽도 없는것으로 봐서 약 1100미터 정도 되는듯 싶다.


'이럴때 고도계라도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텐데, 근데 겨울 지리산에 눈 보러 왔지. 7부능선상에서 약진 앞으로 하러 온 일도 아니고 이게 뭔 고생이야 눈도 없는 곳에서 (음지쪽에만 온지 오래된 듯 한 눈이 발목을 조금 덮을 뿐 대부분의 양지엔 눈이 없었다) 도봉산 보다 못하네'


관목 숲 속을 허리 숙여 약진 앞으로 한 결과 드디어 백두대간상에 올라섰다.

만복대에서 고리봉 1/4되는 지점 정도 되어 보인다. 시간이 늦었는데

마산에서 여행수첩을 잃어버려 정확한 시간을 기억 하지 못하지만 2시반쯤 되지 않았나 싶다. 8시20분에 스프를 먹고 본격적으로 산행 시작후 무려 6시간 만에 만복대가 아닌 주능선상에 다다르게 됐다.


밑에서 보니 만복대 밑에 만복대 보다 좀 작은 봉우리위에 어디서 옮겨다 놓은 듯한 바위가 이상하게 걸려있는데 지도를 보니 요강바위


'정말 요강단지 같이 생겼군'


능선상에 배낭을 벗어놓고 오버자켓을 꺼내입고 요강바위를 지날 때쯤 강풍 불어닥치며 하늘이 컴컴해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내가 왔는데 지리산에 비나 눈이 안 올리 없지.(내가 지리산에 입산한 날 비가 안온적이 없었다) 눈이 없는 만복대 고리봉 구간에서 흩뿌리기 시작하는 눈가루는 반갑기 그지없다 더도 말고 이틀만 쏟아부어라'


만복대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있고 해발1433.4m 남원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계가 좋질 않아 전망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구름사이로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도 그 모습을 들어내곤 감춘다. 본격적인 바람이 불어오는지 실장갑을 낀손이 시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좋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치고 올라온 능선이 다른 지능선에 비해 짧고 무척 가파르다. 산양목장을 지날 때 그 관목 숲하며 발 한번 편평한 곳에서 쉬지 못하고 오른 능선을 바라보니 기가차다.

멀리 팔랑치,정령치가 보이고 오르려 했던 다름재가 저 아래 발밑에 있고, 나가야할 고리봉이 산 3개를 넘어 보인다. 그뒤로 성삼재휴게소와 노고단으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오다 아차! 배낭 벗어놓은 곳이 긴가민가하다. 흥분된 나머지 배낭 벗어놓은 곳에서 지형지물을 보고 위치파악을 않고 왔던것이다. 그저 능선상이니 하산하다보면 보이겠지 하고 올라갔는데 그게 아니였다. 분명 고리봉과 왼쪽 능선을 바라보면 각도상 이쯤이 맞는데 같은 능선길을 오르내리기를 4번 (여기서 시간 다 잡아 먹는군) 마치 귀신에 홀린것 같다. 이어밴드만 한 머리는 오버자켓 모자를 쓰고 있어도 찬기운이 느껴지고, 손은 시렵고,  배낭을 벗어놓은 곳이 주 등산로는 아니였다. 그렇다면 능선 길을 배제하고 안부를 타고 온 저 능선상이다. 급경사를 가뿐히 오르자 그곳에 배낭이 배를 하늘로 하고 누워 있었다.


어느덧 시계는 5시. 시간상 쫓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콩 통조림과 자유시간2개 소주 한 팩을 꺼내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눈보라가 시작돼 작은 소나무 밑에 몸을 수그리고 바람을 피해있고, 소주와 같이 먹은 것이지만 찬 음식이 들어가자 체온이 뚝 떨어진다.


땀에 젓은 이어밴드를 벗고 가면모를 쓰고, 배낭을 챙기고 출발한 시각이 5시 20분쯤. 묘봉치까진 내리막이라 힘들이지 않고 내려섰다. 고리봉까진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할 듯 이제 어두워지면 위치 파악이 안되니 잘 기억해야 한다. 초행길이기 때문에 좀 겁이 난다. 아니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하다. 여차하면 비박을 하지 하는 마음에서 고리봉을 향해 가던중 해는 지고 바람은 강해지고 학수고대하던 눈이  퍼붇듯 쏟아진다.


'그래, 바로 이거야'


잠시 쉬면서 건포도와 물을 먹고 담배 한대 피우며 라디오를 켜자,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서울에 12시에서 2시 사이에 폭설이 쏟아져 문화방송 사옥에서 눈싸움하는 장면을 봤단다. 이제야 그 눈구름이 지리산에 도착했군.

이젠 시계가 약 50미터 남짓하다 노고단이 어딘지 성삼재가 어딘지 모른다. 다만 눈으로 덮여 가는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을 뿐이다.

고리봉이란 표지판을 보고 저쯤이 고리봉 정상이겠구나 하곤 그대로 하산 길에 접어든다. 지도상에선 고리봉 정상에서 성삼재 도로까지 시간이 안나와 있지만 약 1시간 정도면 하산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도 가도 이길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지척을 구분하기 힘든 눈보라에선 독도나 머리속에 그리고 있던 고리봉에서 성삼재까지의 길개념하곤 전혀 연관이 없는 듯 하다.


'이상하군. 다른데로 빠질 길이 없는데 혹시 구례로 맞바로 빠지는 능선을 탄건 아니겠지.'


혼자 산행 중 FM 듣기를 좋아하는 내 머리엔 지금 그때 걸으며 들은 음악이 무슨 음악이였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성삼재휴게소와 도로만을 기다리며 걷다보니 이상하게 힘이 들지가 않는다.


'이러다가 탈진하면 비박준비를 해왔지만 추위에 낭패 좀 당하겠군. 차분히 앉아 정신 좀 차리자'


소복히 쌓이는 눈을 한줌 손에 쥐고 입에 털어놓고 담배한대를 피워 물고 지도를 꺼내본다.


'아차! 젖어오는 눈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구만.'


파일바지 상당부분이 젖어있다. 여기서 길어야 1시간이면 성삼재휴게소. 스패츠와 플리스장갑을 착용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산행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사태를 맞으면 어쩌나 상당히 걱정을 하게되는데 의외로 차분해지고 잡념이 안 든다. 9월 달 지리산에 들어 설 때 고행을 수행하는 구도자의 길이라는 왕시루를 탔을때도 질매재에서 피아골로 빠지는 길을 놓치고, 돼지평전으로 치고 올라 올 설도 그랬다. 물도 떨어지고 갖고간 땅콩과 건포도로 허기를 달래고 돼지평전에 올랐을때 그 희열. 평지 같은 돼지평전의 평탄한 길 그때를 떠올리며 이제서야 지리산에 입산신고를 한단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산에 적응하는 날은 힘든 것이리라 생각하고.


길의 굴곡이 적어지고 왼쪽 사면을 타고 길이 평탄해진다. 왼쪽으로 하옇게 보이는 부분이 등산로를 따라 있는 둔덕이거니 생각했는데 고저차가 낮아지자 그게 성삼재 도로란것을 알게되었다.


'성삼재까진 다왔군'


4~5미터 급격히 깍인 곳을 내려서니 성삼재 절토부에 있는 옹벽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옹벽 높이는 약 3미터 정도 좀 가다보면 옹벽이 끝나는 부분이 궁금하다. 또 위로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은 아니겠지. 역시 예상대로 옹벽은 산자락을 휘감지 않고 도로 상단 1미터 정도 되는곳에서 끝이 났다.

도로 위에는 발목 이상을 빠지는 눈이 쌓여있고, 고개마루엔 휴게소 불빛이 아른거리며 미친듯이 불어대는 바람은 마음을 흉흉하게 만든다.

도저히 노고단까지 1시간반의 산행은 못할 것 같고 휴게소 한쪽 구석에서 비박을 하리라 생각하고 휴게소에 다다르니 불빛만 있고 사람이 없다. 이 눈에 하산했을리는 없고.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안 들리나 보다 창문에서 두들겨보아도 인기척은 나질 않는다.


순간 갈등을 하게 만든다. 건물 한쪽 구석에서 비박을 할것인가. 이대로 노고단산장까지 갈것인가. 끔직했다. 95년 4월 찬비를 맞으며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 무릅을 끌고 올라갔던 斷腸의 코재를 밟아야하다니, 그때가 8시, 잠시의 망설임 속에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 가자 코재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불친철과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노고단산장으로......


계속되는 경사와 눈보라는 가끔 환청까지 들리게해 오버자켓 속에 땀범벅이된 살갖을 소름 끼치게 만든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무 사이로 휘도는 바람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았아가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과 위협같기도 하고. 당장 바람이 적게 드는 산마루 측구에 들어가 메트레스 깔고 침낭속에 들어가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두개의 계단길을 오른 끝에 코재에 다다르고 선교사 별장으로 오르는 지름길에 들어선다.


드디어 노고단산장이다. 바람이 잦아드는곳은 무릅까지 눈이 빠진다.

산장입구에 들어서 맞아주는 노고단산장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첫마중은  등산객과 관광객에 시달려 정형화되고 권위적이며 좀은 위압적으로 보이는듯한 눈길로 인사를 대신한다. 가장 자고 싶지 않은 곳이 이곳 노고단 산장이다. 몸에 배어버린 불친절과 권위의식, 짜증, 권태. 내가 민감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노고단하면 떠오르는 것이 노고단 자체이거나 노고단운해 종석대가 아니고 이러한 공단직원들의 뭉등거려진 매너리즘이다.


숙박부에 기장하고 3000원의 산장이용비와 콜라한병을 단숨에 들이키고 침상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10시에 취침이니 이제 약 30분 남았다.

맨 안쪽 구석에 자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 취침을 하고 있고 몇 명의 사람들만 눈사람이 되어 들어오는 나를 향해 뫼르쏘 같은 무관심의 눈으로 쳐다보곤한다.


땀으로 흥건히 젓어든 오버쟈켓을 벗고, 떡쌀과 라면, 코펠, 버너를 들고 취사장으로 간다. 수도는 당연히 얼어 물이 나오질 않고.  버너에 불을 당기고 코펠을 올려놓아 눈을 퍼담는다. 휘발유버너가 좋긴 좋다. 금새 물이 끓고 뜨거운 떡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소주와 함께 먹는지 들이키는지 모르게 먹어치우곤 취사장을 나서는데 그 시간에 여자3 남자2이 장비를 잘 갖추고 산장으로 들어간다. 아마 야영을 하려다가 눈보라가 심해지니 산장으로 들어가는지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들어오니 침상이 많이 남는다. 노고단이 이렇게 자리가 남을 때도 있네 하며 이층침상으로 배낭을 옮긴 후 히터가 들어오는 이곳, 산장에선 늦게 들어온 팀들만이 낮은 목소리로 얘길 주고 받는다.


2월 1일


5시에 맞추어 놓은 알람이 삐빅~거리지만 그냥 눈을 뜨진 않는다. 좀 있으니 사람들이 일어나 부산함을 보이기에 일어나 보니 5시30분 세석까지 가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어제 불려놓은 쌀이 있으니 밥은 금방 될테고 사골우거지국에 스팸을 반찬삼아 먹는다. 젊은 사람들이 개스버너 하나 가지고 밥을 하는데, 국하고 밥하고 하는 동안 밥물이 끓을 생각도 안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장정 4이서 먹을 밥을 한겨울 영하20도를 훨씬 내려가는 곳에서 개스로 밥을 할 생각들을 하다니, 취사가 끝난 후 버너를 빌려주니 감지덕지하며 쓴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적어도 1시간의 시간을 벌어 준 것이다. 혹한기의 개스버너는 라면 끓이기에도 화력이 미치질 못한다.


8시 출발이다. 어제 좀 무리를 했는지 산장에서 노고단까지의 길을 오르는데 다리근육이 금방 금방 뭉치는 바람에 짧은 거리를 오르는데도 몇 번을 쉰다.밤사이 내린 눈은 등산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허벅지까지 빠진다. 몇번의 지리산 산행이였지만 사진을 찍은 것은 작년 9월 몇장의 사진이 전부이다. 이번엔 1회용카메라를 가져왔으니 사람 있을 때 마다 부탁해서 사진을 찍는다.


일년 전 쯤을 생각하며 구레 읍내를 내려다보고 어제 오른 만복대 쪽과 아직도 눈구름에 휩싸여있는 반야봉을 보고 있던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7~8명이 출입이 금지된 노고단으로 가려다가 그중 하나가 피아골 가는 길을 묻길래 초행인것 같아 자세히 알려준다. 젊은애들이니 괜찮긴 하겠지만 운동화에 면바지에 장비라곤 카메라와 버너 코펠 아이젠이 다 인것 같다. 하산길 시간이 넉넉하니 별 걱정은 안하지만 어제 서울에서 내려와 딸랑이배낭 메고 종주하겠다던 그 대학생들이 걱정된다. 이곳에서 안 잔 것으로 미루어 오후 눈보라에 화엄사관광 갔다가 민박집 어디쯤에서 잤을 것이다.


돼지평전 초입세에 보면 나무로 조난자묘지라고 쓰여있는 곳이 있는데 1978년 고등학생들이 겨울산에 왔다가 5명이 동사해 죽은 곳이다. 노고단 산장에서 30분거리인데 악천후에 당황하면 체온을 빼앗겨 황천길에 가는 것은 잠시이다.


처음 지리산 산행에서 돼지평전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춤을 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온통 은세계지만 초봄의 햇살 속에 1200고지에서의 평탄한 길은 마치 마지막 보이스카우트에서 브르스 윌리스가 악당을 무찌르고 야구장 현광판 밑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해 춤을 추듯 기뻐 몸놀림을 흔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흥분만큼 되진 않지만 이곳을 걷노라면 몸도 마음도 고양되는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왕시루봉을 보면서 질매에서 돼지평전으로 치달아 오른곳이 이쯤인지 저쯤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10시30분이란 늦은 시간과 구름이 넘어가는 중이였는지 헤드랜턴 빛이 2미터를 나가지 않는 속에서 감으로만 임걸령을 찾아갔었으니 어디로 올랐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임걸령까지의 길은 너무나 평탄해서 한참 관광철이면 성삼재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임걸령까지 와 점심도시락 까먹고 갈 만큼 길이 순조롭다. 그들이 남기고 간 음식 때문에 임걸령은 봄, 여름, 가을엔 악취가 진동을 한다. 관광객은 입산을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온통 쓰레기천지로 만들고, 산불발생의 원인도 관광객들이다. 과장 좀 해서 쓰레기장에 가면 먹고 입는것 모든것을 구할수 있다. 그 1400고지에서 말이다. 올 때 지고 왔으면 갈 때 음식 먹고 힘내서 가벼워진 쓰레기들을 가져가면 그럴일이 없을텐데, 임걸령 바위 주변엔 유독 노란고무줄이 많다. 혹시 어릴때 놀던 고무줄총으로 서바이벌이라도 했을까? 전혀 아니다. 관광객들의 도시락을 두르고 있던 고무줄이다.

돼지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돼지니까...... 하나 사람은 그렇질 않다. 그게 돼지 보다 낫기 때문인지 아님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보다 특별히 존귀하지도 않으면서 영장류니 어쩌니 스스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너무 시니컬한 생각일까?

아무튼 스스로 자신을 높일지 모르는 사람도 밥맛이지만 유난히 고고한 척 하는 사람은 입맛이다.


자~ 이제 부터 주능의 고저차가 심해지는 구간이다. 임걸령 물이 내겐 제일 몸에 맞는것 같다. 누군 어디 약수가 좋고 어디 샘이 좋다고 하지만 그건 그 사람 체질에 맞는 것이고 이곳에서 밥을 해먹고 물을 마시면 물이 설탕물이나 음료수 단것과 다르게 정말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 잘하고 수돗물 마셔보라 음식값이 아까워진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 2일간이나 머문 적이 있다. 물론 야영금지지만......


지난해 9월 텐트를 쳤던 장소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있다. 나보다 늦게 노고단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임걸령 물맛도 볼 생각을 안하고 휘적~휘적~ 날랜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 배낭이 가벼워야 하는데 어제 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은 임걸령에서 노루목까지 가는 가파른 돌길에 긴장감 보담 일종에 권태로움을 준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자꾸 뭉친다. 잠자리 들기 전, 자고나서 스트레칭을 안 해준게 아쉽다.


좀 귀찮더라도 무리를 했다 싶은 날은 약 10분간의 스트레칭이 그 다음날 피로도를 현저히 낮추어 준다는 사실을 늘 알면서도 산장에 들어가게 되면 스트레칭 한다는 것이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잘 안 하게 된다. 무겁더라도 야영을 하는 게 속편하고 좋은데 겨울엔 그놈에 팩이 들어가야 말이지 대못에 콘크리트 못까지 사용해봤지만 자고 일어나서 온통 서리가 하얗게 내린 텐트 안에서 버벅 거리는 거 보담 겨울철 단독 산행 땐 여벌의 옷을 준비해서 비박 준비만 해 갖고다니는게 운행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다. 노고단 쪽엔 일단에 눈구름이 지나가며 지리산 10경중에 하나인 노고단 운해를 형성한다 지금쯤 종석대에 있으면 멋있는 운해를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먹구름과 햇빛이 교체하는 하늘을 쳐다보곤 자외선차단크림을 바른다. 스키를 타봤거나 설산을 하루종일 걸어 본 사람들은 눈에 반사된 자외선이 얼마나 얼굴을 많이 그슬리는지 알 것이다.


약간의 바윗길을 거금 15,000원을 주고 산 명광아이젠을 끼고 오르기 시작한다. 4발짜리 아이젠에 비해서 체중으로 인한 발의 부담을 덜어주고 노출된 바위 부분엔 등산화 앞턱을 걸어 고무마찰력에 의해 오를수 있어 편하다. 일단 신고 벗기가 다른 아이젠에 비해 무척 간편하다. 사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아도 될 구간을 신고 벗기가 귀찮아 발바닥과 발등에 무리를 주는지 알면서도 그냥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반야봉을 바라보며 노루목을 향하는 길에서 잠시 배낭을 벗어던지고 아이젠에 엉겨붙은 눈을 털어내는데 모남방과 파일자켓만으론 추위를 막을 수 가 없다. 어제부터 부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팍팍 떨어트리고, 후일 안일이지만 이날 장터목 산장에 온도계는 영하 28도를 가르켰다니 체감온도 또한 낮이라 해도 그에 못지 않을것이다.


땀을 많이 흘려 10월까지만 해도 수영팬티에 반바지만 입고 산행을 하는 체질이라 오버자켓과 트라우져를 잘 착용하지 않는데, 추위와 강풍은 산행 내내 거의 땀복수준인 오버복을 착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노루목을 올라 오른쪽으로 보이는 불무장등을 바라보며 임걸령에서 묵었을때 간단한 복장으로 산을 찾았던 30대 후반에 여자 두명이 기억에 남는다. 피아골로 올라와 임걸령에서 물 한모금과 찬밥 한덩이를 먹으며 바위위에서 지리산 양기를 받아들인다며 맨발로 산책을 하던 30대후반 이제 늙어가기 시작하는 그 여인들과의 짧았던 대화. 한명은 교사 한명은 의상디자이너, 의상쪽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이태리 마랑고니니 일본 온 워드 가지야마등을 얘기 해보는데 전혀 소식이 깜깜이다. 말로 의상디자이너고 동네에서 의상실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지방백화점 브랜드 디자이너란다. 롯데 파코라반브랜드를 얘기하니 그제야 알아듣는다.


둘다 선이 굵직굵직한데 결혼한 교사라는 여자는 안정적이고 마음이 열려있는데 반해, 미혼에 디자이너란 여자는 어딘지 정서불안에 안정을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말은 차분히 하면서도 얘기 도중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던가 대화 도중 수시로 눈길을 피하는 속에서 남자에게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인상도 께름직 할 정도로 안좋지만 안색에 어두침침한 빛이 배어 나올 만큼 음침한데가 있다. 으~ 얘기 나누기 싫은데 자꾸 말을 붙혀온다. 자는데 무섭지 않았느냐, 춥지는 않았느냐, 얘기를 해보니 묘향대 암자까지 갈까 말까 하다가 노고단에서 석유를 나르던 그 암자 스님과 우연이 만나 그쪽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젊은 스님은 주로 얘기를 들어준다.


종교가 하소연 할 때 없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 하나 만으로도 있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동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저 여인들의 말이 스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다만 말을 하고 말을 들을 뿐이다. 대화는 없다.

스님이 가시고 나니 자기네들과 같이 하산하잖다. 오잉? 난 종주 할꺼란 말에 안부를 전하며 노고단 쪽으로 그들은 발길을 돌렸고 난 FM 라디오에 다시 귀를 귀울이며 명상에 잠겼었지


불무장등과 피아골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반야봉등정은 포기하기로 했다. 오늘 노고단에서 세석까지 갈까 하다 간밤에 내린 눈도 눈이거니와 전날 무리한 탓에 오늘은 연하천까지만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서두를것이 없다. 반야봉에서 삼도봉 사이 묘향대 빠지는 길목에서 점심준비를 하는데 간단히 북어국에 감자 한알 까서 집어 넣으니 훌륭한 감자국이 된다. 다음 부터 북어국엔 꼭 감자를 넣어야하겠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다. 뱀사골에서 노고단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노고단 쪽에선 제일 늦게 출발했으니 다른 철 갔다면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올라오는 차편이 있어 이곳까진 늘상 붐비지만 겨울철 빙설 관계로 버스 운행을 멈추면 노고단에서 숙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까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만큼 겨울 산행엔 시간을 충분히 두고 운행을 하기 때문이다. 지나치는 사람들도 시장기를 느끼는지 힐끔 힐끔 밥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냄세가 기가막힙니다" 하는 인삿말을 던지며 간다.


눈이 지천으로 있으니 식수 걱정은 안해도 된다. 날이 추워 양지 바른 곳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어도 식사 도중 금방 밥이 식고, 국이 식는다. 코코아 한잔을 마시고 일어선 시각이 1시 30분 오버자켓 말린다고 눈밭에 거꾸로 널어 놨는데 땀이 다 얼어붙어 있다. 손목 부분은 얼음조각들이 덜그덕 덜그덕 거린다. 눈을 퍼담아 대충 녹여 코펠에 물을 부어 휘휘 젓는 것으로 설겆이 끝. 혼자 산행을 오래하다 보니 식사량은 칼 같이 맞춘다. 이제까지 산에서 밥이나 반찬이 남아, 버린적이 한번도 없었으니 이 정도라면 자연보호에 일조를 하는데 공헌하는 산꾼이란 소릴 들을만 하지 않은가! 적어도 밥하는데 있어선.


오리털파커를 집어놓고 풀었던 스패츠와 아이젠을 하고 삼도봉에선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 내처 뱀사골쪽으로 향한다. 초보산행자들이 잘 그러는데 아이젠은 미리 샀을때 자기 신발에 맞게 줄을 조정해야 한다. 스패츠를 착용하고 아이젠을 착용해야 등산화와 스패츠를 연결해주는 끈이 바닥과 노출 되지 않아 오래 쓸수 있다.  아이젠 먼저 착용하고 스패츠를 찰려다가 번거럽게 다시 아이젠을 푸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뱀사골을 향한지 얼마 안되서부터 어제 보다 더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출발할때 부터 나무가지에 있는 눈에 의해 배낭이 젖는 것을 막기위해 배낭커버를 했다. 윤미가 북한산 산행중 얘기 했던 거북이의 모습으로 눈길을 터벅터벅 걷고 걷는다. 한마리 거북이가 되어...... 거북이라니까 생각나는 말이 초파일때가 되거나 하면 방생한다고 자라나 거북이 비슷한 맴생이라는 것을 바다에 풀어주는 불교신자들이 있는데 방생이 아니고 살생이다. 자라나 맴생이들은 민물에 사는 동물이라 바다에 넣으면 삼투압현상에 의해 이네 죽고 만다. 장사속으로 방생을 목적으로 그곳에서 파는 사람도 문제지만 방생이랍시고 살생을 하는 그런 신자들의 행동도 죄악이다.


뱀사골산장 입구에 도착했는데 도통 점심을 먹는 사람이 있다거나 해먹은 흔적이 없다. ' 거참 희한하네 대부분 세석까지 갈려고 서둘러서 연하천 까지 갔나??? 세석까지 갈려면 급히 서둘러 연하천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니까' 아는 사람은 없어도 산장엔 잠시 들려봐야지. 가본 사람은 알지만 뱀사골산장에서 능선 길은 계단으로 상당히 가파르다. 거기서 구르면 최소한 중상이다. 배낭을 이정표 간판에 놓아두고 아이젠을 팍팍 박아가며 계단길을 내려선다. 산장엔 당일로 올라왔다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20대 후반에 청년3명이 소주 냄새를 풍기며 토끼봉 가는 길을 묻는다.


'차림을 보아하니 하산하면서 고생들 하겠군'


"능선에 올라서 왼쪽으로 길을 가다보면 토끼봉 9부능선에서 이정표가 있읍니다. 거기에 보면 연하천 가는 방향. 칠불암 가는 방향등이 표시되어 있을겁니다. 서두르십시요."

"감사합니다. 어휴 추워~."


뱀사골엔 날카롭운 인상의 청년이 타이벡지도를 펼쳐보며 시간을 가늠하고 있다. 코베아 12발짜리 아이젠을 신고 있다. 용무가 있어 뱀사골 산장에 들린건 아니니 또 능선으로 올라서야지. 배낭을 놓은 곳에 이르니 어느새 배낭이 눈에 하얗게 묻혀있다. 능선 저쪽 남사면에서 한 사람이 아무것도 들지 않고 토끼봉 쪽으로 간다. 그곳엔 바람이 부는 북사면의 눈이 쌓여 무릅이상의 눈이 쌓인곳이다. '자 러쎌 흉내를 내 봐야지.'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 알았더니 아까 지나간 사람들이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식사들이 한참이다. 보아하니 칠불암이나 뱀사골로 내려서는  사람들인가 보다. 한 30여명이 그렇게 북적대고 있었는데, 바람소리 눈보라에 채 3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몰랐다.

일년 뒤 설악산 희운각산장에서 당시 연하천산장지기로 있던 노시철씨를 만나게 되어 다음 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날 오후 2시 반경 경희대 학생 두명이 화개재에서 조난을 당했다. 노고단에서 출발한 이들은 화개재에서 스님에게 발견될 당시 한명은 동사했고, 또 한명은 손과 발을 잘라야 하는 동상을 입고 구조됐다. 100여 미터만 내려가면 뱀사골 산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틀 전 구례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학생들이 아닐까싶어 항상 마음에 꺼려진다.


다시 토끼봉 완만한 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토끼봉까지의 길은 완만한 경사로 마치 점봉산 7부능선에서 정상까지의 길 같다. 경사도가 완만해서 힘이 안 들것 같지만. 같은 경사도로 정상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길은 몇 번이고 숨을 돌려야 올라 설 수 있다. 토끼봉 정상에서도 몰아치는 눈보라에 주변을 돌아봐야 아무것도 볼게 없다. 조금만 더 심하면 whiteout현상 비슷한 경우가 발생되겠는다. 거리감각과 방향감만 있으면 연하천까진 문제없다. 토끼봉을 넘었으니 총각샘으로 해서 쇠줄이 매어있는 바윗길을 거치면 명선봉이고, 곧 연하천에 다다르게 된다 약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리라 생각했다.


허나 눈길은 그렇지가 않았다. 1시30분에 마친 점심식사가 벌써 허기가 지고 총각샘으로 향하는 길은 일단에 사람들이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러셀흔적만 있을 뿐 눈으로 뒤덮여 자칫 길을 잃기 쉬운 기상조건이다. 바람이 부는 곳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금세 눈으로 덮어버리고, 간혹 눈이 안부는 곳의 러셀 자국을 보며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나무에 매어있는 등산표지기는 눈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허억~ 허억~'


날이 차니 입으로 숨을 몰아쉬면 금새 기침이 나온다.


'흐읍~ 흐읍~ , 허억~.'


코와 입으로 숨을 쉬다. 그래도 숨이 차오면 입으로 숨을 몰아쉰다.

프리스장갑이 좋은 이유를 알았다. 겉에 눈이 닿는 순간 체온으로 녹았다가 장갑 전체가 얼음으로 둘러싸이고 나면 더 이상 젖어 오질 않는다. 땀에 의해 젖었더라도 차거나 척척한 감이 오질 않는다.  눈보라의 날씨 속에 프리스 장갑은 나를 따듯하게 해주었다. 토끼봉에서 명선봉까지 몇 개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데 상당히 짧았던 길 같은데 이렇게 먼가 그래......

이제 총각샘이다. 총각샘이 지나면 쇠줄이 매어 있는곳 기껏해야 한시간이면 연하천에 다다른다. 허나 건물을 봐야 도착한거지 경험상의 거리감으로만 시간을 예측할수없다. 6시까진 훤한데 날씨가 일찍 어두워 진다.


"여잇, 피리리릭..."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해 뒤를 돌아보니 싸늘한 눈 덮인 숲속길만이 있다. 1600고지인데 이곳엔 산림이 울창하다 아마 반야봉이 북서풍을 막아주어 그런가 보다. 순간 소름이 쪽~ 끼친다. 얼어있는 나무들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적 마다 "쩌억~ 쩌억~" 소리가 난다.


'으~ 살 떨리는군. 전에 연하천에서 잘 때 바위 어디쯤  신발이 나란히 벗어져 있다는 곳이 이쯤 어디인데.'


어제 보다 위기감이 적으니 잡생각이 난다. 일단 위기감에 직면하면 차분해지며 힘이 솟는데 오늘은 연하천산장이 지척이란 안일한 생각 때문일까 자꾸 무서운 생각과 걷고있는 길 위에 나무들이 강풍에 꺽여져 나를 덮칠 것만 같다. 실지로 등산로 주위엔 얼어있던 나무들이 탄력을 잃어 꺽여진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심심치않게 나타난다.


명선봉 1586M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연하천이다.


어~ 이상하다 길은 한길인데 자꾸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것 같은 기분인데. 한번 휘감고 내려서면 토사의 유실을 막기 위한 법면보호공이 되어 있고 그 끝이 연하천인데, 가도 가도 인공구조물은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보니 토끼봉에서 명선봉까지 약 4개의 봉우리를 돌아서거나 넘어서야 했다. 몇 번이나 와 본 길인데. 일기가 불순하다고 이렇게 판단력이 없어진다.


드디어 연하천 불빛만이 조그만 창문에서 밖을 향해 비추고 있고 얼핏 사람이 없을듯 해 보인다. 산장입구에도 눈이 무릎까지 빠져 사람이 묵질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의 온기가 조금은 느껴진다. 18시 10분 뿐이 되질 않았는데 벌써 침낭 안에 들어가 취침자세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러다 한 밤중에 깨어나면 어떡해 잠자려고......


아무도 반기는 사람이 없다. 문가에 있던 한 사람이 빗자루를 들고 오버복과 배낭에 묻어있는 눈을 떨어준다. 안쪽에 혼자 온 사람 곁에 짐을 풀고 샘으로 가 물을 뜨고 쌀물 부터 본다. 쌀이 불어야 밥도 잘되고 설익지 않기 때문이다. 어딜가나 제일 먼저하는 행동이다. 오버복에선 땀이 뚝뚝 떨어지고 젓은 모남방을 벗고, 미군용 울내복을 입고 오리털 잠바를 꺼내 입는다. 산장 안에서도 보온에 신경 쓰지 않으면 땀이 식는 순간 운행 중 체온을 빼았겨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보온에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번 치악산 산행시 땀 흘리는 것에 대해 체온 조절 한다고 파일잠바만 입고 하루종일 바람에 노출되었다. 하산 후 막걸리와 음식들을 먹는데 갑자기 hypothermia에 걸려 민박집에서 있는 옷을 다 껴입고 몸을 움직여도 30분간 정신없이 떨어댄 기억이 있다.


노고단산장엔 사람이 많고 히터를 틀어주지만 연하천,장터목,치밭목은 바람만 막아줄 뿐이지 어떻해 보면 텐트보다도 더 춥다. 빨래판 메트레스를 깔고 앉아 감자를 까고 있으니 건너침상에서 보고 있던 한 사람이


"혼자 오신분이 준비 많이 해 오셨나 봅니다. 감자도 가져오시고......"

"예 인스턴트음식에서 나는 조미료맛을 싫어해서 꼭 된장 고추장을 가지고 다닙니다. 있다 찌게에 같이 식사 하시죠."


감자두개, 양파 하나, 마늘 두어통,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넣고 끓이면 이인용코펠의 찌게그릇이 꽉차고 내일 아침까지 먹을 찌게량이 된다. 산장관리인실과 숙소사이 비좁은 통로에서 취사를 마치고 침상에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 사람은 찌게에 쏘주를 마시며 자꾸 한잔 권한다. 예의상 한잔 받아마시고 다시 술잔을 건네주고, 좀 넉넉히 한 밥을 다 먹고 나니 꼼작하기 싫게 피로가 몰려온다. 1리터 짜리 수통에 물을 펄펄 끓여 넣어 침낭에 넣어두고 밥물을 맞추어 짐 옆에 두고 침낭안에 들어가니 8시.

어제 적지 못한 출발이후의 간단한 일정과 지출내역, 짧게짧게 일어나는 상념들을 두서없이 적고 있는데 어제도 제일 늦게 산장에 들린 학생산악부원들이 산장관리인의 제지로 텐트를 철수하고 들어오느라 부산을 떤다. 장비들이 다 좋다. 빙벽화를 신은 사람도 두명 정도 있고, 여자들도 모두 비브람골드를 신고 있다 .안내에 보면 60명 수용가능이라는데 어림잡아보면 약 36명 자면 적정인원 같다.

건너침상에 5명 내쪽에 두명, 처음엔 내 옆에 자리를 잡았던 여자 4명이 이층침상으로 올라간다. 내복에 무슨 여자 옆자리에서 자는 복이 있었을까...


학생들은 찌게를 끓이고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부산을 떤다. 어젠 목소리를 낮추워 소근거리더니 오붓한 산장에 들어오니 여자들 마저 목소리가 커진다. 방학중 산에서 처음 만났는지 2진으로 출발 뱀사골로 올라온 2명과 만나니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이렇게 후발대로 만나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헤드랜턴과 초를 켜고 열심히 끄적이고 있는데 학생들이 고기 구운것과 소주2팩을 내밀며 모자르지만 드시라고 권한다. 술 없이 자려고 했던 터라 사양하고 있는데 산장관리인 노희철씨가 일을 보러 간사이 잠시 돌봐주러 온 후배라며 산장관리대리인 김형주라는 30살 먹은 청년이 다가와 같이 술을 하길 권한다. 건너편 학생들은 벌써 취침하는데 하긴 9시 뿐이 안됐으니 술 한잔 마시며 약간의 소란을 떠는 것도 오붓한 산장분위기에선 크게 실례되지 않을 듯 해 옆자리 37먹은 분과 산장 대리인 3이서 술잔을 기울인다. 구워온 고기가 상당히 맛있다. 주로 지리산에 관한 얘기며. 가봤던 산애기를 나누다가 37먹은 분이 좀 취했다 싶더니 술을 자제를 한다. 내가 소주팩 4개를 내 놓고 그 분이 3개인가 내 놓고 학생들이 준 팩 2개 관리인이 가져온 술 2개 둘이서 거의 소주팩 4개씩 먹은 꼴이다. 학생들이 이층침상에서 등산화를 말리려니까 적극저지를 한다. 산장내에서의 화기취급은 절대 금하고 있기때문이다 만에 하나 화재라도 난다면......


학생들이 등산화를 말리고 있는 사이 37쥐띠란 분이 자기 등산화가 없어졌다며 난리법석을 친다. 아마 혼자와서 심심하던 차에 한잔, 두잔 마신 술에 취해 주정 비슷하게 부리는 듯 하다. 잠을 자던 학생들도 깨고 말리던 학생들도 어안이 벙벙해 진상규명에 들어가니 여학생이 자기것과 비슷한 RF비브람 골드롤 갖다 말린 것이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양 소릴 치길레 한마디 거든다는것이 오히려 내가 시비를 붙는다.


'이 양반 같이 술 대작 했는데 뭐라고 그럴수도 없고.'


신발을 찾았으니 아무 문제없고, 등산화도 잘 말려주었으니 고맙지 않느냐고 한게 술이 취한 사람에게 빌미를 준것이다. 무안해하는 여학생에게 죄송하다고 몰라서 그랬다고 사과하라고 하고 산장관리인실에 들어가 또 소주 두팩..... 아침에 일찍 일어나긴 다 틀렸군.


대리인 김형주씨는 이번에 히말라야 해외 원정을 갈려고 한단다. 그렇지 가까운 일본만 해도 만년설이 있는데 지리산,설악만 갈게 아니고 담에 기회 다면 트래킹코스라도 히말라야나 알프스 한번은 가봐야지.12시에 술 자리를 마치고 들어오니 모두들 취침한다. 뜨거운 수통을 넣어둔 침낭안은 자기 알맞은 온도이고 술 기운에 추운지 모르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2월 2일


소란스러움에 일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30분. 어제 먹은 술로 늦잠을 자고 말았다. 시끌시끌 하더니


"와~ 산불 났다."

'산불은 무슨 산불 일출 보고선 하는 소리지. 연하천 일출은 좀 답답하다. 아이고 골이야.'


어젯밤 그 정도 술 마셨으면 주접도 좀 떨고, 해서 술을 깨고 자야 하는데 침상에 좌정하고 앉아 술 마시다 관리인실에 가서 술을 마셔 술기운을 그대로 안고 잤다. 속은 아프지 않은데 골이 폭폭폭~ 쑤신다. 우리들이 대작하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고 등산화 왁스를 먹이고 있던 사람에게 코코아를 한잔 끓여주고. 역시 이층침상에서 잠 못 이루고 내려온 꽃다운 여학생에게도 코코아 한잔, 숙면엔 코코아가 좋으니까...... 그리고 자고 일어났다.


산장 조그마한 창문에 삼각봉을 넘어서 내리쏘듯 비추이는 아침햇살이 ,마치 해안가에서 해변탐색을 하는 써치라이트 처럼, 실내를 훓고 들어온다.

산장 앞 샘에서 해장 냉수 한잔 들이키고 부지런히 서둘러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앞침상과 이층침상에서 잤던 학생들은 마치 격전장에 나가는 검투사 처럼 장비를 갖추고 여장을 챙기는데 마치 도원결의라도 맺은 듯 굳은 표정들이다.


'해가 저렇게 쨍쨍 내려 쬐는데 왜 얼굴들이 그렇게 굳어져 있나.'


앞 침상의 학생들이 아이젠을 실내에서 착용하려하자 관리인이 잔소리를 해댄다. 아이젠 차고 실내에서 돌아다니면 바닥이 패이기 때문이다. 골 아퍼~ 골 아퍼 하면서 먹는 아침은 억지로 퍼넣듯 먹는 식사의 맛이 그렇듯 차갑게 식어지니 의무감으로만 먹기에도 힘이 들다. 그래도 해놓은 밥과 찌게는 남김없이 먹어치워야 산행 도중 허기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꾸역 꾸역 옆에서 보는 사람도 힘에 겨울 정도로 억지로 먹는다. 산에 와서 소화불량 걸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식사를 다하도록 여장을 갖춘 학생들은 나갈 생각들을 안한다.


"어디까지 갈꺼에요? 오늘 장터목 까진 가겠네"

"예. 가는데 까진 가야죠."

"이번에 세석산장 잘 지어놔서 설악중청산장 보담 더 좋겠던데. 기념으로 거기서 하루 안자요?"


덩치크고 아저씨 같은 학생이 서둘라며 장터목까지 가서 일박하고 일출보고 하산하잔다. 일출 보려면 장터목에서 자야지. 이젠 구름이 다 몰려가 일출 보는데 지장 없을듯.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안경 낀 학생은 간밤에 추워 한숨 못 잤다며 장터목말고 세석에서 자잔다. 장터목이 해발 1700이다 평지가 영하 10도라면 장터목은 -0.6 * 15~17 = 적어도 영하 20도이다. 강풍이라도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하이다. 자세히 보니 안경 낀 예쁘장한 남학생은 머리에 코팅까지 했다. 푸하하하하~ 그나마 털모자를 쓰고 있으니 남자인지 알았지. 머리코팅한 것만 봤으면 여자인지 알았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여자같아 같이 다니기 싫단다. 잠시 친구들 끼리 치고받고 장난을 친다.

기상하기 전 식사들을 마쳤는데 침상에 앉아서 일어설 생각을 안한다. 그중 하나가 세석 가는 길을 묻는다.


"연하천 산장을 빠져나가 얼마 안가다 보면 마천으로 가는 길과 천왕봉으로 가는 길에서 오른쪽 천왕봉 표지판을 보고 가다보면 금세 삼각봉에 오르게 되고 바위길을 따라 조심 조심 내려서다 보면 보이는 부자바위, 부자바위를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약간의 암벽과 우회길을 거쳐 구벽소령 직진 직진하면 돼요."


초행길이라 그런지 다른 팀에서 선등하기 바라는 눈치다. 배낭을 꾸리는 내가 한마디 안할수 없다.


"아니 아까부터 준비하고들 왜 안나가고 있어요?"

"가야하는데......"

"장터목 까지 가려면 서둘러야지. 가면서 어제 내린 눈이 상당할텐데 러쎌 잘해놓고. 누가 넘어졌는지 손자국 보면 다 아니까 조심해서들 가요. 여기서 부터 세석까진 좀 길이 험하고 위험하니까.

"

러쎌을 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에 건너편 침상 학생들이 다시 주저앉는다. 위층침상 학생들이 출정(?)준비가 끝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이 먼저 러쎌을 해 나가면 조금은 편한 산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에 통빡을 굴리고 있는 중인가 보다. 여학생들이 4명이나 되는 그 팀들은 정신없다.


자기껏만 딱 챙기면되는데 짐 다 싸놓고 밖에 내논 코펠을 다시 들고 들어가고, 침상에서 스패츠를 차 등산화 다 신고 아차 싶어 다시 등산화를 풀고 스패츠를 내어 착용하고, 전장에 나가는 검투사 치곤 어정쩡하다. 급기야 건너편 침상의 학생 4명이 먼저 출발한다. 따사로운 햇살과는 달리 밖에 날씨는 냉랭하기 이를데없다. 이 팀들은 청바지가 주력부대인데 아마 청바지가 젖어 잘때까지 눅눅함에서 벗어나지 못 할것이다.


이진으로 여학생이 낀 대학 산악부팀들이 출발하고 개스버너를 가지고와 애먹을것이 뻔한 슈샤인보이(어제 밤 잠 안자고 등산화에 왁스를 먹이던 사람 29살이라고 자길 소개)도 같이 출발을 한다. 따스한 생강차를 한잔하고 고구마 찌러 갔다와서 나도 출발, 그때가 10시, 골이 지근지근하다.


나오면서 산장지기에게 어제 먹은 소주값을 준다. 안받으려 하지만 땅파서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운임이 대부분인 물건값을 안줄수는 없는 일이다. 겸연쩍어하며 받는 그의 눈에 30살 나이란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노트북을 마련해 외로운 산장생활이지만 나름대로 활력을 찾으려 한단다. 다음에 또 보자고 손을 흔들어 주고 나서는데 그제야 어제밤 RF비브람골드 사건의 쥐띠 아자씨가 화장실에 간다. 그도 숙취로 고생께나 할꺼다.  침낭도 버너코펠도 다 가져왔는데 상당히 배낭이 작다 40L 침낭이 분리되게 생긴 배낭에 다 들어가다니. 메트레스도 없이 왔다.


역시 연하천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선등자들이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알수 있다. 이곳에서 부자바위까지, 칠선봉에서 세석까지, 장터목 다 달아, 중봉에서 써레봉까지 엄청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거의 개인의 보행폭은 무시되고 기존에 나 있던 발자욱에 한발 한반 들이밀며 뒤뚱 뒤뚱 발을 옮긴다. 걷는것이 아니라 한쪽발을 빼고 한쪽발을 넣고에 연속이다. 숨은 가빠 오는데 따사롭게 느끼던 햇쌀과는 다르게 엄청 춥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오버자켓을 껴입고 담배 한대 피워 무는 순간 발빠른 비브람골드아자씨가 금방 앞질러간다.


'거참~ 배낭 한번 가벼워서 좋겠다'

"몸시 춥지요?"

" 예! 무척 발이 빠르시네요."


산행 중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겠군. 부자바위 밑에서 잠시 바위를 타 볼까 하다가 홀드 부분에 얼음이 박혀있고 바람이 심해. 연하굴 옆에서 담배한대 피워 물고, 스키고글을 꺼내고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는등 미용(?)에 신경을 쓴다. 고글을 끼니 찌푸리고 보던 등산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몰아치는 바람에도 눈을 찌푸리지 않아도 좋고, 오토바이 탈 때 쓰던 고글이지만 아쉬운대로 시원하네. 생김세가 좀 과격해서 그렇지


벽소령까진 럴럴럴거리며 간다. 중간에 몇군데 낭떠러지와 바윗길을 가야하지만. 그 정도~(허장강 톤으로) 황량한 벌판을 연상케 하는 벽소령엔 인적은 없고 바람이 미친듯 날뛰고 있다. 아니 미쳤나~~~

신 벽소령 돌탑이 저번 보담 더 견고하게 쌓여져 있다.

그중 내가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쌓은 돌 3개는 어느것일까 하는 생각에 먼저 출발한 산악부 팀과 비브람골드 아자씨가 덕평봉 오르는 길로 접어선다.


'하, 이거 세석까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야겠군.'


선비샘 물을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일부러 건들여나 등산객들이  선비샘 근처에서 취사,야영을 못하게 조치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차피 눈 녹인 물로 밥할꺼라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가는게 속편하다. 휭등그러지게 썰렁한 텐트 사이트에서 보담 앞뒤로 시야가 탁 트인 이곳이 차한잔 하며 경치를 조망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음 숙취로 인해 잃었던 입맛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점심은 맛있는 일분 짜장 식사를 하는 동안 한사람도 안지나간다. 아마 어제,그제 악천후로 산행을 포기했거나 등산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일것이다. 날이 추워 버너 불을 죽이지 않고 인스탄트 국과 물을 교대로 데우며 식사를 마치고 코코아 한잔과 식후 연초를 즐기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으~ 오늘은 술 마시지 말아야지.'


먼저번 산행 때 덕평봉 능선 못 미쳐 선비샘이 있는지 알고 지친 발걸음을 옮겼던 생각이 난다. 금방이라도 선비샘이 나타날지 알고, 걷던 산행 중 만난 3명과 선비샘, 선비샘하며 갔었는데  재수 좋게 노루고기도 얻어먹었다 그날 밤. 선비샘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어울려.... 음정에서 선비샘까지 40키로 한짐에 2만원이라는 얘기도 듣고(설악산에 비해 엄청 단가가 싸다. 봉정암까지 한짐에 10만원이라고 하던데) 부자바위, 지난여름 택시기사들과 국립공원관리공단들과의 마찰. 선비샘에 대한 얘기. 촛대봉 여기 저기 지리산에 대한 전설과 사월과 오월의 '和'란 노래로 노루고기 대접에 대한 답례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것으러 봐서 40대 초반, 보이기엔 50대 중반도 넘었을것 같다는데 한대를  나왔단다. 나그네 파전 얘기도 하고......


먼저 보담 쉽게 선비샘에 다다랐다. 배도 부르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올랐으니 그렇겠지. 혼자 걷는 시간이 좋게 느껴진다. 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와 대면 하는듯 하다. 군화에 군복바지를 입은 야비군 2명과 인사를 나눈 거 외엔 목청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정말 필요한 시간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 조용히 대면할 때인데, 간혹 가쁜 숨을 몰아 쉬는것 외엔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을 한다. 세석 오르는 쇠줄이 어디쯤일까 하며. 칠선봉에서 잠시 쉬는데 구름이 지나가는지 어둑컴컴해진다. 러쎌이 되어 있지만 발을 잘못 디디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이 다른걸 생각 못하게 만든다. 간혹 가다 능선상엔 키를 넘는 설릉이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배낭을 벗어놓고 일회용 카메라로 일조량도 부족한데 불구하고 두어판 찍어본다. 빼보면 별 볼일 없다는거 알면서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에......


세석에 오르는 마지막 힘든 경사면이 눈앞에 들어선다. 아이젠이 믿음직해 거의 쇠줄에 손을 대지 않아도 설빙에 아이젠 발톱을 박아가며 한발 한발 내디딜수 있어 좋다. 이곳도 사람이 많은 계절엔 버벅대는 몇명의 아가씨들로 인해 금세 줄을 서는 곳이다. 그렇게 오르기를 한시간여 영신봉 오르는 초입세에 도달했다 저위에 오래된 초소도 보이고 세석평원의 이면인 험준한 암벽들이 보인다. 해는 니엿 니엿 서산에 걸리고. 이정표 앞에서 일몰을 바라본다. 담배 2까치를 피며 바라보는 일몰은 일출과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하늘 저편 낮게 깔린 구름 밑으로 사라지며 주위에 있는 구름들을 불태우는 모습, 마치 산능선상에 산불이라도 낸듯 일렁거리는 불빛은 세상 어느 네온사인이 저 모습을 연출할수 있을것인가, 이때 쯤이면 머리속에 늘 상상으로 그려지는 오로라의 모습이 펼쳐지는듯 하다.


만복대, 팔랑치, 노고단 반야봉과 이제까지 지나온 지리산의 주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고단쪽은 구름이 지나가는 길인듯 한줄기 구름이 종석대를 거쳐 구례쪽으로 빠른 날개짓을 하며 빠져나가고 있고, 멀리 백운산이 지리산과 높이를 견주듯 웅장한 모습으로 남서쪽에 자리하고, 지리산을 파노라마로 볼수있는 삼신봉이 청학동과 쌍계사 가는길을 알리며 저앞에 펼쳐져있다. 해는 벌써 서편 너머 넘어갔지만 능선 위 불꽃의 일렁임은 불꽃으로 날아드는 불나비의 허무한 죽음을 연상시키고, 서글픔이 울컥 치솟아 눈끝을 아리게 한다. 크놀프도 이런 빛을 많이 봤겠지.


' 괜히 센치멘탈해지는군. 훌쩍~ 팽!'


새로 지은 세석산장은 노고단산장 보다, 중청산장 보다 그 규모나 외양 자체가 다르다. 아직도 개장식 때 사용한 휘장이 걸려져있는 산장에 들어서니


'우아~, 호텔에 들어서는 것 같네'


널찍한 로비엔 티브도 시청할 수 있게 해놓고 통나무로 만든 실내 내부장식들은 용평에 있는 별장의 확대판 같다. 숙박부에 기장하고 친절한 직원의 안내로 내자리를 배정 받는다. 저쪽 침상은 학생들 이쪽은 30대, 내 나이 또래들 마치 직장연수 받으러 온 것 같다. 아직 사람 냄새보담 니스와 각종 건축자재들이 내뿜는 냄새는 집들이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을 들게 한다. 사람 사는곳엔 빨리 사람냄새가 베어야지. 그러고 보니 시간이 7시 부지런히 취사장에 보조색에 버너코펠, 스팸, 김치 등을 가지고 간다.


흠이라면 취사장과 화장실을 그전에 사용하던 산장을 이용해야 하므로 그게 좀 불편하다. 그래도 취사장엔 사람들로 북적대고 버너에서 내뿜는 열기로 훈훈하다.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을줄 알았던 산악부 팀과 슈샤인 보이가 같이 식사를 마치고 숭늉을 마시고 있고, 비브람골드는 이제 취사준비를 하는지 왔다갔다 하며 자리를 잡는다. 나야 혼자니까 대충 끼어서 버너를 고정 시켜 놓는다. 물이 또 저 밑에 있으니. 이그 귀찮아


"아니 노고단서 부터 따로 오긴 했지만 안면이 있는데 먹어보란 소리도 없어. 사람들이"


객적은 농담 한마디 던진다.


"아이, 아저씨 좀 일찍 오시지예. 식사 끝이라 드셔보시란 소릴 못하겠어예"


오잉~ 아저씨 게다가 극존칭 으~ 이런 차림이면 대학생으로까지 보는데 이건 완전히 노털취급하네. 어제 저녁에도 고기더니 식사 마치고 또 그쪽 팀은 고기파티를 한다. 나야 등산일정중에서 가장 기대하던 스팸김치찌게니까 그들이 부러울턱이 없지. 슈샤인 보이가 내 찌게를 보더니


"우와~ 이쪽도 무척 맛있겠네요."

"같이  드십시다."

"아니에요. 학생들 덕분에 배불리 잘 먹었읍니다."


나는 식사를 하고 그쪽은 고기에 맥주를 곁들이며, 이런 저런 애길 한다. 혼자 오니 호젓해서 좋긴 한데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그게 좀 아쉽단 말에 내일일정을 물으니 천왕봉에서 중봉, 써레봉, 치밭목에서 후발대와 합류한단다.


'음. 일정은 같으니 길을 잃거나 심심치는 않겠군. 치밭목 쪽은 초행이니 낼 아침 일찍 서둘러 합류해서 같이 가야지.'


화이트 소주 200ml 아쉽지만 반주를 곁들이고 학생들이 자꾸 권하는 소주잔을 포기하고 자리로 들어온다. 조금 있으니 산악부 팀이 우르르 들어오니 새삼 산장안에 활기가 돈다. 옆자리엔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아삼삼한 20대 중후반의 사람과 군하사관출신 같은 건장한 체격의 30대 초반 사람과 같이 자리를 하게되었다. 비브람 골드가 넉살 좋게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메트레스에 침낭을 깔고 뜨거운 수통을 침낭안에 들이밀고 나도 얘기자리에 끼어든다. 체격은 털복숭이에 찬찬히 뜯어보면 얼굴선이 강렬하면서도 오목조목 잘 생긴게 아랍계통 사람같이 생겼다. 장터목에서 세석 오는데 50분 걸렸단다.


'극기훈련 들어왔나 그렇게 빨리 오다보면 무슨 경치를 구경하면서 오지.'

"체력이 좋으십니다. "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 털복숭이에 눈은 선해 보이나 의지가 강직한게 서글서글 둥글 둥글하지는 않겠다. 그저께 무작정 지리산에 오고 싶어. 군용침낭에 라면 10개만 들고 로터리로 와서 세석으로 해서 노고단으로 갈꺼라는데 산밑에서 산 아이젠 발톱도 뿌러지고. 고생이 말이 아니란다. 과거에 축구를 좀 했나 본데 체력은 자신 있는데 이렇게 산위가 추울지는 몰랐다나. 신발도 워커를 신고 왔단다. 그렇게 해서 산을 배우는것이다.


비브람 골드와 체격과 두런 두런 이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겨울산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가활동으로 등산이 많이 보급되었는데도 너무 쉽게들 생각한다는데 중론을 모았다. 옆에 있던 아삼삼은 얘기에 끼어들고 싶은듯 눈웃음을 보이지만 침낭안에서 나올생각을 안한다. 취침 시간은 동계 9시. 이 산장엔 노인내들만 있나 피곤하다고는 하나 9시에 무슨 취침이야 그래도 10시까진 있어야지. 여자들은 이층침상을 사용한다. 절대 동료라고 해서 이층침상엔 올라가지 말란다. 자외선 차단 크림을 사용한지라 물티슈를 꺼내려는데 산악부 팀은 아에 물티슈 한통을 꺼네 세수하고, 발 딱고, 대단한 위생관념이다. 나만 자랑스럽게 물티슈를 사용할지 알았더니


'으음~ 으음.'


이런 얘기를 산악부학생들에게 들려주니 박장대소를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물티슈 한장씩을 돌리고, 그만해도 훨씬 개운하다. 히터가 가동대 더운지는 모르겠지만 1,600g짜리 거위털 침낭에서 자기엔 좀 더울듯 하다.


옆에 체격이 내 침낭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어흠! 어흠!

몇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소등을 하는데 자고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듯 하다. 헤드랜턴을 끼고 몇자 끄적인다. 슈샤인 보이가 오른쪽다리를 보이며 무척 아프단다. 종아리에서 정강이까지가 벌건데 봉와직염 같아 보이는데 근육통이라고 그런다. 맨소래담을 건네주고. 어찌 아프냐니까 동상인지, 근육통인지 열이 나면서 통증이 상당히 심하단다. 내가 보기엔 봉와직염 같은데......


내일 산행에 어려움 많겠다는 주위의 염려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것이라고 염려 놓으란말을 하고 더운물 찜질을 권해보는데 귀찮아서인지 그냥 잔다. 오늘까지가 조금 힘든 산행이였다. 산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에서 새로지은 호화호텔급(?)산장은 다시 문명의 도시로 나를 일순간 내몰은듯한 느낌이다. 마치 조직사회에서 연수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 인원이 얼마 되지 않자 배정 받은 자리에서 이탈 넓직한 자리로들 옮긴다. 그 덕분에 나도 활개를 치면서 잘수 있다. 얼었던 몸이 풀리며 몸에서 열이 난다.


체온으로 만도 충분한데 덥진 않지만 가끔씩 들어왔다 나가는 히터열은 통로쪽에 얼굴을 향한 취침자세에 코가 건조해옴을 느낀다. 안그래도 실내가 겨울이라 건조한데 히터까지 켜대니 몇번의 뒤척임에도 쉽게 잠은 오지 않는다. 위층에서 소근거리는 여자들의 잡답소리에 과민반응하고 "잠 좀 잡시다."를 외치는 다혈질이 있다. 그 정도 소리에 잠 못들었으면 어제 같은 소란엔 칼부림이라도 났었을 듯 싶다. 아니면 괜히 여자들에게 한번 으름짱을 놓은 것인지 같이 온 남학생들 체격도 만만치 않던데. 조용해지며 코고는 소리가 넓은 산장 침상 위에 나직히 울려퍼진다. 이제 좀 자야지



2월 3일


얼었던 몸이 풀렸는지 몸에서 나오는 열을 주체 못해 런닝, 팬티바람으로 침낭쟈크도 반 쯤 열고 잤더니 새벽녁엔 어깨부위가 시려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가뿐하지 않다. 어디서 얻어 맞은 것 처럼 이곳 저곳이 뻑적지근하다.

5시인지 알고 일어나 보니 학생들 팀을 제외하곤 다들 취침중,


'아니, 벌써 6시 30분.'


오늘은 죽었다 깨나도 치밭목까지 가야된다. 주말인지라 장터목은 그야말로 출근길 지하철 1호선 처럼 미어터지기 마련이고, 게다가 관광버스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이라도 몇팀 있다면 아예 비박을 하는것이 속 편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산장 중 제일 한적한 치밭목까지 가야한다.


일어나자 마자 색에 취사도구와 어제 먹던 찌게등을 가지고 취사장으로 간다. 일출이 일곱시 넘어야 있어서 헤드랜턴은 필수이다. 내가 제일 먼저 식사 준비를 하나보다, 주중에 오는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학생들이거나 자기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라 시간여유들이 있는지 서두르는 기색들이 없다. 밥하고, 찌게 데우고, 식사를 시작하니 옆에서 잠자던 체격이 라면하나에 개스버너를 가지고 들어온다. 벌써 식사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정말 빠르네요!"


자기 딴엔 미련곰퉁이 같이 생긴 내 모습이 어영부영 할줄 알았나 보다


"라면 하나 가지고 되겠읍니까? 밥하고 찌게있으니 같이 드십시다."

"우리는 볼을 차도 배부르면 못찹니다. 걸을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산에선 운동량과 추위가 있기 때문에 열량섭취를 제대로 해줘야 합니다. 꼭 잘해먹진 않아도 식사는 제대로 하셔야줘."

"..."


그러는 사이 벌써 식사를 다 마쳤다. 같이 나누어 먹고 장터목 산장까지 2시간이면 가니까 거기서 점심 일찍 해먹으면 될텐데, 굳이 사양하는것을 보니 자존심이 대단한게 역력히 보인다. 뜨거운 물을 끓여 식수통에 넣고 산장으로 돌아와보니 이제 기상하는 사람, 나랑 같이 일어났는지 알았던 학생산악부 팀은 벌써 출발준비를 하느라 배낭을 새로 꾸리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구만, 늦잠은 젊다는거에 한 특징인데......'


지체할 시간 없다. 발빠른 학생들 따라잡으려면 물티슈로 하는 세수고 뭐고 부지런히 서둘러야 천왕봉에서 치밭목까지 동행할수있다. 배낭 꾸리는 모습을 지켜본 체격은 정말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며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가 가져온 배낭은 당일산행용의 약 40리터 배낭. 옷가지와 여름침낭, 버너, 코펠이 다다.

침낭 넣고, 메트레스로 배낭을 싸고, 널널해진 배낭에 마구 때려 넣는다. 맨 나중에 라면과 떡쌀 남은것 코펠과 행동식으로 먹을 옥수수통조림, 그리고 오리털 파카를 넣는다. 체격과 비슷한 시간에 산장 문을 나서는데 어제와는 다르게 좀 경직된 표정이다.


"오늘 날이 흐린데, 일기는 괜찮을까요?"

"글쎄요 저쪽 하늘이 밝은것으로봐서 지금 구름이 넘어가느라고 눈가루를 뿌리는 겁니다. 오늘 날 좋을겁니다."

"제 옷차림이 바람에 잘 견딜까요. 좀 걱정되는데......"


스키파카 복장의 그가 상당히 염려된 눈빛으로 이것 저것을 확인 점검한다. 워커는 워낙 추운날씨라 얼어있긴 했지만 젖어있진 않고, 그정도 복장에 가벼운 배낭이라면 노고단까지 갈듯도 싶다.


" 초행길이니까 주능선상에서 길 잃지 않게 주의만 하시면 됩니다. 주능선상엔 그래도 간혹 종주팀들이 있으니까 되도록 같이 산행하시고, 이상하게 계곡쪽이나 지능선으로 들어섰다 싶으면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오십시요. 지리산은 산이 깊기 때문에 주 등산로에서 길을 잃으면 민가가 있거나 사람이 있는 곳까지 적어도 3~4시간 길게는 7~8시간 걸립니다. 안전사고에 주의 하시고요. 단독산행이니 만치......"


"저기 연하천 쪽으로 가는 팀들이 있군요. 어서 같이 가십시요."

인사를 나누고 영신봉 가는 계단길의 그의 모습은 단촐한 장비와는 다르게 듬직해 보인다.

'저 차림에 연하천에서 잘려면 상당히 고생 좀 하겠군.'


아까 나가서 장비를 착용하던 학생팀들이 벌써 촛대봉 쪽으로 넘어가 흩날리는 눈가루에 흐릿하니 시야가 가려 안보인다. 마침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비브람골드에게 세석산장 개장식에 쓰였던 휘장 앞에서 사진촬영을 한장 부탁한다. 광량이 부족해 뿌옇게 나올것이다. 그렇다고 무게 나가는 캐논카메라는 들고 다니기 귀찮고, 올림퍼스 파노라마기능의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지.



발 빠른 학생들이라도 천왕봉이나 장터목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경사 가파른 촛대봉까지의 길을 한달음에 올라가 세석산장을 보니 의신 내려가는 쪽으로 한사람이 내려가고 흩날리는 눈가루 속에 산장은 일본 다테야먀현에 있는 어느 산장 같은 모습이다. 북한산장도 헐고 통나무로 다시 짓는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촛대봉(1704M) 지리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1700미터 고도를 올랐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구름이 넘나드느라 맑아있을 경우가 별로 없다. 늘 이슬비가 오거나 오늘 처럼 구름이 넘어가며 뿌리는 눈가루,  드라큐라백작이 살고있는 성에 이르는 길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것은 구름이 자주 끼는 지형상의 특성도 있겠지만, 삐죽 삐죽 나와 있는 기암괴석들로 한층 더 분위기를 더한다. 촛대봉을 지나 얼마 안가 보니 학생들이 눈 위에서 촬영을 하느라 지체했는지 영화를 찍고 있다.


"오늘은 금방 오셨네예."

"예. 학생들 빨리 따라 붙을려고 용을 섰죠."

"담배 한대 태우시지예."


복학생인듯한 학생이 유난히 친근하게 말을 자주 건네오고 이것 저것 마음을 써준다. 혼자 종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일까. 오늘은 심심치않게 가겠다. 삼일을 혼자 다녔으니 오늘 하루쯤 사람들과 도란 도란 얘기 하며 걷는 산행도 나쁘진 않겠다. 그래도 난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일단 사람들과 어울리면 쓰잘데없는 농담에 주접을 잘 떨어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성격이다. 웃음의 종류가 검은 웃음이다. 주위의 한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난도질을 한다던가, 화제의 전이에 대한 방법으로 예측못할 결말을 이끌어 나가 내 자신 얘기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결론은 하나 웃자고 한 얘기라는 점엔 처음 보는 사람도 싫치않은 표정들이다.  사람들을 잘못 선정해 도마위에 올렸다가 찔끔하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마음 속에선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맑은 공기속에서 하하 웃으면 그뿐이니까. 


산악부 여학생 중 작고 복스럽게 생긴 여학생이 한명 있는데 60L 키를 넘는 배낭에 러셀을 하며 나가야 하는 산행 길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목소리도 한톤 높여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것이 워낙 타고난 성격이 좋은 듯하다. 연하천산장에서 자기것인지 알았던 비브람 골드로 한바탕 소란을 피게 했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다. 그때의 낭패감으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던 것도  순수한 마음에서 였기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변변히 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비브람 골드가 당장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케 한다.


"삐삐는 키를 넘는 배낭을 지고도 힘든 기색도 없네요."


첨 보는 사람이 대뜸 연관성 없는 별명을 붙여 자기를 호칭하니 어안이 벙벙하다가 곧 농담으로 알아듯고 해맑은 웃음을 보낸다. 자기 끼리 있을때는 발랄하다가도 내가 한마디 씩 던지는 농담엔 소녀 티를 벗지 못해서일까. 앞만 보며 골난 사람들 처럼 걷는다


'무안하게시리'


남학생들과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걸으나, 여학생들에게 던진 애기들은 저 산 넘어로 그냥 넘어가고 만다.


'내 애기가 재미없게 느껴지나???'


연하봉 못 미쳐 안부에서 또 한차례 사진을 찍는다. 학생들과 쭉 동행한 슈샤인보이는 어느덧 일행이 되어 여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눈을 던지며 막역한 사이가 된것처럼 웃고 떠든다. 참보기 좋다. 날씨도 강한 바람에 구름은 저 남해바다로 날려가고, 키가 나만한 여학생이 나를 얼핏 보더니 이제까지와 달리 밝고 낭랑한 대구 사투리로


"아저씨 머리가 온통 백발이 되었네예."


하는 것이다 출발 할때 부터 이어밴드만 하고 모자를 쓰지 않은 탓에 지나가는 구름의 얼음결정이 그대로 머리에 붙어 호호백발이 되었나 보다. 하긴 기온이 차니 입가, 코주위 수염과 숨결이 닫는 앞섶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어느새 5일간 거울도 안보는 남자가 된것이다.


연하봉을 오르는데 여학생들이 자꾸 지쳐 뒤로 쳐진다. 눈길도 러셀이 별로 안되어 있어 무릅을 넘는 눈밭을 어기적 어기적 걸어 오르려니 내리누르는 배낭무게와 더불어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남학생 중 한명이 힘들어 하는 여학생들에게 소리친다.


"산행에서 매일 저녁 고기를 먹였더니 훨 훨 나르네 날라."


조금 가다 마른 체격에 비해 엄청 큰 배낭을 맨 재학생 산악부장인듯한 남학생이 "나 못가"를 외치며 퍼질러 주저 앉는다. 자기 짐은 텐트에 장비에 휘발유등 전혀 무게가 줄지 않는것들 뿐이란다. 혼자 산행을 하다보면 산길에 몸이 적응하는것도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먹거리의 무게로 갈수록 산행이 가벼워 진다. 대부분의 여학생 배낭은 크기만 클뿐 빈프라스틱 통이거나 얼마 무게 나가지 않는 장비들 뿐이다. 산행 초기의 무게를 계속 지고 올라간다는것은 고도를 높히고 험악한 산길에선 내던져 버리고 싶을 뿐이다. 텐트 두동을 가져왔는데 하루도 못 쳤단다.


겨울에 막영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휘발유도 여분으로 많이 가져오게 마련인데 그 연료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한북정맥종주를 하면서 3개의 휘발유를 가져갔는데 일일이 눈을 녹여 식수를 충당하고, 취침 전 텐트에 불을 지피니 3일 만에 기름이 바닥이 나 청계산에서 하산을 한적이 있었다. 벌써 없어져야 할 무게들이 그대로 남자들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산책코스이다. 이렇다할 가파른 길도 가로막은 암벽도 없는데, 연일 산행에 피로해진 근육은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얘기하느라 쉽게 연하봉을 오른 후 전혀 러쎌이 되지 않은 길을 만났다. 내려서기만 하면 장터목산장인데, 길이 이쪽이 맞는데 오늘은 아직 오간 사람이 없나 보다. 하긴 세석에서 제일 먼저 출발했고. 장터목에서 정상을 간 후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하산하지. 다시 세석까지 오는 경우는 적으므로, 10여명 되는 인원이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죽 벌어졌다. 선두에서 두번째로 가던 내가 길을 잘 못들었나를 살피는 동안 앞에 가던 한 학생이 러쎌되지 않은 눈구덩이를 잘못 디뎌 내리막길에서 거꾸로 눈밭에 처박힌 채 일어나질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다.


"하하하, 하하하하"

"아저씨 빨리 일으켜주세요"


얼굴에 눈을 잔뜩 묻히고 일어서는 여학생의 표정엔 내 웃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없다. 여기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깊은 눈속에 파묻힐수 있을까.


"그림이 좋았는데 사진기 오면 그 상태로 한장 찍어 달라고 그래요."

"그럴까예"


뒤쳐졌던 일행이 그지점에 이르렀을때 또 한명의 여학생이 비슷한 장소에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눈에 파묻힌다. 박장대소 웃는 일행을 뒤로 하고 먼저 장터목산장으로 내려선다. 이곳 또한 바람이 많은 곳이다. 취사장 있는 곳에서 잠시 쉴까 하다가, 산장 담벼락에 배낭을 기대어 놓고 자외선차단크림을 꺼내 바르고 고글을 다시 꺼낸다. 바람도 바람이거니와 눈빛에 반사되는 강렬한 태양빛이 눈을 아리게 하기 때문이다. 로타리로 해서 천왕봉으로 내려왔다는 한 젊은이는 내머리를 보더니 모자를 쓰시지 않았는냐고 물어본다.

"땀이 많아서요."


뒤를 따르던 학생 일행이 내리막에서 눈썰매를 타고 오느라고 괴성을 지르고 난리법석이다. 겨울산행에 묘미는 눈썰매다. 오버트라우져나 비닐포대를 깔고 타고 내려오는 눈썰매는 인공 눈썰매에 비해 장애물이 많고 경사도가 심해 그 스릴이 뭐에 비할 수 없다. 산스키라고 해서 스키장에서 타는 스키보다는 플레이트자체가 짧은 스키가 있다. 아직 산행을 다니며 그런 스키를 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캐나다만 해도 그런 산스키투어가 15일씩 걸리는데가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산악자체에 구릉이 없고 산림도 노년기에 접어들지 않아 장애물이 너무 많다. 산악전문잡지를 보면 일제시대에도 산스키를 타고 금강산을 활강하는 사진이 있던데,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삼천리화려강산이라곤 하나 지상에서 이륙해서 4분이면 동해안과 서해안을 굽어 볼 수있는 좁은 국토, 그나마 반동가리가 짤려져있는 우리땅에 스키장이다 골프장이다를 건설하느라 한때는 국책사업으로 산림녹화를 했던 곳을 뻘겋게 벗겨놓는 멍청한 짓을 하다니.  지금 하고 있는 골프장과 스키장을 건설해도 늘어나는 레져인구를 감당 못한다고 해서 산림을 황폐하게 하는 그런 자연파괴의 엄청난 실수를 범하기 보담 정히 스키를 타고 싶고, 골프를 치고 싶으면 해외에 나가서 하라고 하고 싶다.


외화낭비하는 것이 국토를 파괴하는 것 보담 낳기 때문이다. 통일 전 까진 스키장,골프장 건설을 억제해야 한다면 매니아들의 원성을 들을지 모르지만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리프트를 타기 위해 달달달 떨고 있는 시간은 없단다. 스키장에 가본 사람, 골프장 부킹을 해본 사람들은 그 짜증 나는 대기 줄 속에서 헐벗어 가는 국토를 생각했을까? 레져사업육성에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라고 생각했을까? 비단 내가 산을 사랑해서만은 아니다. 생각해 볼일이다. 5공,6공때 허가 해준 골프장 공사의 공사중단으로 우천시 쓸려내려온 토사로 혼탁해진 하천과 농지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가! 그런곳만 해도 경기도내에 20여곳에 이른다 하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모습이다.


FM라디오를 틀어 놓으니 전라도와 경상도가 마주치는 곳이라서 조금의 방향전환으로도 경상도쪽 방송과 전라도쪽 방송이 나온다. 조금 있으면 곽영일의 올드팝 시간인데, 대부분이 아는 노래들이라 듣기 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전 학교근처나 종로학사주점에서 노상 듣던 노래를 이젠 올드팝시간에나 듣게되다니......


학생들이 취사장 담벼락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 촬영을 한다. 세석에서 오는 동안 배낭머리주머니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기 귀찮아 안찍은 사진을 좀 부탁해서 고글도 쓰고, 바람도 세차지 않은데 오버쟈켓에 붙어있는 모자도 쓰고 한겆 자세를 잡아본다. 빼보면 별볼일 없을텐데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즐겁기 이를데 없다.


학생들은 5시에 기상해 식사를 마쳐 시간이 10시 20분경인데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잖다. 라면을 꺼내고 가장 식수 사정이 어렵고, 물 뜨러 내려갔다 올려면 다리가 후달리는 산희샘으로 물을 받으러 간다. 초코바 하나와 건포도를 좀 먹고, 그동안 마음 써준 보답으로 학생들에게 레모나 하나씩과 건포도를 한주먹씩 쥐어준다. 받아쥐는 여학생들의 표정에서 쑥쓰러움을 읽는다. 몇일씩 세수도 못한 여자들이지만 그런 표정에서 천상 여자들임을 확인한다.


참 이상도 하다. 난 여자들이 엉겁결에 내뱁는 '어머'란 말에서 예전 부터 유독 여성스러움을 발견한다. 풍만한 가슴이나, 날씬한 다리, 육체의 선을 들어내는 그런 옷차림에서 느끼는 여성스러움과 다르게 이 '어머'란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우회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여성스러움의 표현이라면 나만의 감정일런지. 

12월 31일 일출을 보러 왔었다는 사람의 얘기론 장터목 산장에 인파가 몰려 여자들은 산장안에서 자고, 남자들은 취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바람벽과 지붕만 얹은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그나마 자리가 없어 바람벽 뒤에서 밤새 오돌 오돌 떨면서 잠 한숨 못잤으며, 그게 티브방송에도 보도가 되었단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학생들의 권유에 정상에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먼저 일어선다. 장터목 산장을 옆으로 돌아 제석봉에 오르는 길은 가프르고 온통 설빙으로 좀 험하다. 3키로 되는 구간인데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어 그렇지 편한 길은 아니다. 장터목산장을 돌아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오르다 보면 고사목(사실 비명횡사목이지만)이 을씨년스럽게 있는 제석봉이다. 이승만정권당시 몰래 도벌을 하던 사람들이 도벌현장을 감추기 위해 불을 지른 엄청난 과오가 있는 곳. 언제인가 천왕봉에서 일몰을 보고 내려갈때 이곳의 나무들은 화제로 인해 때죽음을 당한 무덤이란 생각에 움찔한 적이 있었다. 휴식년제로 사람들이 못들어가게 막아 녹은 울타리 넘어로 대구경망원렌즈로 노고단을 촬영 하던 사람에게 쑥쓰럽게 일회용 카메라를 들이밀고 한장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지리산 주능선을 등뒤로 추억 한페이지를 필름에 담는다.


제석봉(1806M) 촛대봉 보다 100M가 높은 곳은 구름 하나 가리는 곳이 없는 양지바른 곳이지만,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으로 양볼이 얼얼하다.


'아차 립스틱을 안 발랐군.'


지난 9월 왕시루를 탔을때 능선상에서 주운 립스틱인데 다시 지리에서 사용하게 되다니, '립스틱아, 나랑 팔도유람을 하게 될줄이야 낸들 알았겠는냐 넌들 알았겠느냐.'


통천문을 통과하기 전에 "로봇태권V"라고 내가 명명한 바위 조금 못 미쳐 커니스진설릉이 두길이 넘는다. 몰아치는 북서풍에 눈보라가 올라치다 바람 잦은 남사면에서 차곡 차곡 싸인 립리이프 모양의 이 설릉은 그냥 가기 정말 아쉽다. 담배를 한개피 피고 한참이나 기다리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구도를 잘 잡아서 건내줘도 사진사 마음이라  정작 생각했던 부분이 나오질 않아 실망한적이 많지만,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통천문 계단을 올라 바위를 건너뛰는 순간 '휘까닥'하고 떨어질뻔 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온통 빙판이니 정신차리고 오르라는 뜻일게다. 철주가 박힌 곳에서 아이젠도 안 신은 일행들이 철주에 매달려 오도가도 못하고 아연한 눈으로 하산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조금 돌아보면 편한 길이 있는데, 철주가 박혀있으니 그 길 따라 가다가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것이다. 정상 바로 못 미쳐 칠선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아예 철조망으로 페쇄시켜 놓았다.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 6시간을 하산하다, 이대로 지쳐 버리는게 아닌가 싶어 야영자리에 이르렀을때 생각의 여지 없이 야영을 했던 칠선계곡. 등산로에 유난히 많이 떨어져나간 등산화의 뒷축. 장마나 집중 호우때 쓸고 나갔던 물길이 걷고 있는 계곡길에서 10~20M 이상 되는 계곡 만수위 위치를 확인하고 소름이 쪽~ 끼쳤던 일. 하산 후 다른 등산로와 다르게 계곡 초입세에 노약자와 장비불량자는 절대 등산을 불가한다는 섬뜩한 경고를 담고 있는 푯말. 그날 칠선으로 하산 하는 길에도 그곳이 장터목산장으로 하산 하는 길로 알고 착각해 내려서다 다시 올라서던 초행길의 일단의 등산객들. 몇일전 기상이변시는 구조의 손길도 못 미치는 남한 최대의 비경지 칠선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통제되어 있다


'민족의 기상,여기서 발원되다.'「지리산 천왕봉 해발 1915M 」


정상의 의미는 별로 두고 있지 않았다. 저멀리 덕유산능선과 가야산이 보이고, 사방으로 확 트인 시야가 모두를 굽어보게 한다. 청명한 날이다. 강한 바람과 따가운 햇살, 정상 주변엔 표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이 몇몇있다.


먼저번 일출을 보러 왔을때 70~80명의 등산객이 일몰의 지루함을 달래며 어제 밤 산장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산행온 팀 덕분에 비좁은 산장안은 코고는 소리, 늦게까지 소주를 기울이며 떠드는 소리에 잠 한숨 못잤다는 얘기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대화의 꽃을 피우느라 피곤한 사람의 단잠을 깨우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조용히 해달랬더니 아줌마曰 " 저기 저렇게 크게 코고는 소리로 자는 사람도 있는데 얘기 좀 하기로서니 무슨 그렇게 잠을 못잔다고 핀잔을 주느냐"란 말에 싸움이 될것 같아 더는 애기 하지 않고 참았다는것과 밤세 밥해 먹는다고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일출 보러 올라오는 그 시간에도 밥해먹는다고 들락거린다는 둥. 간밤의 불평을 토로한다. 천왕봉 바로 밑엔 3군데의 야영자리가 있는데, 늘 텐트가 있는 곳은 그곳에서 차를 팔거나, 기념메달을 파주는 사람의 것이고, 그 앞에도 야영자리가 있는데 어제밤에 올라왔던듯 잠자느라 일출을 못볼게 염려되었던듯 나이드신 분들이 큰소리로 일출 보라고 고함을 치는 소리에 깨어 나왔다가 밖이 추워 침낭을 덥어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펭귄 뒷모습을 보는듯 해 일출을 기다리는 무료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적이 있었다.


지금은 정오가 약간 넘은 시간 그때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느 산에서 산행을 하고 있을지, 생업에 종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게 되겠지.


평탄한곳을 찾아 라면 끓일 준비를 하고 눈을 퍼담는 사이 장터목에서 그 사이 라면을 먹었는지 학생산악부원들이 학교산악기를 손에들고 애국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교가를 부른다. 참으로 보기 좋은 장면이다. 힘들었던 종주산행의 여정이 눈앞을 스칠것이다. 라면에 지난번 남은 떡쌀을 넣고 끓이니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래도 누구에게 먹어보라고 권할수 없는 입장이 눈녹인 물에 끓인데다 산행후 한번의 설겆이도 하질 않아, 코펠 주위를 보면 이제까지 무엇 무엇을 먹었는지 대충 짐작할수 있는 흔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때가 때인지라 시장기를 느끼는 등산객들은 힐끗 힐끗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누구는 문득 지리산이란곳에 가보고 싶어 아무 준비도 없이 왔다가 허기지고 배고파 벽소령 근처에서 밥을 해먹는 사람들을 보고 "나에게 밥을 주지 않으면 당장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것입니다."라고 해서 그 일행들과 식사를 하고, 같이 산행을 했다는 일화도 있었다. 배고프면 만사가 귀찮은 것이다.


학생들이 먼저 중봉쪽을 향해가며 동행 하자고 한다. 이번엔 부지런히 쫒아 가야지 길도 잘 모르는데. 오가는 등산객이 많다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지만 중봉-치밭목길은 중간 중간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좀 험하고 인적이 없다. 눈위에 러쎌흔적이 있겠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은 바이다.


천왕봉과 중봉사이 안부는 어림짐작으로 약 200-250M의 고저차가 있다. 천왕봉이 1915M 중봉이 1875M니까 눈 대중을 집자면 그 정도 되어 보인다. 안부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무척 가파른 길이다. 눈이 무릅 이상 와 있고 얼어있어 쌓인 눈을 장애물 삼아 옆걸음으로 미끄러지다 싶이 내려오는 길이 엉덩이눈썰매 보다 스릴있어 좋다. 눈이 온지 2일이 지났는데도 적송 한그루에 눈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학생 힌명이 사진 찍기를 권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속에 들어가 한장 찍는다. 이렇게 마음 써주는게 얼마나 고마운가.


오후 들어 바람이 잠잠해지니 산행 중엔 더운 듯하다. 저체온에 걸릴까바 입고 있던 오버자켓도 벗고, 담배도 한대 피우느라 제일 뒤쳐져 가는데 아무래도 발 빠른 학생들과 같이 가긴 무리인듯 싶다. 배불리 먹은 점심으로 운신하기가 힘든게 가쁜숨이 식식하고 몰아쉬어진다. 그래도 가끔 가다 나타나는 2~3미터의 바위길로 앞서가던 여학생들이 그 속도를 늦추면 따라붙고 따라 붙곤 했는데, 이어밴드 한 귀며 앞이마도 덥고, 등산화 끈도 다시 맬겸 아에 배낭을 내려놓고 볼일도 보고 파일잠바도 벗어 배낭안에 넣는다. 저 밑으로 칠선계곡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얼핏 보기엔 빤한 계곡길 같은데......


남방차림에 그 두꺼운 플리스장갑도 벗으니 한결 상쾌하다. 바람은 없지만 기온은 차서 몸에서 김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어릴때 한겨울에도 축구나 눈싸움을 하고 놀다보면 머리고 옷에서 이렇게 김이 났는데, 얼마만에 한겨울에 이토록 땀을 흘려보나. 보기보담 중봉오르는 길이 가파르진 않다. 쉬엄 쉬엄 올라와서 이기도 하겠지만 날씨가 좋은 탓에 멀리 경치를 조망하며 오르니 힘든지를 모른 탓일수도 있다. 중간에 옷벗고 어영부영했는데도 중봉 정상 못 미쳐에서 학생팀과 다시 만난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있다보니 산행이 늦다. 그런걸 세석까지 따라붙지 못했으니 얼마나 내 걸음이 느렸을까.


중봉에서 하봉으로 이어지는 길과 써레봉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의논을 한다. '사람과 산'지에서 하봉과 중봉 사이에 계곡으로 해서 치밭목으로 가는 길이 새로 열렸단 말과 슈샤인보이가 자기가 가본길이라며 써레봉으로 해서 가자고 한다. 쎄레봉으로 가는 길은 약간 험로이며, 중봉과 하봉 사이 게곡으로 해서 가는 길은 좀 수월할듯 쉽지만 길을 잃을수도 있다. 써레봉쪽으로 하산 하기로 하고 내려가니 하산길이 만만치 않다.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눈이 많이 쌓여있어 러쎌을 앞에서 하면서 내려가도 발이 눈속에 파묻혀 길 밖으로 넘어진다. 등산로가 좀 넓고 나무들이 있는 곳에선 눈썰매를 타고, 가파른 곳에선 먼저 내려간 사람이 서서 만약에 다른 곳으로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도록 제동을 해준다. 구름하나 없는 맑은 날씨에서 너두 나두 봅슬레이선수들이 된것 같다. 역시 경상도 싸나이들이라 그런지 산행 중에도 대부분 내가 말을 붙힌다.

여자들끼리 산행을 하면 좀 힘들어도 도란 도란 애기를 하며 걷는데 통 얘기들이 없다. 첫번째 나무사다리 위에서 잠시 서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한사코 나에게도 건네지만 그때까지 점심먹은 배가 꺼지질 않아 끝끝내 사양하고, 간밤에 비브람사건 얘기를 나누며 파안대소들을 하고 내려서는데 맞바로 보이던 바위를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빙둘러서 간다. 길이 없나 싶어 바위 넘어를 보다가 줄보썬그라스가 있어 집어들어보니 산악부장 것인듯 하다.


"횡재했네, 줄보 썬그라스 하나 장만하려 했는데 여기서 줍다니."

항상 선등을 하던 산악부장이 순간 자기 얼굴을 만져보다 위쪽을 올려보며 " 아차 내 썬그라스"


잘 좀 챙겨 갖고 다녀야지. 선배인 듯한 남학생들이 한마디 씩 던진다.


오르막길도 오르막길이지만 하산하기도 힘이 안들다 뿐이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암벽에서의 하강은 자일과 하강기 없이 하게되면, 바위를 오를때 보다 두려움과 발을 디딜곳을 찾기 힘들어 여간 위험이 따르는게 아니다. 써레봉까지의 길은 몇개의 철제사다리가 있지만 바위를 타야 할곳이 있다. 큰 배낭에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열등한 여학생들이 그런곳을 만나면 마냥 뒤에서 서서 기다려야 한다.

어떤 곳은 손을 안 집고 아이젠을 박아가며 내려가도 되는 곳인데도 다리가 짧거나 담력이 되질 않아 한발,한발을 매우 신중하게 내딛는다. 안전산행이 최고다. 좀 늦더라도 자기체형에 맞게 움직여야지 쫒기듯 하거나, 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그대로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어차피 자기의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 손가락을 삔다거나 발목을 삐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인디안걸이라고 별명을 붙인 나만한 여학생은 노란색 고어복과 머리띠를 두르고 긴머리를 질끈 묶고 햇빛에 끄슬린채로 날랜 몸을 움직여 벌써 저 앞으로 가고 있는데, 삐삐와 그의 친구들이 헤매고 있다. 어떤길은 꼭 바위를 붙어가지 않아도 되는데 보는 시야가 좁아, 구태여 바위로 간다. 길이 여기 뿐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길 잘하는 나는 우회하는 길을 찾아 쉽게 쉽게 내려온다. 자꾸 넘어지는 한학생이 있으니까 복학생이 답답한 마음에 "아이젠으로 팍팍 박아가면서 걸어야지" 하며 요령을 알려준다. 눈이 있는 길에선 체중으로도 아이젠이 박히지만 좀 가벼운 몸이거나 청빙 같은 경우는 아이젠이 채 박히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중심을 움직이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구나 급경사의 바위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자세히 보면 바위 전체가 얼음에 쌓여있는 것이 아니고, 바위 면이 노출된 곳이 있는데 그곳에 고무창을 밑착 시키고 마찰력으로 오르면 되는데 얼음에 대한 미끄러움의 공포가 잔재해 있어 의례것 바위위에 얇게 얼어붙은 얼움위에 아이젠을 박을 생각을 한다.


슈샤인보이가 왼쪽계곡을 바라보다가 저기 보이는 저곳이 치밭목 산장이라며 직선거리로 약 500미터 정도 되는 곳을 가르친다. 정말 하봉과 써레봉에 싸여 조용하고 아늑해 보이는 것이 취침인원 40명이라고 하는 적은 산장으로 아늑함을 멀리서도 옅볼수 있다. 앞에 보이는 써레봉에서 3고개를 넘어가 좌측 계곡을 타면 오늘의 숙박지 치밭목이 위치하고 있는것이다.


써레봉에 다다르니 40대부부가 막 올라서며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예. 천왕봉까지 갑니다."

"천왕봉까지 가시려면 서두르셔야 일몰전에 장터목 가시겠네요. 어쩌면 천왕봉까지 일몰전에 도착하기도 힘들지도 모르고......"


그때가 3시30분 빠른 걸음이라고 해도 6시에나 천왕봉에 오를텐데, 천왕봉에서 장터목이야 달도 있고(세석에서 잔 날이 보름이였다)하니 어렵진 않겠지만 여자분이 있으니 염려가 되는지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나름대로 시간 계산을 하고, 각자의 의견을 얘기한다.

리나라 산중에 가장 인심 좋은 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단연코 지리산이라고 애기할수있다. 육산이면서도 장엄한 주능선이 펼쳐지는 지리산의 4계는 아무때나 와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산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구비 구비 계곡 마다, 봉우리마다 전설이 서려있다. 설악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빼어난데 비해 전설을 간직하지 못한것은 인간의 터전이 설악 깊숙히 까지 파고들지 못했던 산이고, 지리산은 유사이래로 인간과 같이 한 산이여서 곳곳에 서려있는 전설과 설화를 간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설악산에도 자주 가보았지만 예의 인사말외엔 낮모르는 등산객끼리 오가는 정이 없다. 아니 지리산에서 보다 적다란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지리산산장에선 혼자와서 밥해먹는 경우라도 금방 친숙해진다. 능선종주를 하다보면 거의 같은 시간에 산장에서 출발 같은 산장에 묵게되고, 산행중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일종에 연대감 같은게 형성되는 반면에,설악산 같은 곳은  둘러싸인 가야동 계곡, 구곡담, 공룡릉, 천불동으로 자고 일어나면 뿔뿔이 흩어져서인지 지리산산행 인심만은 훨씬 못하다. 설악산만 해도 산꾼 보다 등산객이 등산객 보담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저희들끼리 놀러와 저희들끼리 놀다 저희들 끼리 가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혼자들어와 여럿이 되고, 많은 사람을 알게 되는 곳이 앞에 말한 그런 이유에서 이리라 생각해본다. 지리산에서 한달 가까이를 생활할때 7~8일치 가져온 쌀이 떨어진 이후  등산객들이 하산하며 놓고간 쌀과 부식으로 쌀과 부식을 사러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하신길이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5~6시간 걸리다 보니 짐을 덜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쩐지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오기 때문에 지리산에 들어와 있다는것 하나만으로도 앞에 말한 연대의식이나 동질감등을 느끼기 때문이다.


써레봉에서 치밭목까지의 하산길은 완만하여 발걸음만 옮기면 되는 그런 무난한 길이다. 급경사를 내리며 제동에 신경써야 하는 것도 상당히 발에 무리가 가고 무릅에 무리가 가는데 이곳은 여유롭다. 그야말로 됫동산 약수 뜨러 가는 길인가 싶다.오가는 사람들도 전무하다 싶이하고.

산장이 보이는 곳에 왠일로 야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토요일이라 산장에 자리 없는것 아냐.'


학생들은 산장 위쪽으로 있는 텐트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하산길의 땀을 식히고 있다.


"수고했읍니다."

"수고했읍니다."


저마다 밝은 얼굴을 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장에 들어서니 정말 자그마한것이 침상도 나무를 얽기설기 역어 만들어놔 인공의 맛이 별로 없고 그야말로 오두막집에 들어선 느낌이다. 산장입구에 동아대학교 산악부 동계훈련이란 제작한지 좀 되어 보이는 현수막이 드리워져있다. 어쩐지 산장 근처에 때 아닌 텐트들이 많다 싶었다. 산악잡지에 소개된 산장주인인 민선생의 사진을 얼핏 보긴 했지만 어느분이 민선생인지 모르겠다. 단정한 모습에 한분이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아 이분이 민선생인가 보군.' 마음씨 좋은 동네아저씨 같이 생겼다.


진돌이와 진순이 두마리의 진돗개가 있는데 그중 한마리가 마구 짖어대며 내게 물듯이 달려온다. 어려서 부터 개를 좋아했고, 지금도 개를 보면 꼭 만져주고 가는 습성이 있는 나이지만 사납게 짖어대는 송아지만한 개에겐 어쩐지 머리를 쓰다듬다가 팔뚝에 이빨자국이 남을것 같다. 종종 그런적이 있기 때문이다. 개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식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꿰뚤어보고 그러나......


5시 정도 뿐이 안되었는데 밝은 곳에 있다 빛이라곤 조그만 창문 하나와 문틈으로 들어오는빛이 다인 산장안에 들어서니 어둠에 익숙칠 않아  야간사격시 하던 버릇으로 이원시로 실내를 살펴보고 저쪽 안쪽에 자리를 잡는다. 문가에 자릴 잡으면 들락거리는 사람으로 외풍으로 인해 춥기도 하지만 문여닫는 소리에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건너편 침상은 조교나 강사들이 차지를 하고 있고, 나중에 얼마나 사람이 더올지 몰라 일단 내자리 하나만을 차지하고 짐을 풀어놓는다. 해발 1400M의 치밭목 산장의 침상은 여느 산장과 마찬가지로 치질이나 냉증 걸리기 알맞게 매우 차다. 빨래판 메트레스를 깔고 앉아 대충 짐정리를 하고 식수를 뜨러 내려가니 샘이라기 보담 조그만 개울물 같은 곳에 얼음이 얼어있고 커다란 코펠 하나 들어갈 만큼 얼음이 깨어져 있다. 밥하는 코펠 하나와 수통에 물을 채우고, 올라와 마지막 지리에서의 만찬 준비를 한다. 갖고간 스팸도 다 떨어지고, 커다란 감자 두개와 양파 하나를 썰어 넣으니 조그만 코펠이 꽉찬다. 옆에서 아펙스 버너를 만지작 거리며 미역국을 끓이던 한 사람이 "혼자 오신것 같은데 그렇게나 많이 찌게를 끓이십니까?"

아마 코펠이 작아 국물이 흘러넘칠것을 염려해 하는 말인가 보다. 그도 그럴것이 끓이다보면 다 넘치기 때문이다. 여럿이서 간다면 큰 코펠를 가지고 다니는것이 밥하기도 좋고 음식하기도 좋다.


"예. 다 방법이 있지요."


고추장뽁음캔과 된장을 적당히 풀으니 이건 넘치기 일보직전이다. 불을 점화하고 중간 불에 놓고 물이 덮혀질때쯤 불을 줄여 은근히 오래 끓인다. 이러게 끓이면 감자와 양파가 국물에 풀어져 아주 진한 된장찌게가 되는것이다.


'여기에 풋고추하고 멸치 좀 넣으면 기가 막힐텐데'


찌게 끓이는데 30여분 정말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된장찌게가 되었다. 맛을 보지 않아도 끓고 있는 찌게국물의 점도를 보고 있으면 알수있다. 정상에서 정상주 하느라 마지막 술을 마신지라 알콜이 하나도 없다.


'술 생각은 없는데 안주가 아까우니까 하나 사? 참자 오늘이라도 알콜기없이 자보자.'


술생각을 없애기 위해선 배불리 먹어야 한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 7시가 채 못되었다. 산장에 들어와 취사준비하다보면 취침 시간인데, 너무 빨리 하산 하는 바람에 취침시간까지의 시간이 무료하게 남는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슈샤인보이도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식사준비 안 합니까?"

"예 아까 그 팀들에게 쌀을 다 주고 같이 하기로 했읍니다."

"그거 잘됐군요. 찌게한게 많아서 같이 드시자고 할려고 했는데......"


널려있던 짐을 정리하는 사이 옆에 있는 슈샨인보이는 침낭을 깔고 들어가 있다. 피곤해서이기도 하지만 마땅히 할일도 없는 추운 산장안에서 그러고 있다 보면 깜박 잠이 들기 마련이다. 슈샨인보이는 산행 중에 피켈을 던져 놓는다는것이 바위에 맞고 손잡이 부분이 부러져 나갔었다.부러져 나간 손잡이 부분을보니 약하게도 만들어 놓은게 피켈의 날 부분과 봉 부분이 연결된게 아니고 프라스틱으로만 연결되어 있었다.


"다리는 좀 어때요."

"예 어제 밤엔 열이 나고 손댈수 없이 아프더니, 자고 일어나니 많이 갈아 앉아 아픈지 모르고 다녔읍니다. 아마 봉와직염이 맞았나 봐요, 조그만 상처가 나있고 고름자국이 있던데"

"다행이군요. 심하면 걷지도 못하는데."



화장실을 가려 밖에 나와 보니 달빛이 휘엉찬한게 산장 주위가 텐트에 둘러싸여 마치 한 여름 어디 이름 있는 계곡 쯤에 있는 듯하다. 간이공중화장실 앞 부지엔 여자 텐트인지 두동이 쳐져있는데 "꺄르르꺌걀" 웃고 떠들기에 정신들 없다. 한쪽에선 부실하게 쳐진 텐트 플라이 부분을 눈이니 흙으로 덮느라 부산을 떨고. 달빛이 정말 부드럽고 감미롭다. 바하의 첼로 무반주조곡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 이거 술 생각이 간절하구만. 괜히 서둘러 저넉 해먹느라 할 일이 없네.'


대중 속에 절대고독이라고 할까, 아니 상대고독이 맞겠다. 혼자 있을땐 고립감을 못느꼈는데 단체로 온 산악부팀들이 자기네들끼리 웃고 즐기는 사이에 있잖니 누가 말 붙혀주는 사람 없나 싶어, 괜히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건너편 침상에 있는 사람은 장비전문가인냥 미국 말덴사의 자재창고가 불이 나 전 세계적으로 폴라텍공급 물량이 딸리기 때문에 지금 물건값 쌀때 사두라느니, 아팩스버너 밸브를 외국에 나갔을때 못산게 아쉬었다느니 동아대 교직원들과 어울려 상당한 장비지식을 늘어놓는다.


슈샤인보이가 어디서 본듯해 물어보니 부산 만어산장 직원인데 어찌어찌해 동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샤인보이는 어쩐지 낮이 익더라며 지리산 들어오기전 그곳에서 몇가지 장비를 샀다며 무척 반가워 한다. 그러는 사이 60리터 배낭에 아솔로빙벽화에 스톡을 한 젊은 사람이 들어와 침상 한켵에 배낭을 놓고 시장한지 식사준비 부터 한다. 등산화를 보아하니 산행경력이 상당한 듯 한동안 취사장에 나가있더니 슈샤인보이 옆자리에 자리를 깔고 침낭안에 들어가자마자 소주팩 하나를 나발을 불듯 들이마신다.  처음엔 한약을 들이키는지 알았다. 술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말을 한마디 건내 뜯지도 않은 조미오징어안주로 한잔 할까 하는 생각에서


"무슨 술을 혼자 통채로 나발을 붑니까?"


하는데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대로 침낭안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실내기온이 추운데다 저녁 먹고 코코아니 뜨거운 물이니를 마셔 자주 화장실을 가게된다. 밤중에 추운데 화장실 갈일 있으면 어쩌나 싶어 요의를 느낄때까지 수첩에 끄적이다, 담배 한대 피워 물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지도교수인듯한 사람이(교수중에 넉살 좋고 입담 좋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가르치며


"저쪽분은 위에 지방에서 오셨나 봅니다."

"예. 서울에서 왔읍니다."

"천왕봉 가시는 길입니까 하산하십니까."

"만복대로 해서 종주하고 하산 하는 길입니다."

"......"


민선생에게 원두커피 한잔씩을 내려마시면서 목소리도 걸걸거리며 호탕함을 보이려는듯 과장된 목소리로 산행에 대한 얘기들을 나눈다.


'이런 떠들거면 술이라도 한잔 권하면서 떠들던가'


그제야 학생팀들과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슈샤인보이는 학생들 덕분에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다며 아직도 고기가 남아 고기 구어 먹다 왔다는 것이다. 여럿이서 오면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해와도 분담해서 들으면 무겁지 않다.7명 인원에 버너도 2개면 충분하고 코펠도 요즘은 대형코펠이 있으면 되니까.


20여 년전 일이지만 청평이나 북한산,도봉산 계곡에 가보면 들통에 석유곤로, 가마솥까지 대령해 야유회를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레져가방도 없던때라 보따리 보따리 인원수 마다 하나씩 죄 들고, 술자리가 이곳 저곳에서 질펀하게 벌어지고, 야유외의 필수품 야전(야외전축 아마 독수리표 천일사에서 나온게 주류였을것이다)을 하나씩 들고 알리춤이니 다이아몬드스텝을 밟는 모습을 이곳 저곳에서 볼수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이던가 부터 사용해본 석유버너 옵티머스는 북한산에만 놀러가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 이후 시나브로나 라이온에서 나온 국산석유버너가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무전여행 다닐 때만 해도 버너라곤 생전 처음 사서 사용해보질 않아 발만 동동 굴리다가 우리들이 한번씩 만져주고 사용방법을 알려주면 그게 무슨 큰 노우하우나 되는 것처럼 대접을 받는 때가 있었다. 음식 인심도 좋아 석유버너 노즐 한번 청소해주곤 그들이 푸짐하게 싸온 김치며 불고기 심지어 음료수나 과자등도 갈때는 다 주고 가는 바람에 배낭에 먹을 것이 떨어지는 적이 없었다. 기타라도 있는 장소라면 움직이는 가라오케라는 별명이 무색할정도의 솜씨로 50곡메들리, 100곡 메들리로 주위 텐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는 빼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친구가 있기도 했다. 그 덕에 매일 밤 고주망태가 되어 자게 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아직 후발대는 오지 않았고, 텐트에 내피를 입힌게 산장 안 보다 더 따듯하단다. 당연한것이 텐트 안에서 취사를 하고 사람 몸에서 나오는 온기가 얼마인데, 그래도 버너 불 끄는 순간 바깥 기온과 똑같아지고 자고 일어나면 몸에서 나온 습기로 인해 텐트 안은 구형 냉동고 안 처럼 하얗게 서리가 끼어있다.


"겨울철 지나면 텐트안에서 자다 질식사 하거나 화재로 죽은 사례들이 종종 산악계에 보고 됩니다. 텐트 안에서 개스등 켜고 자다 변당해요."

"그래도 텐트 안에서 자고 싶던데요."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자고 일어나 보면 텐트 주위로 새얗게 눈이 2 ~ 30  CM 쌓여있는 풍광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추운 엄동설한에 뭐하러 산에 기어들아가 텐트치고 자느냐고 한다.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둥바둥 힘들게 아파트 장만하고 편하게 자기차 굴리면서도 이렇게 산에 들어오는 것은 원시생활을 동경하는 잠재의식 저편에서 야성의 울부짓음이 자리하기 때문일것이다. 해가 뜨기전 온통 푸르른 빛으로 변하는 눈위에서 코끝을 찡하게 저려오는 한기 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그 맛이란, 담배 한대 붙혀물고 밤 사이 나가기 귀찮아 참고 있던 카타르시의 욕구를 방출하며 부르르 떨고 나면 혼자만이 명료한 의식속에 깨어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한다.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지도교수인듯 한 분이 생각난듯, 누군가에게 개스등 반드시 끄고 취침에 들어가도록 지시하고 골방으로 들어간다.

상당히 춥다. 넣어두었던 침낭커버를 침낭에 입히고 우모버선을 신고 등 부분엔 파일잠바를 깔고 그 위에 두러눕는다. 오리털파카까지 입었으니 춥지는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수통에 담아둔 물이 흐를것 같아 아직도 뜨끈뜨끈한 열기가 남아 있는 수통을 침낭속에서 빼고, 취침자세로 들어간다. 국내에선 제일 큰 침낭인 225*90사이즈 침낭인데도 크지 않은 덩치가 꼭 끼인다. 착 갈아앉은 허름한 오리털잠바에 울내복을 입었다곤 하나, 친구들 대부분이 나보다 체격이 큰데(그러므로 내 체격은 중간에서 좀 작은 축에 든다고 생각한다) 180 넘는 사람들은 침낭을 맟추는지 그게 궁금하다. 모처럼 중고등학교 하학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나보다 한참 큰 요즘의 10대들을 보고 런닝도 105,기성복은 항상 XXXL를 입는 나를 생각하면 기성복이나 이런 신체치수에 대해 새로 조사를 해 제품제조에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침낭에서 자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내일이 일요일이고, 하산해서 진주에 도착하면 빨라야 3~4시 차편이 있을까? 부산쪽엔 일요일 상행선 생각도 못하고, 마산이나 여수쯤엔 있을래나. 그럴께 아니라 내일 천왕봉으로 넘어가 세석이나 장터목에서 하루 더 자고 백무동이나 한신계곡으로 하산, 빙벽훈련 하는 모습이나 보다가 올라갈까? 하는 생각에 또 갈등을 하게 된다. 쌀은 되고 부식거리도 국거리 하나는 있고 야채죽도 하나 남았고, 아직 지리산이 나를 안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 잠 잘때는 편안한것만 생각하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지. 이때 왜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가 생각이 날까.

이쪽 침상에 셋, 저쪽 침상에 둘, 나중에 온 4명의 사람들 이렇게 9명이 치밭목산장 안 얽기설기 역어노은 침상위에서 인생의 하루를 접어두며 각자의 꿈나라로 돌아간다



2월 4일


강한 카타르시의 욕구를 느끼며 일어나 시계를 보니 6시20분 아무도 일어날 생각들을 안한다. 참 여유 많은 사람들이다. 보통 산장에선 일찍 취침을 하기때문에 4시면 벌써 기상해 취사준비하고 출발하는데, 세석과 이곳은 한밤중이다. 반대편 침상에 켜놓은 굵은 양초만이 밤새 산장 안을 밣히느라 반토막이 되어있다. 헤드랜턴을 켜고 밖에 나와보니 달빛이 있어 훤하긴 한데 안개가 말도 못하게 끼어있다.


'포근한 날씨겠군.'


버너만 달랑 들고 취사장에 간다. 어제 먹던 찌게와 쌀이 담긴 코펠은 한쪽 구석에 잘모셔났기 때문이다. 코펠 뚜껑 주위를 보면 가져가라고 해도 안갖고 갈것 같은 모양이니까. 밥을 하는데 아솔로빙벽화를 신은 젊은 사람이 들어온다.


"저 여기 물 뜨러 갈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산장뒤로 가서 철쭉밭 사이로 난길을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 시냇물에 얼음구멍 있는 곳이 있읍니다. 얕으막한곳에 있으니 주의살펴 잘 찾아보십시요."


어제 그 나중에 혼자 온 사람이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 취사 준비를 한다. 금방 식사를 마치고 어제 떠온 식수로 밥하고, 공복에 냉수 하잔 들이켰떠니, 식후 마실 물과 차 끓일 물이 없다. 그대로 펼쳐 놓고 샘터로 가는데 아까 밥하기 전에 간 사람이 산장 주변에서 망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나에게 다시 묻는다.


"샘터 가는길을 못찾아서 그런데요?"

"아니, 그럼 여태 샘을 못찾아 헤매고 있었읍니까?"

"예."

"저랑 같이 가시죠. 물 뜨러 가는 길이니까."


지난 밤 늦은 시간 올라와 산장에서 쓰는 식수통에 물을 사용한지라 샘 위치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까 나간 사람이 추운 아침 시간에 한동안 헤매었을것을 생각하니...... 샘가에 다다르니 그새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다. 두께를 가름해보니 등산화 밑창으로 밟아서 될게 아닌데,하고 순간 머릴를 회전 하는데 아솔로 신발 신은 사람이


"여기 도끼가 있군요. 제가......"

"아 아 .제가 하겠읍니다. 오랜만에 오함마질 좀 해봐야지."


눈속에 내던져진 오함마를 내려치니 뻥하고 구멍이 뚤린다. 그러면 그렇지 아침마다 등산화나 돌로 얼음구멍을 내질 않았을텐데 주위에 도구를 찾아볼생각은 안하고 머리부터 굴리고 있었다.

"

먼저 뜨십시요 한참을 기다렸는데."


내것과 비슷한 크기의 수통과 코펠에 물을 담고, 내가 물을 뜨기를 기다린다. 아니 아까 나간 사람이 이테까지 안와서 화장실 가서 용변보고 세수하고 이딱고 그러고 오는지 알았다니까 멋적게 웃는다. 올라오다 보니 산장에서 하봉과 중봉 사이를 질러가는 길과 샘터 가는 길이 조금은 헷깔릴것 같다. 산장위에서 텐트를 치고 잔 학생들도 저 밑으로 가다 샘터가 어디있는냐고 소리쳐 물어본다.


"거기서 오른쪽 3시방향으로 한 50미터 전진."


마른나무가지를 헤치며 샘터로 가며 '고맙습니다'를 크게 외친다.


"어디서 오셨어요?"

"부산서 왔읍니다."

"말씨는 서울 말씨인데......"

"예 부산에 파견 나와 있어서, 일박이일로 매주 지리산 이곳 저곳을 다닙니다."

"파견이라면 혹시 노가다십니까."

"어찌 아셨읍니까?"

"하하 지가 노가다걸랑요."


하얀 얼굴에 안경 넘어로 명석한 눈빛이 번뜩이지만, 수수한 이목구비가 어딘지 친근감있는 얼굴이다. 직장생활에 잘 단련된 그런 정돈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차를 끓이는 사이 옆에선 떡쌀과 냉동만두로 떡만두국을 끓인다. 개스버너를 사용하길레 내 버너를 사용하라고 그럴려다 방열판을 장착하고 내 버너 불에 개스바닥을 들이미는 폼이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될듯 싶다.



지리산 중봉에서


이제서들 기상했는지 산장이 부산하다. 지도교수인듯한 분이 날이 추우니 위험하게 텐트안에서 취사하지 말고 산장 취사장을 이용하라는 지시를 하고 분주히들 움직인다. 바쁜일정이 있는 사람들은 아닌것 같고 이렇게 한적한 산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늦은 듯 일어나 식사 준비하는것도 긴장에 연속인 일상생활속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자기 취미생활에 몰두함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일에 대한 긴장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진정 뇌가 쉴때는 잠시의 멍한 상태라는 학설도 있고 보면, 이렇게 삼시세때 밥해먹고 아무생각없이 다니는 이런 산행이 공해와 일상에 찌든 머리를 쉬게하는 시간이 아닌가싶다.

조금 늦었으면 북적대는 취사장에서 나홀로 외로운 아침식사를 할뻔했다. 이곳 저곳에서 버너를 키니 체온과 열기로 금방 취사장이 후끈 달아오른다.


"어디까지 가실 에정입니까?"

"천왕봉으로 해서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하산 하려합니다."

"어제 천왕봉에서 하산하다보니 쌓인 눈이 많아 4시간 반 걸리던데요. 물론 동행했던 여학생들이 있어 늦어지기도 했지만."

"예에~? 2시간 반이면 갈텐데......"


짐을 챙겨 밖에 나와보니 약간의 갈등이 생긴다. 저 사람이랑 다시 천왕봉으로 해서 백무동으로 갈까나. 단념하자. 하산하기로 마음 먹었다가 그 눈길을 러쎌해가며 오르려니 벌써 다리가 후달리는것 같다. 그 동안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지만 자고 일어나니 그동안 침낭 한번 말리지 못해, 눅눅했던 아침 기상이 떠올랐다.

슈샨인 보이가 학생들과 식사를 마쳤는지 수저 하나 달랑들고 산쪽에서 내려온다.


"같이 단체사진이나 기념으로 하나 찍읍시다."

"그러죠 올라가 계십시요 곧 올라가겠읍니다."


식사들을 마치고 텐트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학생 텐트 근처로 가니 인사말과 식사 하셨냐는 질문이다. 성격들이 시원 시원하고 거침이 없어 좋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 찍자는 제의에 텐트안에 있는 부원들을 깨우고 난리법석이다. 갑자기 나도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고양되는 느낌이다. 삐삐라고 불렀던 여학생이 나오면서 인사를 한다.


"오우~ 나폴레옹"


어제 하산길에 처음 이곳을 찾았을때 중봉이 천왕봉인지 알고 저기만 오르면 이제 내리막 길이라는 한 산악부원의 말을 믿고 사력을 다해 올라왔는데 올라와 보니 천왕봉이 아니라 중봉이였다는 말을 엑서스과자를 선전하는 CF에서 조형기가 나폴레옹으로 변장을 하고 나와 부하들과 고지를 점령했는데, "어어 여기가 아니네"라는 장면을 연상하고 한참 웃었다는 얘기를 생기발랄한 대구사투리로 설명해서 폭소를 자아냈던 적이 있어 금방 나폴레옹이라고했더니 그게 또 웃꼈는지 다들 해장웃음을 웃는다. 신선한 아침 공기 마시고 아침식사 잘하고 이렇게 큰소리로 여럿이 웃을수 있다는건 행복이다.

후발대로 온 사람들이 새벽 2시에 도착해 텐트를 치지 못하고 산장에서 잤단다. 어쩐지 취침때는 몇사람 안되더니 아침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층침상에서도 자고 있었다. 그중 천왕봉에서 커피를 파는 사람과 똑같은 오리털파카에 줄보썬그라스를 쓰고 턱수염을 기른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단체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돌려받으며


"천왕봉에서 커피 파는 아저씨가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알았네"


본인은 어안이 벙벙한데, 천왕봉에서 그사람의 복장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또 한차례 큰소리로 웃는다. 덩달아 산장에 개까지 짓어대고.

즐거운 산행되라고 먼저 출발한다며 붙쳐줄 학교주소를 받아적고, 그사이 정들었는지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그중 새초롬하게 대구가 미인의 고장임을 알려주는듯 했던 한 여학생이 이제까지의 무표정을 벗어나 그야말로 훤한 미소로 작별인사를 한다. 작별은 짧을수록 좋다. 이름 석자 기억 못하지만 인연있으면 어디선가 또 만나는 법.

배낭을 벗어놓은 곳에 가니 천왕봉에 오른다는 사람도 나와 있다. 물티슈 몇장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스패츠를 신으며 이 애기,저애기를 나누다


"어느 직장에 있어요?"

"예 건설회사에 있읍니다."

"그럼 공무 보나 보죠. 공사보면 얼굴이 까만데 하얀걸 보니"

"아니 그걸 어떡해 아셨읍니까."

"'나도 공무만 봤읍니다. 척보면 알지요."


천왕봉으로 가리라던 그 사람은 그냥 하산하기로 하고 같이 하산 하잔다.

일단 결정을 내리니 저 만치 내려간다.


"아이젠 안해도 됩니까?"

" 할 필요없어요. 그냥 내려가도 됩니다."


그 정도인가 그래도 1400인데, 하긴 양지바른 곳은 금새 눈이 녹으니까.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척 빠르다. 먹을것을 다먹어 가벼워진 배낭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무게나가는 장비들이 있는데다가 어줍지 않게 묶은 등산화 끈이 풀어져 좀 추스리고 갔으면 좋겠는데 앞에서 이애기 저 애기 하며 속도 줄일 생각을 안한다.


"금방입니다 한 2시간이면 하산할겁니다."

"무재치기 폭포가 어디쯤 됩니까?"

"어 무재치기 폭포가 이쯤 될텐데......"


바로 전망대 같은 바위 옆에 무재치기폭포가 있고 치밭목산장 3KM푯말이 붙어있다. 발걸음이 빠르기는 하나 그새 3KM를 온것 같진 않은데 거리가 잘못 쓰여있는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대원사 계곡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잔다. 오버자켓도 벗고, 스패츠도 벗고 배낭에 달아맸던 아이젠도 케이스에 넣고, 모남방바람으로 있으니 그렇게 상쾌할수가 없다. 하늘엔 옅은 구름이 끼어있어 직사광선으로 인한 눈부심도 없이 산행하기 쾌적한 날씨이다. 보온병에 담긴 녹차를 건내주며


"저 통성명이나 하죠. 저 안명환입니다." (수첩을 잃어버려 적어준 주소와 이름을 기억못해 명환인지 구환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에 정윤배입니다."


토지공사에 다닌다는 그친구는 나이 30인데도 결혼 보다는 여가활동에 주력하는것 같다. 여름엔 학교산악부OB팀에서 알프스원정을 가는데 그 팀에 추천되었다고 기대가 여간이 아니다. 해서 빙벽용 아이젠을 좀 사용해볼려고 왔더니 빙질이 좋지 않아 그냥 내려간단다. 무재치기폭포는 기대했던 것 보다 못했다. 장수대의 대승폭포나, 건너 가리봉의 실폭, 토왕폭등과 비교를 하니 산세에 비해 폭포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한여름 물놀이엔 시원하겠지만, 계곡도 이렇다하게 특색이 없다.


하산길이라곤 하나 능선을 넘나드는데 안명환씨 설명으론 어제 오르는 길이나 하산길이나 별달리 편한것도 없단다. 내가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이면 한번 쉬어간다. 대학산악부에서 처음 동계훈련 들어간다고 비브람을 사 20일간 설악에 들어가 있었는데 까진데 또 까지고 피가나서 딱정이 앉고, 또 터지고 곪고, 그러다 보니 길들여졌단다. 그때 생긴 굳은살이 지금도 남아있고. 하여간에 비브람 길들이는덴 용빼는 재주가 없다. 살로 때우는 수 밖에, 왼쪽뒤축이 잘못 접혀 몹시 아팠는데, 아트만지라고 그림 그릴때 사용하는 좋은 종이를 접어 뒷축에 대고 구두에 끼어 나오는 스폰지를 대어 신었더니 좀 큰듯한 등산화가 꼭 맞기도 하고 뒤축이 아파 고생하지는 않았다. 으~ 대청에서 오색까지 4시간여의 길을 너무나도 아픈나머지 등산화를 벗고 수건을 발바닥에 압박붕대로 동여매고 온걸 생각하면......


왠 부부가 드릴을 들고 자그마한 배낭을 들고 올라오다 인사를 한다. 보아하니 동네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사람들인것 같다. 조금 더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 주변 고로쇠나무엔 사시미뜨듯 나무껍질이 경사지게 베어져있고, 암발파시 장약 채우는 모래비닐주머니 만한것으로 나무수액을 받고 있다. 지리산 고로쇠약수제가 3월인가에 있는데 벌써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동네사람들의 발길은 이산 저산 드릴을 갖고 누비고 있는것이다. 해도 너무한다. 나무를 난도질을 해대다니...... 


두번의 휴식 끝에 산을 빠져나오자 이번산행의 들머리였던 상위마을 같은 산촌이 있다. 산행기점에 있는 민박집인지 음식점인지는 벌여놓긴 크게 벌려놨는데 어제 입산하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단다. 겨울엔 누가 그렇게 찾아오나. 조금 내려가니 유평리까지 이어지는 con'c포장길이 시작된다. '발바닥 따갑겠군'


혼자 다니다 보면 차편이 뜸한 곳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는데, 어제도 유평리 버스종점에서 내려 좀 걷다보니 픽업이 한대 올라와 손을 들어 태워줄것을 요청하자.'저 운전연습하는 건데요 그래도 타시겠어요'했단다.


"하하하,하하하"


가릴거 뭐 있나 이 지루한 길을 걸어올라오느니 감지덕지지.

집은 강동구인데 장가 갈생각은 없고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 삼아 통나무집짓는 강사를 한 6개월 했단다. 처음엔 재미있어 시간 가는지 모르다가 이게 내길이 아니다싶어, 선배에게 잠시 공부 좀 하고오겠다고 하니 선배가 "넌 안돼, 여기서 이거 하는게 낳다."며 극구 만류를 함에도 불구하고 공사시험을쳐 합격하니 그 선배가 마냥 대견해 한단다. 요즘 취직자리가 쉽지 않은데 공사시험에 합격했으니 공부는 열심히 했나 보다. 준공무원이긴 하지만 공사처럼 안정된 직장도 드므니 더구나 노가다라면 현장감독으로 나가 건설공사를 선두 지휘할수 있는 특권도 있지 않은가.


"애는 몇이세요?"

"결혼 안했읍니다."

"아니 어쩐지 그러시니 이렇게 다니시지. 그러면서 뭘 나보고 장가 안가느냐고 하하하"


얘기하다 보니 어제 타고 올라왔다는 픽업이 저거라며 가르쳐준다.

대원사. 일주문 앞에 배낭을 벗어놓고 경내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절이 짜임세 있이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과 산신각에 예를 들이고 내려오니 불교신자냐고 물어본다.


"우리집안이 대대로 도선사를 다니긴 했지만,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아무것도 숭배하거나, 권위의식이라면 닭살돗는 사이비 무정부주의자라고나 할까"

"근데 어쩐일로......"

"아~ 지난번 월출산에서 만나 쌍계사까지 동행 했던 한분이 왜 절에 들려 인사를 안하느냐는 말에 그냥 생각하고 있던것을 얘기하니, 어느집이고 집을방문하면 그집 어른께 인사를 드리듯이 절에 들리면 인사하듯 삼배를 올리는것도 괜찮다는 말에 수긍이 가, 그 이후 그렇게 하니 맘이 편하더군요. 다섯번의 전생과 다섯번의 후생을 내다본다는 분인데 영남알프스 근처에 산다고 한번 꼭 오라고 했는데......"

"그래요? 나두 그럼."


합장을 한번 꾸벅하는 그의 뒷모습이 마냥 순수해보인다. 어느 건설현장에서 만났다면 아웅다웅 갑,을의 관계로 싸웠을지도 모를 공사직원이지만 지금은 산행내내 같이한 친구 같다.

일주문 배낭 벗어놓은 곳에 이르니 3명의 경상도아가씨가 올라온다.


"성불하십시요"

"예"


장난삼아 성불하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는지 경건한 목소리로 세명이 동시에 대답한다. 안명환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로만 웃으니, 그도 따로 웃는다. 나보고 성격이 참 좋아 보인단다. 이번 산행에서 성공인가 보다, 얼굴선이 좀 강하고 눈가가 올라가 야쿠샤 같다는 말을 종종 들은 탓에, 첫인상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얼마 보지 못했는데, 지리산에 와 있는 동안 그만큼 둥실둥실 모난곳이 깍여보이나 보다.

부산,마산, 진주등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잠시 밥과 국을 끓일까 아니면 산채비빔밥을 시킬까하는데, 안명환씨가 가지고 온 과자와 치즈를 곁들여 간단한 점심을 때우는 것으로 이번 산행을 마무리했다.


혼자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은 마치 어린시절 몰래 극장을 갔다, 상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둑어둑해진 집안 골목길처럼 쓸쓸함이 배어있었는데, 호젓한 등산로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하산하다보니 그런 쓸쓸한 마음은 없다. 부산행 직행 버스에 몸을 싣고, 스키얘기며 토목 관계되는 얘기를 나눈다. 그새 긴장이 풀려 몇 일 간의 피로가 엄습하는지 입안이 깔깔해져온다. 피로가 몰려와 부산행 버스 안에서 어느덧 잠이 든다.



95. 2월의 산행을 96. 9월에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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