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을 못자서인지 차에 오르자 마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강화읍.
곤히 자는 나를 깨우기가 미안했던지 이정표에 의존해 강화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 대기 중인 순찰차에게 전등사 가는 길을 묻는다.
순찰차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찰이 창문을 내리고 친절히 가는 길을 안내해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좌회전, 순찰차의 컨보이를 받는 양 길을 가면서 한마디
" 매일 경찰을 만나다 싶이 하는데 경찰한테 말 걸려면 지금도 꺼림칙해."
법원을 수시로 출입해야 하는 후배의 직업 상 경찰과 업무는 뗄레야 뗄수없는 사이.
변호사라는 신분에 맞게 예우를 해주는데도 좀처럼 경찰에게 느껴지는 이물감을 지울수 없단다.
어렸을때의 경찰은 범죄로 부터 보호해주는 그야 말로 민중의 지팡이로 알고 있었지만,
커가면서 그 지팡이는 언제라도 민중을 향해 내려쳐질수 있는 지팡이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게 언제때 부터일까?
경찰이라는 말보다 짭새라는 말이, 짭새라는 말보다 짜바리라는 말이 그 직업에 어울린다고 생각되어진지가
석모도를 가기 위해 혹은 전등사를 가기 위해, 장화리 일몰을 보기 위해 오가며 봐두었던 저수지 옆 모텔.
그 이름도 낭만적인 캘리포니아모텔이다.
구비지다 얼마간 쭉 뻗은 직선도로 중간, 호반 옆에 세워진 십수년전에는 모던해 보이던 모텔의 외관.
하룻밤 쯤 묵어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이었다는 오래 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마리산이 있는 화도로 가는 길. 왕복2차선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전봇대가 나란하고 그 위로 전선이 달린다.
첫인상이 좋았던 길. 그 느낌은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마리산 주차장에는 금방 차로 가득찬다.
산 입구에서 개념도를 보고 완벽한 종주를 할 것인지, 원점회귀로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한다.
주말을 맞아 산을 찾은 인파가 산행 들머리에 가득하다.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듯, 팔도 사투리가 다 들린다.
차를 이곳에 주차, 택시를 이용 정수사로 향한 뒤 하산로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정수사로 올라, 정수사로 내려가는 왕복산행을 하기로 한다.
산행의 따분함 때문에 왕복산행은 될수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초행의 산행지인만큼 갈 때와 올 때 보는 풍경이 다를 것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한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도 벌써 주차장이 만원이다.
정수사 조금 못미쳐에 있는 함허동천 야영장의 주차장도 만원, 정수사 그 가파른 언덕 길에 차 댈곳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몇자리가 남아있다. 아침 일찍 서두른 덕을 많이 본다.
십이삼년 전 정수사를 와본적이 있지만 이렇다하게 기억나는 것은 포장도로에서 절까지의 길이 험하다는 것 뿐.
더구나 절에서의 전망 또한 답답하게 여겨져 꽤 여러번의 강화도 방문에도 지나치고 마는 곳이었다.
정수사 뜨락을 워낙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그맛을 느껴보기 위해 그전에도 찾아봤지만,
역시나 그친구가 좋았다는 그 느낌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일상에서 벗어난 그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한다.
정수사는 신라시대 지어진 고찰이란다. 강화도는 1970년대 이전에는 오롯이 섬이었던 곳.
조류 간만의 차가 심해 동력선이 아니고서는 육지와 오가기도 쉽지 않는데, 그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현재의 강화도는 간척에 의해 세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마리산 정상에 올라서면 그 간척지들을 한눈에 알아볼수있다.
이 날은 어찌된 샘인지, 그 간척지 논을 두고 염전이라고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내내들으며 산행을 해야했다.
나름 선민의식이 자리잡아있는지 모르지만, 산행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무식한 사람들의 한심한 작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듯 하다.
사오십대 인터넷 산악회는 불륜의 대명사가 되었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20대 젊은이에게서도 들을수 있는데
우려의 수준은 심각한 곳 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절이야기 하다 옆길로 빠졌다.
정수사 대웅전은 보물 161호 지정되어 있다. 정면 세칸, 측면 세칸의 맞배지붕양식인데
옆에서 보면 후면으로 나간 축이 전면에 비해 짧아 한자로 사람인자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애초에 이렇게 지었는지, 중수를 거듭하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 가뭄에 절의 약수터에 물이 말랐다.
종무소에 물을 구할수 없겠냐는 문의에 자기네들도 물을 사다 마신다며 판매용 생수의 물을 나눠준다.
마리산의 높이는 469미터 낮은 산에 암산이라 이렇다할 계곡이라고는 함허동천이 유일하다.
오백나한전이 있고, 보물인 대웅전의 화려한 꽃창살을 사진에 담고,
석탑에 올라가 산귀퉁이 삐죽이 보이는 갯벌이 들어난 바다를 보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안타까움이란 것은 길을 알려줘도 길을 찾지못해 엄한 곳을 헤매는 모습이 그 풍경에 들어나 보이는 듯 해서이다.
정수사를 찾으면 대웅전 중앙창살과 비대칭 맞배지붕은 꼭 눈여겨 봐야한다.
정수사를 벗어나 오름길로 들어서자 입장료라고 성인 일인당 1,500원 씩 받고 있다.
재정이 빈약한 지자체에서 운영 상 받아내야한다고 이해는 하지만, 어쩐지 뜯기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주말이라 산악회에서 엄청들 온다.
적게는 2~30명 많게는 7~80명. 외길에서 산악회 사람들과 만나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기네들만의 고유한 연대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이러저런 이유가 많겠지만, 한마디로 쪽수 믿고 안하무인이다.
원래 목소리가 그렇게 큰사람들이 산을 찾았는지, 아님 주중에 목소리 낮추고 살다가 산에 와서 목소리를 높이느라 그런지
하여간에 시끄럽기 이를때 없다. 중식시간이라도 지나면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나는 술냄새는 역겹기 이를 때 없다.
이쯤되면 마주오는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기피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 하지 않게 되고, 미워하고 피하게 된다면, 그건 불행한거다.
다들 그러려니 하는데 불행까지 운운한다면 지나친거 아닌가?
하여튼 족발에 새우젓 찍어 먹은 주둥이에서 막걸리 냄새까지 나면 그놈의 주둥이에 유한락스 푼 물이라도 헹궈주고 싶다.
정수사를 올라 암릉을 타고, 첨성단을 지나 전망 좋은 너럭바위 있는 곳 까지,
먼지와 사람들의 악다구니, 종류를 알 수 없는 안주와 술들이 내뿜는 악취를 맡아야 했다.
기사도 정신인지, 제비정신인지. 별로 어렵지도 않은 바위에서 여자들에게 손잡아 주겠다고 내미는
중장년의 느끼한 눈빛은 끝에 가서 한마디 안할 수 없게 한다.
" 여기가 무슨 캬바레야. 손잡아 주겠다는 놈들이 이렇게 쎄고 쎘어."
제딴에 배푸는 호의라는데 들려오는 육두문자가 기분 좋을리 없다.
곱지 않은 시선에 ' 네 속은 내가 더 잘알아.'라는 눈빛으로 응수한다.
오늘 등산객 물때가 왜이렇게 안좋은지.
발아래 펼쳐진 간척지들이 염전이란다.
네모반듯한게 뭐냐는 아줌마 질문에 염전이라고 설명해주는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암릉 내내 들어야 했다.
어렵지 않은 암릉이지만, 고도감이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 몇몇 곳 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아줌마들의 귀곡성과 아저씨들의 자상한 배려로 지체에 지체를 거듭한다.
이제 사랑에 눈 뜬 중년의 불륜 커플이라도 시야에 들어오면 정말 식염수 없이는 못 볼 광경이 펼쳐진다.
세태가 그런걸 모르고 지냈는지, 아님 이날 이 산만 그랬는지,
산 전체가 불륜의 제국이다. 평일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삼일절을 맞이하여 태극기 대신 불륜기가 온산에 나부낀다.
정수사에서 능선까지는 약 20여분 깔딱.
그 이후로는 조망이 뛰어난 암릉이다.
초심자도 갈 수 있을 만큼 쉬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도감은 상당하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마치 시루떡 처럼 켜켜히 쌓아져 있다.
조선 중기 참성단 중수비.
산행 중 자칫 지나치기 쉽다.
단군왕검이 천제를 지냈다는 참성단.
백두산과 묘향산 남한에서는 이곳 뿐이라고 한다.
해발 469미터의 자그마한 산이지만 참성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해안의 풍경이 장쾌하다.
참성단 상단은 통체를 해 올라가보지 못했지만,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몸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육중한 것이 올라와 육체를 사뿐히 들어올리는 기감.
바이칼 알혼섬 부르한 바위 근처에서 느꼈던 경험과 비슷하다.
마리산 정상과 참성단.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 화강암 위에 소나무 한 그루.
산행 내내 마주치는 등산객들에게 시달려서인지 점심 생각도 없다.
싸온 김밥과 컵라면에 입도 안대고 멀리 바다에 시선을 둔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능선 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산의 기운도 좋고, 봄날씨 처럼 따사로운 햇살에 시계도 쾌청하다.
바람마져 잔잔해, 사월의 어느 봄날처럼 화사한 날이다.
정수사로 내려서는 마지막 암릉에서 헬기가 맴돈다.
두명의 환자가 발생했었는지, 두번을 왕복 한 뒤 더 이상의 헬기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암릉 자체가 수월해 등반기술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사소한 실수로 균형을 잃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코스.
큰사고가 아니기를 빈다.
이른 아침 서두른 탓에 하루가 길다.
회를 먹을까 어쩔까 하다. 귀경길 차가 밀릴수 있다는 핑계로 일산 백석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백석에서 매워서 맛있다는 쭈삼불고기로 저녁식사.
황산도 갯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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