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오봉샘

오체투지해무 2008. 12. 30. 05:57

 

 


도봉산 천축사 아래 암벽연습장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스베아버너로 밥을 해먹은 일이 나에게는 가장 오래된  도봉산에 관한 기억이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이었을까? 봄이었을까?

 


어제 저녁 9시 뉴스를 보다 쓰러지기만 하면 세상 모르게 잠이 올 것 같아 이른 시간임에도 숙면에 대한 기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알 수 없는 곳, 알 수 없는 꿈. 이층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늦은 시간 야근을 하다 용무를 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수직에 가까운 철사다리 계단을 내려오며 높이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던 듯 하다.

 


술이라도 취했더라면 곱게 내려 올 수 없는 계단이란 생각을 했다. 일을 보기 위해 이층 사무실로 오르는데 한걸음, 한걸음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마치 수영을 하다 전신에 힘이 빠져 물속에 가라앉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력감과 피곤함.

 


철사다리를 다 올라서 사무실 문 앞에 도착 했을 때는 온몸에 힘이 빠져 누군가 소리쳐 부르지도 못했다. 떨어지지 않게 철제난간을 끌아안은 팔에서도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는 힘을 다해 사무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되는데... 그러다 잠이 깼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채 30분도 잠들지 못하고 그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책도 읽을 수 없는 불면의 밤, 음악도 인터넷으로 보는 영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갖은 번뇌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갔다. 설악산 가야동 계곡과 지리산 반야봉, 소매물도와 신안의 우이도 까지 내 몸은 순간 이동을 했고, 어디에도 있을 곳은 아니였다. 마음을 정착 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봤지만, 언제나 그런 기대를 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처절한 배신감이었음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

 


동쪽 산그림자가 훤히 밝아온다. 어느 맑은 새벽에는 새소리에 잠을 깰 만큼 아파트 뒷산은 산림이 울창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곳인데, 이 날 아침에는 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밤을 꼬박 새고 난 뒤의 산행은 언제나 고통보다 더한 무력감으로 기억되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목욕탕을 찾아 한증막이라도 하면 간밤의 긴장이 풀려 단잠이라도 잘듯 싶었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 화단을 돌아 설 쯤, 뒷산의 새 한, 두 마리가 지저귀기 시작한다. 동녘은 밝았지만, 아침 노을은 보이지 않고 파스텔 톤의 무미건조함을 띄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목욕탕은 지은지 15년은 된 듯 하다. 매표를 하려는데 카운터의 아저씨가 반기는 기색이 없다. 너무 이른탓인가 싶어 아직 문 열지 않았냐는 질문에 영업 한단다. 탕안에는 노인네 한 분이 느긋하게 눈을 감고 반신욕을 즐기다 인기척에 눈을 들어 나를 잠시 살펴본다. 열탕과 냉탕을 드나들다, 한증막에 들어섰더니 이제 가동을 시작 한 듯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열탕에 온수를 더 받아 놓고, 손발의 혈관이 확장 될 때 느껴지는 따끔함의 고통을 감내하다 냉탕으로 들어갔다. 뭔가 기운이 엉키기 시작했다. 두 번의 냉탕과 온탕을 더 즐겼지만, 몸에 긴장은 풀리지 않고 기운은 고착상태에 빠져든 듯 하다. 산에 가야겠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얼려둔 보리차 두병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렌즈 두 개와 DSLR 바디 하나. 수락산으로 갈지 북한산으로 갈 지. 아니면 광화문으로 갈지 조차 정하지 않고 나선 길은 생소하다. 정거장에는 등교 길의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도봉산 입구로 향하는 10번 버스를 타고 도봉산 입구에서 내렸다.

 


2,500원 하는 해장국을 파는 음식점이 하나. 선택의 여지도 없이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을 시켜 아무 맛도 없이 먹고 자리를 일어섰다. 8시도 안된 평일의 도봉산 입구에서는 김밥 파는 집이 없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고 싶지는 않다.

 


도봉산 통제소 입구, 등산안내도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다. 목적지가 없으니, 방향을 정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되고, 갈등이 생긴다. 밤새 머리 속에 지니고 있던 번뇌의 그물막에 그곳에도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다.

 


도봉산을 드나든 지 35년이 되어 가는데 보문능선으로 발길은 한적은 한번도 없다. 얼마 전 웹에서 본 도봉산 주능 전경이 혹시 보문능선에서 촬영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발걸음은 보문능선 초입으로 들어섰다.

 


고통이 싫다. 대퇴부와 종아리로 전해지는 통증이 무섭다. 체력 보다는 숨이 거치러지지 않게 주의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녹음 아래 습기와 높은 온도로 금방 온몸은 땀이 비오듯 한다. 약도에는 없던 근래에 지어진 절의 규모가 눈길을 거스른다.

 


산정샘이라는 약수터에서 베드민튼을 즐기는 사람들의 기합소리를 뒤로 하자 산길을 급해진다. 호흡이 거치러지지 않게 발폭을 더 줄이고, 몸의 좌,우반동에 신경을 쓴다. 다리 근육의 펌핑에서 오는 고통보다 거친 호흡으로 인해 발걸음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이다.

 


두어 번 고개를 들어 나갈 길을 봤다. 고개를 들지 말자. 오를 때는 발 아래 만을 봐야 그나마 힘들지 않다. 앞서 가던 50대 중반의 삿갓모자를 쓴 등산객의 걸음도 나와 보조를 맞추려는 듯 느려진다. 이마와 팔뚝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동네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한 뒤여서인지 첫 땀에서 악취가 나지는 않는다.

 


다리근육에 펌핑이 오지 않으니 산행의 맛이 나지 않는다. 자칫 빨라지려는 걸음을 물 마시기 위해 쉰다. 호흡이 거치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훈련이라도 하듯 앞지르는 연로한 산행객의 등산화 뒤축을 몇 번은 봐야 했다.

 


오르고 있는 보문능선은 도봉산 주능으로 오르는 능선 중 가장 완만한 능선이다. 마당바위에서고, 거북바위에서고 전망의 눈길을 끄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뒤돌아 서 있는 듯 우이암으로 향하는 탓에 보문능선 일대에 펼쳐진 전경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연록색의 타이트한 등산복 바지 차림에 무릅아대를 하고 날렵한 발걸음으로 내려서던 40대 여자 한명이 흘끗 내쪽을 바라보고 내가 오르고자 하는 바위 쪽으로 내려선다. 보문능선을 타고 오르다 최초로 전망이 트이는 곳.  하산길 빠른 걸음의 여자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수통의 물을 마시며 전망을 바라본다.

 


배낭을 내리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전망을 바라보던 여자가 이쪽을 이따금 살피는 기색이 엿보인다.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화이트배런스와 조리개를 확인하고 조망권이 확보된 자리를 살폈다. 그 여자가 서 있는 곳의 조망권 만한 장소가 없다. 내 의도를 파악하고도 좀처럼 여자는 자리를 내줄 생각을 안한다. 먼저 말을 걸겠지.

 


“ 사진 찍으시는 분인가봐요?”

“ 예.”

“ 전문으로 찍으시나 보죠?”

“ 아니요.”

“ 그럼 취미로 찍으시는구나.”

 


자리를 내어주는 곳에 서서 노출계를 확인하고 구도를 바꿔 몇컷을 찍는다.

 


“ 잘 찍으시나 보네.”

“ 취미로 찍고 있어요.”

 


배낭이 놓인 위치로 돌아와 가방에 카메라를 챙긴다. 여자는 한걸음에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날랜 걸음으로 하산한다. 너무 딱딱하게 말을 받았나. 산행 중 유일하게 말을 건넨 사람이었다.

 


웹에서 본 것과 비슷한 구도를 찍을 수 있는 위치가 두곳 더 있었다. 그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해가 너무 떠올랐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바위와 그 주변의 녹음은 노출의 차이가 현격하다. 사진은 확인하나 마나 별 볼일 없을 것이다.

 


도봉산 주능선과 우이암을 만나는 곳을 오르는 길에는 위험등산로이므로 우회할 것을 당부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좌측은 무수골, 우측은 주능선이라는 안내가 씌여있다.

 


오봉갈림길에서 잠시 코스에 대한 갈등을 한다. 주능선을 타다 송추폭포로 하산 할 것인가, 오봉을 올라 여성봉-송추코스를 선택할것인가. 발걸음은 오봉샘을 향한다. 주능선 삼거리와 오봉샘 까지는 고저차가 얼마 없어 오솔길을 걷는것 만큼이나 수월하다. 어느 해 이른 봄 길 한쪽에는 노란제비꽃이 뿌려놓은 듯 수 놓았다. 사고가 나던 그 해의 그 날 일주일전에 이길을 찾은 적이 있었고, 그 후 일년 만에 사고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들과 이 길을 찾았었다. 그리고 꼭 2년만이다.

 


오봉샘은 도봉산, 북한산을 통틀어 가장 고즈넉하고 포근한 곳이다. 차소리가 일체 들리지 않고, 시야에는 온통 산으로 가득하다. 마주 보이는 상장능선과 삼각산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기운찬,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는 보는 사람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한때 오봉샘 주변의 고즈넉하고 포근함에 즐겨찾기도 했고, 몇 번의 야영도 했었다. 어느때는 오봉릿지를 하려는 바위꾼들의 텐트에서 고함이 오가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밤새 빗방울이 텐트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봉샘의 물맛은 깔끔하면서도 매끄럽고 말로서 전달할 수 없는 달콤함과 적당히 무거운 맛을 지니고 있다. 샘 옆에서 한참을 앉아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추억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만 못하지만, 한때의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만그만한 고저차를 띄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을 오르며 가장 편안하게 오른 듯 하다. 그만큼 호흡에 신경을 쓰며 걸었다.

 

조망권이 좋은 능선에 올라서자 오봉은 역시 한참이나 눈길을 잡아 끈다. 이제 단풍이 갓 들은 그 어느해 가을, 눈발을 하얗게 뒤집어 쓴 그해 겨울에도... 상장봉 저 너머로 일산의 아파트단지가 시야의 정점 끝에 들어온다.


오봉을 오르는 것도 생략하고 송추남능선으로 들어섰다. 들어선지 5분도 되지 않아 하산로를 이곳으로 잡은 것을 후회했다. 무릅으로 전해오는 80kg의 체중. 하염없이 느리게 걸었음에도 느껴지는 우측 무릅 안쪽 십자인대의 찌릿한 통증. 이어지는 평일 산행팀의 아줌마등산객들의 이어짐.

 

때로는 잰걸음으로, 때로는 뜀걸음으로 쉬지 않고 내려선다. 풍화된 바위 위의 부스러지는 돌 위에서도 드는 집착과 구별 할 수 없는 그리움. 악화일로로 치닫게 만드는 생각의 꼬리, 꼬리, 꼬리.

 

하산하다 문득 깨닫게 된것은 어젯밤부터 이어진 불면의 밤에서 가장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집착과 구별 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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