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메밀꽃 질 무렵 찾은 평창

오체투지해무 2007. 12. 3. 06:13

지난 여름 무더위가 한창 일때 아버님은 봉평의 메밀꽃이 지금 쯤 피었겠냐는 질문을 자주 하셨다.

몇 해 전 산자락 넓은 들녁에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 지천에 핀 메밀꽃 사진을 보시고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봉평에 가 봐야 할텐데를 입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고도 두해가 지나도록 어찌어찌 시간이 나지 않아 메밀밭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친목회에 성당에 주중 보다 더 바쁜 주말을 보내시면서도 봉평 메밀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다.

 

" 주말 약속을 다 미루시고, 새벽 미사 다녀오시면 당일 봉평 나들이가 가능해요."

 

설악산에 첫 단풍이  예년 보다는 조금 늦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도 메밀꽃 구경은 못하겠구나 했는데

구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봉평 나들이를 가자신다.

 

" 메밀꽃이 많이 졌을텐데요. 지금쯤 메밀 수확할 시기인데..."

 

새벽 미사를 다녀오시고서야 봉평으로 길을 나섰다.

양수리 김치말이국수집 인근에서 만두국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평창 가는 국도를 따라 느긋한 드라이브를 즐긴다.

 

횡성 고래골에 들려 참숯가마로 안내했다.

중국산 싸구려 숯이 들어오면서 국내 몇 안되던 숯가마들이 사양길에 들을 때인 2000년 12월에 처음 이곳을 찾았다.

중앙일간지의 여행기자가 횡성 고래골의 숯 굽는 광경을 대문짝 만하게 찍어 올리면서,

숯의 효능에 대해 상세하게 안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사양길에 접어 들었던 고래골의 숯가마는 급속히 성장을 했다.

 

조그마하던 사무실도 옮겨 지으면서 숯 부산물 전시장도 갖추고,

숯가마의 규모도 당초보다 3배 정도 확장 한 듯 하다.

 

백탄, 흑탄 생산되는 과정을 설명 드리고,

이 일대를 둘러봤다.

 

마냥 신기해 하시는 어머니와 달리,

등산이며 사냥이다 다니시며 종종 봐왔던 아버님은 숯가마에 대한 별반 호기심이 없으시다.

 

 

 

 

아버님 마음은 오직 하얗게 들녁에 피어있는 메밀밭으로

 

평창과 횡성을 넘는 양구두미재에도 아직 가을 다운 가을은 찾아오지 않았다.

낙엽송이 잎을 떨구며 길가를 온통 노란색으로 장식하는 깊은 가을의 저녁노을을 본 나로서는

녹음이 남아있는 양구두미재의 깊은 코너링이 마냥 심심하기만 하다.

 

 

 

 

폐교 후 무이예술관이 된 무이초등학교 앞의 메밀밭에 들어서니 안스러울 정도로 메밀꽃은 지고 까만 메밀이 알알이 달려있다.

봉평 메밀밭 축제장의 메밀꽃 보다 이곳의 메밀이 뒷산의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보기 좋은 풍경인 곳인데...

꽃을 보기에는 시기가 아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버님과는 달리 모처럼만의 나들이 길이 마냥 즐거우신 어머니.

 

무이예술관 앞 농로에 핀 수수와 조가 소담스럽다며 언제 이런 모습 보겠냐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으신다.

 

 

꿩 대신 닭. 메밀꽃 대신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수숫대와 조를 들여다 보시며 즐거워 하신다.

 

메밀꽃 축제도 끝나고 조성해 놓은 메밀밭에는 하얀 꽃도 다 지고 없건만, 전국에서 나들이 인파가 많이도 이 곳을 찾는다.

도로 개설로 세번이나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옮겨진 이효석 생가 주변에는 메밀 음식점이 즐비하다.

채 5년도 안된 음식점들이고, 주인 대부분이 객지사람들에 메밀맛을 제대로 낼지 의심스럽다.

 

메밀의 고장이라는 봉평보다는 진평이 막국수 맛은 월등히 뛰어나다.

아직 봉평 일대를 둘러보지 못한 탓에 진평까지 점심을 먹기 위해 왔다갔다 하느니 근처 음식점 맛도 확인해 볼 겸

사람이 가장 붐비는 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통나무로 운치있게 만든 외양과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천장이 유난히 눈길을 끄는 대형음식점은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니 떠드는 목소리를 들어봐서는 경상도 사람들이 태반인 듯 하다.

겨우 한쪽에 자리를 얻어 발품을 쉬며 메뉴판을 들여다 보는데.

다양한 메뉴에 놀라고, 가격에 놀란다.

적어도 강원도를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먹어본 막국수의 가격에 1/2은 비싸다.

얼핏 가격이 비슷한 것 같아 보이지만, 막국수의 차별화를 두어 비싸게 받는 상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막국수와 메밀전병, 수육을 시켜봤는데... 먹으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부모님 기분을 생각해 애써 누르고 음식을 먹어야 했다.

오며가며 채 30분도 안걸리는데 가던 막국수집으로 모시지 못한게 모처럼 나들이 나오신 부모님께 내심 죄송스럽다.

부모님도 역시 기대했던 것 만큼 맛있지는 않았던 듯 음식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다.

그도 그럴것이 옛날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강원도를 오며가며 맛있다는 막국수집은 두루 섭렵하신 입맛인데,

화려한 외양과 으리으리한 실내장식이 입맛을 현혹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메밀테마관을 둘러보다 입구에서 MTB를 탄 한쌍의 연인을 만났다.

오래 전에 MTB에 관심이 있으셨던 아버님은 그 중 남자에게 자전거의 가격과 출발지, 행선지를 물어본다.

 양구두미재를 넘을 때 힘겹게 고개를 넘던 남녀가 있었는데 그들이다.

아까 고개를 넘으며 봤었다고 아는체를 하니 힘든 가운데도 반가운 얼굴을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해지기 전 강릉까지 가야한단다.

대관령을 넘을지, 진고개를 넘을지.

힘들게 고개를 올라서도 다운힐에서 장난 아닌길이라 염려된다고 하니 자기네들도 걱정이란다.

 

 

 

 

 

소나무의 줄기와 가지을 얽어 만든 섶다리.

추위가 시작되고 강물이 얼기 전 내를 건너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이듬해 큰물이 나서 떠내려 가기 까지 다리 역활을 톡톡히 해낸다.

걸을 때 마다 출렁거리며 탄력이 있어 걷는 기분이 새롭다.

 

 

 전나무 숲깊을 걸어 도착한 월정사.

큰집이 기독교로 개종 하기 전까지 큰어머니를 따라 열심히 절에 다니셨던 어머님인데, 세례를 받은 뒤로는 절하고 발을 딱 끊으셨다.

1982년 여름 친구와 찾았던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월정사 주차장에 들어서니 깊은 산속이라 기온이 5도 정도는 차이나나보다.

반팔차림에 오버쟈켓을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 될 정도로 몸이 선듯 추워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승용차도 다닐 수 있는 정도이기는 하나 비포장이다.

시속 20km 이상을 낼 수 없다.

앤듀로 바이크라면 스탠딩 자세로 100km 이상 낼 수 있는 곳이지만,

사륜구동차라 하더라도 개조가 안되어 있으면 40km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는 물웅덩이가 곳곳에 나 있는 도로다.

모처럼 만에 비포장을 타신 아버님이 포장이 안된것에 불만이시다.

나름대로 포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해드렸는더니 그제야 이해 하신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상원사 오름길 초입에 있는 관대걸이에 대한 설명을 했다.

오래 전 세조가 말년에 얻은 피부병을 치료 하기 위해 이곳에 들려 목욕을 하기 위해 어의를 벗어 걸어놨다는 비석.

상원사 까지 짧은 오름길에 유난히도 연리목이 자주 눈에 뜨인다.

각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하다 서로의 표피 파고 들어 한몸이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뒤따랐을까.

 

마침 연리목이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하루에 한,두번은 의견충돌로 다투신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다정해지시니 못 본척하고 만다.

어느 때는 심히 걱정이 될 정도로 언성이 높아 질 때면  내키지 않지만

나서서 잘잘못을 가려 드린다.

이럴때면 편을 들지 않았던 쪽의 홀대를 각오해야 한다.

 아직도 기운이 남으셔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점심 때 수육에, 전병 안주에 약주가 과하셨다 싶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아버님은 저녁 생각이 없으시단다.

 

허접스러운 점심을 대접해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그마저 저녁을 안드시겠다니.

 

진부를 지나는 길에 식사 때가 되면 꼭 들리는 집이 부림식당이다.

나물 맛을 모를 때는 고기 한점 나오지 않는 이집 밥이 뭐 맛있나 싶었는데... 나물 맛을 안 뒤로 가끔 이집의 나물이 생각난다.

봄에 오대산 일대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을 염장했다 사시사철 내놓는다.

전라도의 음식 잘한다는 한정식집에서도 이 집 염장 나물과 같은 나물 고유의 향을 살려낸 나물을 맛 보지 못했다.

이렇다하게 양념이 특별히 되어 있지 않아 나물향이 그대로 살려내는 이집 만의 비법이 있는 듯 하다.

 

밥 생각이 없으시다던 아버님도 한그릇 다 비우실만큼 이집 음식은 깔끔하고 입맛을 돋군다.

더덕구이와 황태구이를 따로 내는데도 나물 맛에 푹 빠져 정식으로도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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