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아주친절한여행

문향의 고장, 영양

오체투지해무 2007. 10. 1. 16:29

 

 

 

 

 

 

  

 

단위 면적 당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가 경상북도이다. 도내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영양군 내에는 경북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월산이 자리한 곳. 수도권에서 영양을 찾아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세시간 달리고도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바꿔 타며 2시간여를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고장이다. 다른 지방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모텔이나 가든, 펜션을 찾아보기 힘든 곳. 그만큼 이 지역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 편의를 도모하는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관광지로 선택하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세워지고, 휘영청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경박한 여행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편히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고장이기도 하다.

 

입암 휴게소 인근에 정갈하게 조성된 공원은 찾는 이의 조용한 쉼터가 되어 준다. 공원 내에는 분재수석야생화 전시관과 영양고추홍보관이 부대시설로 들어서 있다. 전시관 안에는 400년 이상 된 주목이 한본, 40년에서 300년이나 되는 적송이 34본이나 있다. 이외에도 130여점의 각종 분재들이 관람하기 편이한 입체적인 동선 위에 전시되어 있다. 분재마다 수종과 년도가 꼼꼼히 표시되어 있고, 분재를 감상하는 요령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수석관에는 이 지역에서만 나는 영양폭포석 단일 종으로 5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성분이 틀린 두종류의 암석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마치 힘차게 쏟아져 나오는 폭포를 연상하게 만든다.  반변천 천벽의 둑방기에 올라서면 맞은편 남이포와 입암(선바위)가 장중한 모습으로 시선을 압도하며 위용을 들러내고 있다.

 

본래 남이포와 입암은 한줄기의 산맥으로 연이어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남이장군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용의 아들이 아룡과 자룡이 역모를 꾀하자 그 둘을 물리치고, 높이 솟은 석벽에 자신의 초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또한 지형 상 역모의 기운이 돈다 하여  물길을 돌리기 위해 산맥을 칼로 내리쳐 산맥을 잘라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전한다. 남이포의 위용을 보기 위해서는 반변천 건너 서석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봐야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석지는 보길도의 윤선도 유적지인 부연동과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3대 정원이다. 보는 시각마다 그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 중  백미라면 서슴없이 서석지를 꼽을 수 있다. 서석지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자그마한 돌담과 쓰러질 듯 세워진 단출한 대문 밖에서는 서석지의 모습을 연상하기 쉽지 않다. 대문을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건물이 경정. 서석지의 주가 되는 건물로 대청마루로 두 칸을 내고, 양쪽에 한 칸씩 방을 내고 연못 쪽으로는 툇마루를 내어 난간을 삼아 전망대 역할을 하게 해두었다. 


 경정 왼편에는 주일재라는 공부방을 두고, 그 앞에는 소나무, 대, 매화, 국화를 심어 사우단이라 이름하였다. 서석지 내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백련, 홍련 등이 그 탐스럽고 신비로운 꽃봉오리가 피어 전국의 아마츄어 사진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연못 안에는 20개의 각기 다른 높이와 크기의 돌을 배치해 선유석, 어장석, 낙성석, 어장석등의 이름을 붙여 놓아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물속에서도 그 흰빛을 띠어 더욱더 신비롭게 한다. 서석지 한구석에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 400년 이상 된 것으로 건물의 운치를 더해준다. 연당리 일원에는 고샅길을 따라 고가들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서 있다. 
 
영양읍을 우회하는 31번 국도를 벗어나 918번 국도에 들어서면 인근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농사용 트럭이나 이따금씩 오고 갈 뿐, 전형적인 산촌의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영양읍을 빠져 나와 화천 1리 마을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 마을 진입로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 본다. 입구에는 사월종택, 화천리 삼층석탑이라는 자그마한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해 나갈 만한 길을 따라 들어서면 얼마 안가 좌측으로 삼층석탑이 마치 집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듯 자리하고 있다. 석탑의 높이는 4.4미터로 자그마한 편이나, 당당히 뻗어나간 처마선에서나 이중으로 쌓아진 기단에서 풍기는 안정적이 모습은 보기에도 힘이 넘쳐 보인다. 기단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윗층 기단에는 한쪽 면을 둘로 나눠 팔부신중을 새겨놓았다.  1층 탑신부에는 악귀를 밟고 서있는 사천왕상이 양각되어 있다. 화천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 609호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양각된 문양을 감상하고 나서는 길은 어쩐지 여행을 떠난 설레임을 차분하게 갈아 앉혀준다. 화천리를 지나면 길은 본격적인 S자의 깊은 코너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이 남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많아 깊은 계곡도 갖추지 못한 창수령은 가을이 되면 그 아름다움의 진면목을 들어낸다. 이 고개가 이문열의 삼부작 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주인공 '나'가 유서와 독약을 품에 안고 바다에서 죽기 위해 걸어 넘은 창수령이다.

 

'나'는 창수령을 넘으면서 하얀 설경에 대해 "고개를 다 내려왔을 때 나는 하마터면 울 뻔하였다. 환희, 이 환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미학자들이 무어라고 말하든 나는 그것을 감지한 것이 아니라 인식하였다. 아름다움은 모든 가치의 출발이며 끝이었고, 모든 개념의 집체인 동시에 절대적 공허였다. 아름다워서 진실할 수 있고, 진실하여 아름다울 수 있다.  소설 '젊은날의 초상 -그해 겨울-' 중에서

 

 

 

주곡리 주실마을은 현대시의 초석을 쌓았던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그의 시 '승무'는 대체로 4음보 형식을 띠고 있으며, 부드러운 어감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의 조탁으로 인간 고뇌의 불교적 색채를 띤 종교적 승화를 보여주고 있다. 당대의 시인이자, 지조론을 썼던 고고한 국문학자로써의 인품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주실마을 한양조가의 꼿꼿한 선비정신이 대대로 전승한 터이다. 호은종택의 솟을대문은 활짝 열려있으나 경북지역의 전형적인 고가형태인 'ㅁ'자형의 안채는 잠겨있다. 경북지역에는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도 많은 종택을 어느 마을에나 찾아 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종택은 솟을대문마저 굳게 잠겨있고. 주실마을에 남아있는 종택도 마찬가지이다.

 

 마을 앞에 보이는 봉우리의 이름이 하나는 문필봉, 하나는 연적봉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물은 주곡천으로 몹시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한번도 없는 곳. 그런 풍수지리학적인 요인 때문인지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정치가나 세도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학자는 끊임없이 배출해오곤 하고 있다. 요즘처럼 박사가 흔한 시대에 어느 시골마을에 박사 없는 마을이 있겠는가 만은, 60가구 사는 이곳에 대학교수만 20여명이 넘는단다. 이렇다하게 전답이 눈에 띄지 않는 마을에서 그 어렵던 시절에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으니 이곳의 향학열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주실마을을 이야기 할 때 빼놓지 않고 해야 할 이야기가 한양조가에서 내려오는 삼불차 정신이다. 재불차, 돈을 빌리지 않는다. 문불차, 글을 빌리지 않는다. 인불차,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 조선 중기 조광조의 난 때 환란을 피해 이곳 오지의 땅 영양군 주실마을에 입향해 370년, 16대를 내려오면서 집안의 맥을 양자로 이어온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주실마을은 한바퀴 휘둘러보고 가는 곳이 아니다. 한양 조가의 입향 배경, 주실마을의 풍수지리학적인 설명, 배출된 인물의 면면함 등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을 이야기로 주실마을은 단순히 조지훈 생가와 종택을 둘러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꼿꼿한 선비정신을 배우게 되는 곳이다. 마을 북쪽에는 조지훈선생이 어렸을 때 다녔다는 월록서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지훈 문학관을 새로 열어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54)

영양을 내륙지방에서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가지 중앙고속도로 영주 나들목을 빠져 나와 봉화를 거쳐 가는 방법과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을 빠져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 청송 진보면을 거쳐 31번국도를 타고 영양군에 이르는 길이다.
 영양군에는 대규모 콘도나 호텔이 들어서지 않은 순수한 고장. 수비관광농원(682-2682)의 객실을 이용하거나 영양읍에 위치한 모텔을 이용해야 한다. 검마산 휴양림은 사전 예약은 필수다.
검마산 자연휴양림
수비면에는 88번 국도 상에는 접근이 편리한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다. 검마산은 해발 1,017m로 낙동정맥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암산과 그 눈높이를 같이 한다. 산 정상부에는 암부를 이루고 있으며, 험준하고 뾰족하다 하여 칼을 빼어든 것 같다하여 이 산의 이름이 유래된 듯하다. 휴양림 내에는 여름철 이용 할 수  있는 야영데크와 사시사철 이용 가능한 산림 휴양관 2동에 16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검마산 자연휴양림 문의 682-9009

 


조지훈 생가 주실마을 찾아가는 길 :
영양읍을 거쳐 진보 방면으로 나있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좌측에 입암관광단지와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서석지는 이곳에서 진보방면 약 500미터 지점에서 입암2교를 건너 911번 지방도를 타고 청기 방향으로 가면 연당리에서 서석지 안내이정표를 만난다.
중앙고속도로 이용-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 진보-31번 국도 영양방향- 입암면 면소재지-입암관광단지
봉감모전오층석탑 : 진보에서 입암방면 31번 국도를 타다 입암면소재지 못미처 현대오일뱅크 하나주유소 앞에서 좌회전 신해리 방향 2번 군도를 탄다. 약 1km 직진하면 소나무 숲을 지나 왼쪽에 봉감모전오층석탑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석탑까지는 시멘트 포장 길로 되어 있어 승용차의 통행이 가능하다.

 

두들문화마을 찾아가는 길
젊은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등의 소설로 한세대의 젊은이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었던 소설가 이문열은 생가인 영양읍 석보면 원리에 광산문우(匡山文宇)를 짓고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틈틈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한다.

찾아가는 길 : 31번 국도 영양읍 남진 진보방향 -> 석보면 911번 지방도 ->석보면 면소재지 농협지소 -> 두들문화마을
숙박 : 청량소림산장  영양군 석보면 삼의계곡 054-683-8832
       석보여관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054-68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