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트래킹과 영덕 해안 일주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로구나!
나이 만큼이나 해가 바뀌는 것을 봐왔을 터이지만, 여행길에서 만나는 오월의 신록은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봄꽃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 설레임이라면 오월의 여행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엿보이는 듯하다. 오월의 햇살은 싱그러우며, 오월의 바람은 감미롭다. 계절의 여왕, 그 속으로 떠나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 중에도 속세를 떠나 선경을 접하게 되면 세상사 모든 번뇌 잊게 해주는 여행지로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 기암과 대전사)
주왕산을 찾는 두가지 방법
주왕산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의성나들목을 이용하는 방법과 서안동 나들목을 빠져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까지 이르러 동해의 해안 절경드라이브를 즐긴 뒤 주왕산국립공원을 찾는 방법이다. 둘 중 어느 방법이나 수도권에서 가자면 자가운전으로 5시간은 소요된다. 부지런한 운전자나 이박 이상의 여유로운 일정의 여행자라면 오며가며 들려 볼 곳도 많은 코스이다.
주왕산은 북한산, 설악산과 같은 암산이다. 해발 720m의 낮은 산이지만, 1976년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은 물론 조선팔경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산세가 빼어난 곳이다. 주왕산은 크게 주방천을 중심으로 외주왕과 주산저수지 방향의 내주왕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주왕산 트래킹 코스로 삼는 곳은 주왕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자리한 상의리를 출발, 주방천이 휘돌며 조성된 기암협곡을 조망 한 뒤, 전기 없는 내원동 마을을 오가는 외주왕 왕복코스이다. 주왕산의 들머리인 상의리 진입로로 접어드는 순간 멀리 주왕산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기암이 눈길에 들어온다. 언뜻 봐도 한자의 묏山자를 그대로 형상화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초에 거대한 하나의 암봉을 형성하다 오랜 세월 침식을 받은 주상절리 현상에 따른 것이다. 주왕산 기암은 거친 바위가 품은 부드러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에는 중국 주왕의 전설이 도처에 깃들어 있다. 중국 땅에서 이곳까지 쫓겨 온 정벌군이 주방천 입구에 들어서 지형을 살펴보니 험준한 산세와 협곡을 이룬 탓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 못했다한다. 이에 주왕은 기암 주변에 노적가리를 쌓아 충분한 식량을 갖추고 있는 듯 꾸며 놓았다. 이곳까지 쫓아온 정벌대는 그동안 주왕의 농간에 수차례 넘어갔던 지라 노적가리의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바위 표면에 맞고 튕겨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주왕의 위장술임을 간파하였다. 이에 기세를 몰아 주왕과 그 잔당들을 토벌 한 뒤, 노적가리를 쌓았던 바위 위에 깃발을 꽂았다하여 그 뒤로 기암이라고 전해지게 되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찾은 사람들이라면 주방천이 흐르는 국립공원 매표소 인근에 주차하고 관광단지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는 것으로 트랙킹이 시작된다. 주왕산 입구에 자리한 대전사는 절 뒤쪽으로 보이는 기암과 어우러져 풍치가 뛰어난 곳, 오월 초순에 찾았다면 절 뜨락에 뒤늦게 흐드러지게 핀 왕벗 꽃을 만나 볼 수 있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 명승 나옹대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 대전사라 불렀다고 한다. 절 내의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보광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02호 지정된 유물이다. 대전사 관람을 마치고 탐방로는 따라 걷을지 20 여분이면 계곡 깊숙한 곳에 이르게 된다.
(급수대.JPG, 주왕산 계곡.JPG)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다 볼거리가 펼쳐진 곳에는 자세한 설명문이 있어 관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산 입구에서 눈길을 끌던 기암 정상은 암벽 장비를 갖춘 전문 산악인 외에는 올라 갈 수 없고, 계곡을 이동하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계곡의 상류로 올라 갈 수록 아들바위 주왕암과 주왕굴, 학소대, 급수대의 순으로 발길을 옮길 때 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계곡 중간 중간에는 제 1, 2, 3 폭포라 이름 붙은 폭포가 있다. 그 중 제 2폭포는 탐방로와 살짝 비켜나 있어 가장 한가롭게 폭포의 정취를 감상해 볼 수 있는 곳. 학소대와 급수대 인근의 기암절벽이 계곡미의 극치를 이루는 곳이다. 급수대라는 바위는 마치 미국 요세미티 공원의 하프돔 암벽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 시대 이곳에 은신한 왕족이 급수대 위에 대궐을 짓고 그 위로 물을 길어 올렸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속세를 버리고 선계에 접어드는 신비로움과 비밀스러움이 느껴진다. 낙석으로부터 탐방객을 보호하기 위한 터널을 지나면 그 은밀한 별세계의 멋은 한층 더 해진다.
전기없는 오지마을 내원동
제 3폭포를 지나면 길은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지마을 내원동이 머지않았음이다. 대낮에도 햇빛이 가리워지는 울창한 숲을 지나 걷다보면 어느 순간 하늘이 훤히 열리며 오래 전 폐교되어 지금은 음식점과 숙박시설로 이용되는 내원분교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이 전기 없는 오지마을 내원동이다. 내원동에는 7가구 스무 명 안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주민은 얼마 없고, 내원동이 좋아 찾아 든 사람들이 더 많다. 그 중 사슴할아버지인 권영도옹은 삼십 여년 넘게 이곳에 살며 주왕산 골골마다 다 꿰고 있는 산꾼이다. 본명 보다 사슴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이분은 내원동 지킴이기도 하다.
(내원분교.jpg)
주말의 내원분교 앞은 몰려드는 사람들의 음식을 해내느라 시골 잔칫집 같은 분위기이다. 내원분교는 이 지역 산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저렴한 숙박비로 침낭과 함께 대여도 해준다. 내원동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생기발랄함과 순수함을 읽기 어렵지 않다. 학소대와 급수대를 지나며 속세의 번뇌를 모두 잊은 탓이다. 국립공원 매표소 입구에서 내원동 마을을 오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3시간. 식사와 간식시간을 포함해 넉넉잡고 4시간이면 계곡 트래킹을 마칠 수 있다.
국립공원 입구 인근 관광단지에는 경쟁이 치열해 음식점 마다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있다. 음식점에 들어서면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막걸리도 한번쯤 맛보고, 식당 한구석을 자리한 또 다른 특산물인 화문석(꽃돌)을 찬찬히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계절 아름다운 주산지와 절골 계곡
디카 열풍이 불면서 여행 패턴에도 커다란 변화가 왔다. 비경을 담는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을 수소문해 아예 촬영을 목적으로 여행일정을 꾸미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인간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사계에 비교해 이곳 주산 저수지에서 촬영된 곳. 영화에 등장한 수중암자는 철거되었지만, 이곳 사계의 비경이 영화 전반에 걸쳐 고스란히 담긴 탓에 아마츄어 사진인들의 발길 또한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주산지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은 해 뜰 무렵 물안개가 피어나며 반쯤 잠긴 왕버들과 맞은편 야산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수면위로 반영되어 아름다운 색채를 수놓는 새벽이다. 5월의 주산지는 일교차가 가을철에 비해 많이 나지 않아 물안개를 볼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신록이 우거진 맞은 편 산의 반영이 드리워진 주산지의 풍경은 사진가들에게는 좋은 피사체가 되어 준다. 넉넉한 일정이라면 편한 복장으로 인근의 절골로 향한다.
절골은 내주왕이라고도 불리는데, 외주왕 계곡과는 달리 좀 더 편안한 계곡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비교적 한적함 속에서 트래킹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다. 절골매표소에서 철사다리와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를 40분 정도 거닐면 시작되는 신술골 입구가 나타난다.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해 온 사람이라면 지도와 이정표를 이용해 외주왕이나 내원동 마을로 향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서 절골 매표소로 되돌아나가야 한다. 신술골 입구에서 매표소를 오가는 시간은 넉넉히 1시간 40여분이 소요된다. (주산지.jpg)
무릉도원의 관문 옥계계곡
주왕산에서 동해에 이르는 길은 914번 지방도를 타고 평해에 이르는 길과 내룡리에서 69번 도로를 타다 흥기리 삼거리에서 강구로 향한 간선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914번 지방도를 이용 우설령 고개를 넘을 때면 능선을 따라 난 도로에서 조망해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69번 도로 이용 시, 청송 얼음골과 침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옥계계곡, 달빛에 드리워진 여덟 개의 산영 풍경이 압권이라는 팔각산 등의 경치를 감상 할 수 있다. 청송 얼음골의 얼음은 대기의 수증 활동이 가장 활달한 복더위에나 볼 수 있다. 오월의 얼음골에서는 인근의 인공폭포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청송 얼음골을 지나 옥계계곡에 이르면 도로 좌, 우측으로 절벽이 발달되어 있다. 절벽이 펼쳐내는 풍경으로 인해 선계와 속세를 잇는 관문을 통과하는 듯하다. 팔각산을 지나면 도로와 구릉을 잇는 밭 대부분이 복숭아 단지로 4월이면 복사꽃이 만발할 때 찾으면 무릉도원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침수정.jpg, 복사꽃.jpg, 배꽃.jpg)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강축해안도로
강축해안도로란 강구항과 축산항을 잇는 해안가 도로로 때로는 바다와 눈높이를 같이 하는가 하면 강원도 구절양장 같은 도로로 이어져 높은 절벽에서 드넓은 동해를 바라 볼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다. 해맞이 공원 주변은 꼭 일출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어도 꼭 한번 들려봐야 할 곳. 대게 형상의 다리 모양이 등대를 휘감아 올라간다. 절벽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목책 계단 주변에는 야생화가 식재되어 있어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옷을 갈아 입는다. 해맞이 공원 맞은 편 산 위로 올라가는 산록도로는 풍력발전소로 향하는 길. 23기의 거대한 프로펠러 발전기가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며 펼쳐 놓은 장관도 빼놓지 말고 봐야할 볼거리이다.
(강축해안도로.jpg, 영덕풍력발전소.jpg)
* 여행메모(지역번호 054)
주왕산을 오가는 길에 식사시간이 되었다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청송에서 달기약수탕을 찾아간다. 약수탕 주변에는 이곳 약수를 이용해 끓여 내오는 닭백숙과 삼계탕이 유명한 집이 즐비하다. 진짜 약수에서 삶아 내온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국물 위에는 거품 흔적이 일고, 육질에서 푸르스름한 빛깔이 배어 나온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매스컴을 타 유명한 집이 있지만, 한적한 식당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즐기기를 권한다. 청송은 사과가 유명한 곳 주왕산 하산 길에 사과와 인삼, 대추를 둥둥 띄운 막걸리는 보기에도 예쁘지만 맛도 좋다.
강구항은 대게가 유명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그마한 포구이지만 대게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간혹 항구 길거리에서 싸게 파는 대게를 보게 되는데, 십중 팔구 주택가 인근에서도 간혹 보게 되는 홍게를 파는 곳이다. 홍게는 말 그대로 등딱지와 다리 부분이 연홍색을 띠고 있다. 영덕 대게는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다리 부분에 속살이 꽉 차 있고 가격도 상당히 나간다. 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강구항 진입로 맞은 편에 자리한 강구시장이나 항구 어판장 인근에 그물에서 떼어내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 상품가치가 떨어진 대게를 저렴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다.
찾아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을 이용 안동 방향으로 길을 접어든다. 34번국도와 31번 국도를 번갈아 갈아타며 청송까지 진입하면 주왕산 입구까지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강축 해안도로를 타려면 다소 혼잡한 강구 항 거리를 지나야 한다. 강축해안도로가 끝나는 대진해수욕장은 소설 “ 젊은날의 초상”의 대미를 장식한 곳이기도 한 곳. 명사 이십리 해수욕장이 펼쳐지고, 영해면 소재지 인근에는 전통 민속마을인 괴시마을이 들려 볼 만하다.
숙박 : 달기약수탕 주변에는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 몇 군데 있다. 좀 더 깨끗한 숙박시설을 원한다면 청송의 주왕산관광호텔을 이용한다. 절골과 주산지 인근에는 숙박시설이 전무하다. 주산저수지 주차장에는 야영이 가능하나, 10월에는 한겨울에 준하는 침낭을 준비해야 한다.
강구항 인근에 모텔이 들어서 있고, 강구 항을 빠져 나가 해맞이 공원까지 해안도로 주변에 펜션과 모텔이 즐비하다. 인근 삼사해상공원에도 숙박시설이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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