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世上萬思

순천만 대대동 갈대밭에서

오체투지해무 2015. 12. 9. 08:52

팔십년대 운동을 하다 끌려가 갖은 고문은 다 받았던 지인이 고초와 방황을 끝내고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살만해졌을 구십년대 후반의 일이다. 같이 운동했던 선배와 후배, 나와 친구 넷이서 남도로 여행을 떠났다. 

 

건전한 사고방식에 나름 정서적으로 안정된 이친구에게도 고문과 운동권의 붕괴로 인한 트라우마는 깊었다. 목숨과도 바꾸겠다는 이념이 와해되고 이제 제 한 목숨 살아나가야 할때, 운둥경력은 언제나 삶의 걸림돌이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의지마져 나약했저 방황했던 시절을 곁에서 지켜 봤던 나는 기억한다. 그럼에도 타고난 현명함과 성실성으로 구십년대 후반쯤  출판계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자신의 건강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 받은 후유증으로 이곳저곳이 아팠지만 이렇다하게 의사의 진단으로는 규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슷한 후유증이 있던 선배가 기치료를 받게되었는데, 기 치료를받는 과정에서 멀쩡하던 부위에서 피멍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십 수년 전 경찰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던 것이 기치료를 받아 시커먼 피멍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괜찮은 듯 보이는 내면도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찾는 이 아무도 없는 90년대 후반 순천만 대대동 갈대밭을 찾은 친구는 바람에 몸을 맞기고 서로 서걱되며 부비는 마른 갈대를 바라보다 먼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살아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