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世上萬思

양귀비가 핀 유월.

오체투지해무 2014. 6. 5. 11:09

 

양귀비를 처음 본 것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도로현장 이장집에서다. 지금이야 차로 십분 이십분이면 읍면소재지로 나갈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던 곳.

 

이장집 뒷뜰에서 양귀비를 봤다는 현장기사의 말을 듣고 전빵을 같이하는 이장집에 찾아 갔지만 쉽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어느날 그 가게에서 오후 참을 먹고 있는데 이장부인이 양귀비 꽃 본 적있냐고 물으며 뒷뜰에 고히 모셔져 핀 양귀비 꽃 다섯송이를 보여주며 절대 얘기하고 다니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양귀비를 고아 비상약으로 쓴단다. 갑자기 통증이 생기고 병원에는 갈 수 없으니 오래전 부터 민간요법으로 양귀비 고은 액기스를 빨고 진통효과를 보곤 했다는 것.

 

양귀비 꽃에 대한 첫인상은 비밀스러웠고 음침했으며 보는것만으로 공범자가 된것 같은 묘한 죄책감마져 들게 했다. 꽃에 대한 아름다움은 느낄 틈이 없었고, 그 이후 관상용 양귀비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십여년 전 부터 이맘때면 봐오곤 했지만 고혹적인 아름다움은 커녕 예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도불지식인 Seran Kim이 보여준 flower by genzo의 양귀비 사진 한장으로 양귀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제야 양귀비에 대한 심미안이 떠진것이다.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것들로 채워져 있을텐데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삶의 애착이 강해지는것인지도 모른다.

'기타등등 > 世上萬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드웨어 유감  (0) 2014.06.14
아버지 오십재  (0) 2014.06.11
아버님 입원에서 선종까지  (0) 2014.05.04
아버님 선종.  (0) 2014.05.04
에그타르트와 그루  (0) 201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