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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해무 2013. 3. 8. 04:36
밖에서 돌아온 방 안. 손바닥이 끈적이고 꿉꿉하다. 머리로는 손을 씻어야지 수십번을 생각하면서 미처 갈아입지 않은 옷으로 책상 의자맡에 양반다리를 한다. 손도 안 씻고 휴지를 뽑아 하얀 책상 위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는 제 멋대로 구겨져서 먼지를 안은 휴지조각을 빤히 본다. 그 옆에 세민언니가 준 토끼인형도 보고 그 옆에 앨리스가 준 고양이 메모지도 본다. 타임라인에서 폴 오스터 관련 포스팅을 보고 오랫만에 환상의 책도 뒤적인다. 책을 뒤적이면서도 손을 씻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엔 책에 비닐커버를 씌우지 않으면 책을 들고 나가지도 않을 정도로 심한 결벽증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자꾸 손을 씻어야 하는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시절에 가진 강박이 여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강...박을 넘어서는 시간들이 있다.

어제 새벽엔 박이소 선생님의 인터뷰 글들 중 <집보기 놀이>에 대해 읽으며 나는 또 마음이 꽂혀있었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냐는 물음에, 그는 (이건 셋 중 하나의 답이 었는데) 천정을, 바닥을, 벽을 한 시간씩 보며 숨을 쉰다고 했다. 나는 모니터 옆에 던져 둔 휴지주름을 보며, 사이사이 얹혀진 흑색의 회색의 먼지를 보고, 다시 박이소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늘상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곳을 본다는 건 뭘까. 그 시간으로 내가 시간을 초월해 넘어가서 그의 눈이 되면 나는 무엇을 볼까. 볼 수 있을까. 눈이 닿아 천정의 벽지 색을 보았다고 해서 진짜 천정을 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무언가를 보고 뭔가를 '보았다'고 느꼈다고 해서 진짜 그 것을 알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결론짓지 않고 그대로 보기,란 여전히(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어렵다. 몸에 힘을 뺀 것 같아도 사실 힘이 들어가 있고, 욕심을 놓은 것 같아도 욕심이 들끓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해도 판단하게 된다.

그는 누워서 막힌 천정을 보고 그 곳에 있는 하늘을 보고 우주를 보았던 것 같다. 마음 쓸고 그 눈이 되어본다. 눈도 닦고 마음도 닦는다. 미안한 마음도 마음으로 흘려보고 괜스레 저릿한 마음도 만져본다. 여러 말을 쓰다 던진다.


"좋은 예술작품은 불교승려의 깨달음과 같다. 승려의 큰 어려움은 최초의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바로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좋은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작가는 불교승려처럼 영구적인 자기 혁명에 자신을 연관시켜야 한다. 승려든 작가든 간에, 자신이 이룬 바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그 순간부터 퇴보하기 시작한다." - 박이소, 작가노트 중에서
 

 

 

 

 


(이미지: 박이소, <그냥 풀>, 종이에 먹,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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