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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볼카노를 찾다가...

오체투지해무 2013. 1. 26. 16:42

Old Man's SongMusic&쌤

2008/12/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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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Tom Rush
Old Man's Song-Tom Rus..

흔히 듣던 유행가 가사도 실연 당한 후에 듣노라면 가슴을 내리 찌른다던가. 그저 들어서 편안하고 좋은 음악이 있는가 하면, 듣노라면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속을 후벼파는 음악이 있는가 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 음반은 분명 나에게는 후자에 속하겠다. 나의 개인사에 속하는 젊은 날의 혼란과 광기와 집착이 온전히 담겨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누군들 광기와 집착이 없던 시절이 있겠는가. 하나 나에겐 유독히 지독했고 끝이 보이지 않던 시절.


이 음반을 만나게 된 것은 1970년대의 후반이다. 시대적인 우울함과 개인의 기질적 방황이 끈끈이 점착되어 있던 시기였다. 나는 이 시절 강릉으로 훌쩍 떠나와 있었다. 한 번 나가면 몇 달 씩 떠돌던 생활이었다. 강릉의 시장통 철로변 아래에 위치한 ‘넘버 9’이란 음악 감상실. 음악과 젊은이를 무작정 사랑했던 주인은 미군 부대의 군속이었던 관계로 수천 장에 달하는 많은 원반을 가지고 있었다. 매킨토시 MC 24 모노 블럭 진공관 앰프, 자작 스피커, 방송국용 믹싱 기기, 그리고 이 음악 감상실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 동안 음악 진행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인은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가면 새벽까지 같이 음악을 들주어야만 했다. 템프테이션(Temptation)의 ‘에인 노 선샤인(Ain't no sunshine)’과 그리고 톰 러쉬(Tom Rush)의 ‘올드 맨즈 송(Old man's song)’을 들으며 그는 주룩주룩 눈물을 쏟았다. 바로 그 ‘올드 맨즈 송’의 선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난 곧 그곳을 떠나와 일상성을 회복했다. 음악은 분명 위안이었지만 방황을 합리화시키는 한 알의 마약이기도 했다. 편지 한 통을 뒤로하고 이곳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고 수년 후 내가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무렵, 그곳은 이미 문을 닫고 아무러한 자취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해 오늘의 50대에 이르기까지 클래식과 포퓰러를 합쳐 기천의 음반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 난 그날 이후, 그곳에서 들은 몇몇 포퓰러 음악들은 평생의 추적거리가 되고 말았다. 삼십 여년이 넘어가는 지금 그 어느 아이템은 입수에 성공하였고 그 어느 아이템은 아직도 수배와 추적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85년 경이던가. 예전 종로의 음악 감상실 ‘볼카노’, 그리고 서대문의 ‘별밭’ 등지에서 같이 음악을 들으며 음악 진행자 생활을 하던 중학교 후배 하나가 미국으로 음향학을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몇몇 음반, 특히 톰 러쉬의 ‘올드 맨즈 송’을 희귀 음반 전문 가게를 뒤져서라도 찾아달라고 신신 부탁했다. 가끔씩 국제 전화를 주고 받으면서도 나는 이 점을 각인시키곤 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91년도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구했어요” - 트래픽의 ‘이브닝 블루(Evening Blue)’도 곁들인 소포로 보내온 꿈에 그리던 톰 러쉬의 음반을 받고 한참 동안 나는 넋을 잃고 회상에 잠겨야만 했다.


모던 포크의 대가로 인정 받고 있는 톰 러쉬의 본작은 그의 앨범인 <Circle Game>, <Merrimack Country> 등과 함께 평론가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1970년, 컬럼비아 음반사로 이적한 이후 발표된 앨범인 동시에 문제의 ‘Old Man's Song’을 담고 있는 콜렉터스 아이템이다.

사실 톰 러쉬의 개인적 이력은 잘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어렵사리 알아낸 것은 그가 하바드대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이자 우디 가스리(Woody Guthrie)를 시작으로 피트 시거(Pete Seeger)에 이어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하던 이전의 포크 송의 흐름에 메시지와 더불어 서정성을 부여한 모던 포크의 대가라는 점이다. 거개의 포크 싱어들이 그러하듯,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한 그는 본작을 통해 <로스트 마이 드라이빙 휠(Lost My Drivin' Wheel)>, <럴러바이(Lullaby)>, <칼러 오브 더 선(Colors Of The Sun)> 등의 명곡을 훌륭한 믹싱의 힘을 빌어서 표현해 내고 있다.

본작에 실려 있는 <Lost My Drivin' Wheel>, <Colors Of The Sun> 등의 록 비트는 포크 락의 계보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그의 록 비트는 포크 기타 군단이라 할 ‘크로스비 스틸 내쉬 앤 영(Crosby Still Nash & Yung)’이나 남부 서든 록의 ‘린야드 스킨야드(Lynyrd skynyrd)’, ‘더 밴드(The Band)’ 등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Old Man's Song’, ‘Lullaby’의 보다 아쿠스틱한 기타 연주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잘 아는 포퓰러한 포크 가수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숀 필립스(Shawn Phillips)' 등도 그의 영향을 인정하고 있다 한다.


요즘은 시간을 아껴 쪼개 쓰는 참으로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기에 가끔씩은 아무런 걸림이 없이 떠돌던 20대 초반의 그 시절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음악들. 이글스(Eagles)의 발라드곡인 ‘새드 카페(Sad Cafe)’의 분위기를 지녔던 음악 감상실 그 ‘넘버 9’에서 들은 후, 아직도 수십 년을 찾아 헤메는 몇몇 아이템들이 있다. 스푸키 투스(Spooky Tooth)의 ‘레인메이커 Rainmaker)’, 로니 맥도웰(Ronnie McDowell)의 ‘킹 이즈 곤(King Is Gone)’ , 오 제이스(O'Jays)의 ‘유 앤 미(You & Me)’ 등등.

톰 러쉬의 본작은 십 사오년쯤 전에 ‘숨겨진 명곡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킹 레코드’란 레이블에서 ‘Old Man's Song’의 싱글이 발매 된 것을 산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 ‘올드 맨즈 송’의 싱글이 아닌 앨범 자체가 수입된 것으로 들었으나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늦은 밤 비어드(beard)와 프레시젼 피델러티(precision fidelity) 앰프가 자아내는 진공관 불빛을 바라보며 하베스(harbeth) 스피커를 통해 가끔씩은 톰 러쉬의 음반을 올려본다. 그리고 이 음악을 듣고는 울던, 한 없이 사람 좋은 ‘넘버 9’의 주인을 생각해본다.

[출처] Old Man's Song|작성자 나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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