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가평 명지산 춘천 일박이일

오체투지해무 2012. 12. 26. 12:45

당일 근교 여행이나 산행은 꾸준히 다녔지만, 서울 주변을 벗어 난지도 오래다.

12월 들어서자 내설악 만경대와 지리산 세석과

 

 

 

   

 

 

 

 

 

 

 

 

명지산 산행 마치고 춘천으로 가기 위해 구길로 들어섰다. 삼악산 아래 의암댐의 나트륨등.

" 해질녘 이런 불빛을 보면 그렇게 싫더라."
" 뭐가?"
" 댐에 드리워진 불빛에 들어난 콘크리트, 공단의 대단위 플랜트 불빛 이런거 있잖아."
" 나도 그래,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잖아. 그래서 사람한테 안좋데."
"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소외감을 불러 일으켜서 그러나..하여튼 저런 불빛 보면 기분이 안좋아져."
" 김민기 노래 중에서 공장의 불빛이란 노래 있지?"

 

 

 

 

 

 

 

 

 

강원 춘천 명동.
참숯 위에 담백하고 매큼한 순살 닭고기.
음식점 옆 대기실에서 발골 과정을 지켜 볼 수 있다.
춘천 닭갈비에는 어린시절 풀지못한 숙원이 하나 있다.

중 3 때로 기억하는데 시험을 앞에 두고 있어, 아버지 부부동반 남이섬 야유회에 동생만 가야했다. 야유회에 다녀온 동생이 남이섬과 점심으로 나온 닭갈비 먹은 것을 자랑하는데...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닭갈비라는 음식이 전혀 낯선 음식이여서 초등학교 6학년 동...생의 이야기로만 전해 듣는 숯불닭갈비는 너무나도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77년도의 일이지만 닭갈비 맛을 설명하는 동생의 진지한 얼굴이 떠 오를 만큼 생생하다.

그 이후 춘천을 찾을 때 마다 명동 닭갈비를 먹어보고 그 양과 맛에 감탄을 하기는 했지만, 어린시절 들은 그 숯불닭갈비는 찾아 볼 수 없었고... 한 군데 있었지만, 어쩌다 일행들과 양 많은 철판닭갈비에 만족해야만 했다.

영하 14도로 곤두박질 치던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의 춘천 명동거리. 그 추위에도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호기심 발동, 커다란 화로에 가득 담기 숯불에 추위를 녹이면서 각각 따로 온 사람들이 이집 닭갈비 맛에 대해 설왕설래.

대기표를 받고 세시간을 기다려 먹고 나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만족이라며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의욕을 북돋아 주기 까지 한다. 어린시절 동생의 남이섬 야유회에서 숯불에 구워 먹고 온 닭갈비 자랑을 안들었다면 그 추위에 순서를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순살닭갈비 1인분에 만원, 양이 적다.
건너편 테이블의 사람은 대기표 받은지 3시간여 만에 그자리에 앉게 되었단다. 그것도 조금이라도 빨리 먹기 위해서(그 추위에 털모자도 없이 꼬박 한시간을 밖에서 떨며 기다렸다 그러기 전 두시간은 명동골목과 커피샵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앞팀 한커플과 합석했다 형님아우님이 되어 연락처를 주고 받고 의기투합 노래방 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공중파 삼사 방송에 연짝 3일 이곳이 소개되었단다. 젋은 커플들도, 50십을 훌쩍 넘긴 가족들도 모구 그 방송을 보고 온 사람들. 나만 어린시절 동생에게서 전해들은 남이섬 유원지에서의 숯불닭갈비의 염원을 그 줄에 끼어들어 40분을 기다려 35년만에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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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 명동 닭갈비골목 2012. 12.
닭갈비의 원조라고 알고 있는 춘천 닭갈비가 탄생한 바로 그 골목이다.
닭갈비는 화로숯불돼지고기와 함께 홍천이 원조라고 할 수 있지만, 철판 위에 각종 야채와 함께 볶아 먹는 형태로는 춘천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춘천 닭갈비는 든든한 한끼 식사와 술안주가 되어 주었다. 바로 이 골목에서 한참 잘 먹는 30대 남자 셋이서 2인분 시켜 술안주와 식사를 할 수 있...었을 만큼 양이 많고, 가격 또한 돼지갈비에 비해 저렴했다.
홍천과 춘천 일대 닭갈비가 발달된것은 양계장이 양축업이 인근에 발달된 탓이라고 한다. 홍천에 비해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춘천에 사람들이 발길이 오가면서, 춘천 닭갈비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

춘천닭갈비가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화 되고, 서울을 비롯 대도시에서 야채와 볶아내오는 춘천식 닭갈비를 맛 볼 수 있었지만, 원조격인 춘천의 닭갈비의 맛과 양을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후반, 이 곳 골목을 찾았다가 대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 허름한 집에서 서울에서 먹어 볼 수 있는 체인점의 닭갈비를 내놓는 것이다. 줄어든 양, 평균화 된 맛...

주인 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니, 서울 사람들이 먹어보고서는 서울에서 먹던 맛이랑 틀리다고 불평을 하며 서울 닭갈비가 더 맛있다고 했단다. 칼칼하게 맵고, 담백하면서 순박한 맛은 사라지고, 설탕과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게 됐다는 것이다.

현대화에 발맞춰 허름한 집들은 그저 그런 인테리어에 많은 비용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그 비용은 닭갈비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고, 조미료에 맛들어지고, 재료 자체의 맛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매콤달콤한 그저 그런 닭갈비가 되고 말았다.

춘천 명동 골목을 얼마만에 찾았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닭갈비 골목을 찾아 들어가던 그 주변은 지금은 어느 대도시의 번화가 로데오 거리 같고, 다만 닭갈비 골목의 그 구버러진 좁은 길이 옛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영하 14도로 내려가던 한파가 몰아친 거리. 옛맛을 찾아 들어온 자칭 맛객들이 대기표를 받고, 3시간여를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는 한 닭갈비집에서 40여분을 기다려 오래 전 정직한 춘천 숯불닭갈비 맛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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