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했던 세상
- 이생진-
누구나 한번쯤은 실망했던 세상을
그래도 달래가며 살아가는 것은 기특하다.
어지러운 틈새로 봄이 순회처럼 들어오면
꾀꼬리 걱정을 하고
나뭇잎이 푸르르면 내 몸매도
유월로 차리던 사람
일시불을 꺼내주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살라고 졸라도
살아가기 막막한 때가 있겠지만
월부를 꼬박꼬박 치르며
끝까지 살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은 기특하다
그 누구의 노예로도 남아있길 부정하며
모르는 사이에 노예로도 살고
그 누구의 그리움에도 한번은 미쳐살며
하루에도 몇번씩 그리운 표정을 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남이 보기엔 쓸모없는 누구일망정
옷깃을 여미며 꽂꽂이 예절을 바로 세워놓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생활이 하도 쓸쓸해서
시간을 피해 나와 서성거리다가도
다시 그 생활로 되돌아 가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털어놓고 보면
누구나 한번씩은 해보았을 자살미수
그래도 껄껄 웃다가 가는 것을 보면
사람은 기특하다.
2007. 1. 신촌 우드스탁에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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