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6. 충남 오천성
- 신경숙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폐허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인간의 폐허야 말로 그 인간의 정체성 이라고 본다.
아무도 자신의 폐허에 타자가 다녀가길 원치 않는다.
이따금 예외가 있으니 사랑하는 자만이 상대방의 폐허를 들여다 볼 뿐이다.
그 폐허를 엿본 대가는 얼마나 큰가.
무턱대고 함께 있어야 하거나 보호자가 되어야 하거나
때로는 치유해줘야 하거나 함께 죽어야 한다.
나의 폐허를 본 타자가 달아나면 그 자리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하나가 되었던 그 일치감의 대가로 상처가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