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암릉을 바라 봤을 때 절경이라고 꼽을 풍경이라면 아마도 불광동-송추-의정부를 다니는 34번 노선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원효,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일대 일 것이다. 북한산성 계곡의 수문장인양 우뚝 선 원효봉과 의상봉, 암릉으로 이어지는 백운대, 녹음이 짙어가는 깊은 숲과 계곡, 동장대와 대남문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암릉 산행에 흠뻑 빠진 우리의 주치의 민원장의 제안으로 이벤트 산행을 갖게 됐다.
파랑새 능선과 서벽밴드를 제안했으나, 추락 사고 수술 후 처음 원효-만경대 암릉 산행을 해보고 싶었다.
연초 몇몇이서 산행을 주말마다 다니며, 특별한 약속 없으면 주말을 함께 보내게 된 오랜 친구. 요세미티 엘캡루트를 가기 위해 거벽등반 훈련을 하다 종골 크랙으로 아이젠을 박고 있는 산악부 OB 동기도 함께 하기로 했다.
집 앞에서 잡아 탄 북한산성 계곡행 버스 뒷좌석에서 우연히 민원장을 만나게 되어 심심치 않게 약속장소에 도착.
약속시간 보다 15분 늦게 친구 셋이 만남의 광장 앞에서 택시를 내린다.
짧은 안부 인사와 함께 공원 매표소로 이동한다. 코스를 알고 들머리를 잡았는지 알았더니 무턱대고 공원 출입구를 지나친다.
원효봉 등산로 들머리는 효자원 입구이긴 하지만 다시 되돌아 나가기도 귀찮은 일.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물을 건너 원효의 산자락에 스며든다. 인파가 붐비는 산행을 싫어하는 친구가 샛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 간만에 마음에 든다며 좋아라 한다.
서암문과 덕암사 사이 땀바위가 시작되는 구간에 여느때 같으면 공단 직원이 장비 착용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나와 있는데, 이 날은 아무도 지켜서고 있는 사람이 없다. 십 수년 전 등산경험이 없는 친구 회사의 여직원을 대동하고 왔다, 이 구간에서 다리와 동공이 풀리는 일이 발생했던 곳. 바위를 처음 경험하는 한 친구와 오를 때의 발의 위치, 호흡법 등을 알려주며 쉬엄쉬엄 땀바위 슬랩을 오른다.
오르는 내내 중간 중간 호흡을 가다듬으며 뭉친 종아리를 쉬어 가지만 땀바위 정상 소나무 숲에 이르면 배낭을 내려 놓고 한 번 씩은 쉬어간다. 민원장이 막걸리 한통을 꺼내 일행에게 한 잔 씩 권한다.
이 이후 구간을 찾은 것은 2004년 가을이 최근의 일. 원효봉 치마바위를 지나자 코스 한 곳에서 자일을 드리고 선등자가 오르기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일행에게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다. 60m 자일이 있으니 해 볼 만한 코스이기는 하나, 바위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은 초심자가 있어 그나마 편안한 길로 우회하기로 한다.
6년 만의 길이기도 하고, 워낙 그 길이 그 길 같아 자칫 들머리를 놓치지 않나 하는 낌새가 일행들에게 전해졌나 보다. ' 이 길이 맞아. '를 연방 물어 본다. 간혹 옆길로 새자는 OB산악대장의 말을 따르려 하기도 해 진행에 걸림돌이 된다.
" 리딩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하던가, 중간 중간 길을 틀으면 어떻게 진행해."
한소리를 했더니 산행 내내 군소리가 없다.
원효봉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지만, 자칫 길을 잘못 들어서면 오도가도 못하는 낭패를 겪은 터라 길찾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소나무가 있는 코스도, 원효봉 코 앞에 떨어지는 긴 슬랩도 아닌 적당한 길을 따라 원효 정상에 서게 됐다.
원효봉 치마바위를 우회, 슬랩으로 원효봉 정상 아래까지 접근
바윗길 초행인 친구의 보폭이 예외없이 크게 벌어진다.
" step by step. " 민원장이 이변에게 조언을 한다.
바윗길에서 보폭을 크게 하면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정강이 까지 높이로 발을 옮기는 것과 무릅 높이, 허벅지 높이 까지 발을 옮기는 것의 체력 소모는 2~3배 차이 나며, 그것이 누적되면 작은 보폭으로 올를때와 누적 피로의 차이가 엄청 나다. 고도감으로 위축, 긴장을 하게 되어 호흡이 엉키게 되고, 긴장감 속에서 심호흡을 못해주게 되면 근육의 젖산 축적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치기 마련이다.
특별한 등반지식이 필요한 코스는 아니지만, step by step과 호흡법을 익혀 나가는것도 훈련의 한 방법.
원효봉 소나무 오르기 전 V자로 벌어진 바위를 옮겨타다 친구가 슬립에 대한 공포로 살짝 오토바이를 탄다. 안전벨트를 일찍 채우기를 잘했다. 바위 중간에서 겁을 먹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일을 묶으려면 그것도 난감한 일이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잠시 짬을 내 행동식으로 준비해 온 빵과 오렌지쥬스로 간식을 대신한다.
원효봉 정상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의상봉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해주고 운행 개시.
원효봉 성곽에서 좌측 능선부터 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이천년대 초까지만 해도 원효봉, 영취봉으로 부르던 봉우리의 호칭이 본래의 이름인 영취봉이라는 명칭은 자취를 감추고, 염초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게 된다. 자그마한 사찰 대동사의 절 이름 앞에는 ' 영취봉 대동사 ' 라는 현판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근래에 만들어진 지도에서도 영취봉이라는 이름은 찾아 볼 수 없고, 염초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한산으로 이름 지어진 삼각산의 명칭은 고려시대 지리서에서도 나와 있다. 조선 말기 편찬된 북한지에서도 원효봉과 영취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암릉산행이 활발해지면서 구전의 구전을 거듭하다 영취봉에서 염초봉이 된 듯 하다.
영취란 고대 인도 마갈타국의 왕사성 북동쪽에 있는 산. 석가 여래가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강의하였다는 곳으로 중국과 한국의 산에서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영취라는 말이 발음하기 어렵고, 등산객들 사이 구전이 되다 염초봉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염라대왕이 초대한 무시무시한 암릉길이라는 뜻에서 염초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단어의 어원도 알아 보지 않은 채 쓰이는 단어들이 늘어간다. 최근 산행에 발을 들인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 백운대 하단에서 릿지로 내려왔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는 물음에 정규 등산로를 택하지 않고 암릉으로 내려섰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릿지라는 말보다 클라이밍 다운 했다는 표현이 맞다고 알려주지만, 어깨 너머로 바위를 배운 사람들에게 릿지라는 말은 클라이밍에서 쓰이는 수많은 용어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포괄적인 단어로 쓰여지고 있다.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고, 이곳 저곳 코스의 경험이 많더라도 그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에서 제대로 암벽 교육을 받았는지, 뜨내기 바윗꾼에게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안전하게 바위를 즐기며 타기만 하면 되지만 격이란 분명 있는 것이다.
뮤직비디오 셋트장 같은 북문.
일년 전 거벽 등반 연습 도중 왼쪽 종골 크랙으로 뒤꿈치에 아이젠을 넣고 있는 친구,
5년 전 추락으로 똑같은 과정을 겪은 터라 누구보다 그 아프고 불편함을 잘 알고 있다.
영취봉을 향해 아자 아자 아자~
영취봉 초입 직벽을 우회, 밴드를 타고 접근.
암각에 확보를 하고 후등자 확보.
직벽과 밴드 구간이 만나는 곳의 도보구간.
영취봉 직벽 높이는 20여 미터에 이른다.
양호한 홀드와 스탠스를 이용해 오르다 1/3되는 지점에서 레이벡 응용 동작으로 크랙을 타고 올라서는 곳.
고도감이 상당해 완력과 균형감각, 담력이 필요한 곳이다.
오래 전 확보없이 혼자 오르다 살짝 겁을 먹고 오토바이를 탔던 곳.
크랙 사이 프랜드 확보가 필수적인 곳이다.
테라스를 딛고 민탈과 짧은 슬랩을 올라서야 하는 곳으로 짧지만 발이 밀리면 추락 높이가 상당한 곳이다.
암각에 자기 확보를 하고 후등자 빌레이를 보고 있다.
Y자 바위라고도 하고 펼쳐 놓은 책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책바위.
5년 전만 해도 확보 볼트가 없어 빌레이를 보는 후등자는 자력으로 클라이밍 다운 했어야 했던 곳.
언제부터 인지 볼트와 와이어로 하강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가운데 Y자 바위 말고도 좌,우측으로 클라이밍 다운해서 내려 올 수 있지만,
확보하기가 까다롭고 추락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위험한 곳이다.
후등자가 하강을 마치고 줄을 사리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카메라의 전원을 켜는 순간 LCD창이 하얗게 되어 메뉴얼 모드로 가 있는지 알고 모드를 조정하는 사이,
추락 사고 나던 날 순간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던 불길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카메라를 리셋 시키고 A-모드에 놓고 셧터를 누르는 순가,
자일을 사리던 재호가 전방낙방으로 바위 아래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릿지 구간 중 바람이 심한 곳으로 특히나 5월 초 순간 강풍은 몸을 날릴 정도.
재호가 유도의 전방낙법 하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구르자,
용호가 팔을 뻗쳐 잡는 듯 하다 놓쳤다.
카메라를 놓고 달려갔다.
재호의 오른 팔목을 잡았다
위쪽 사진 좌측에 나 있는 소나무 가지 위로 등으로 떨어졌고,
하늘을 보고 있는 자세로 잽싸게 재호의 손목이 키작은 소나무의 줄기를 부여잡고 있다.
키작은 소나무는 재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차 추락으로 이어졌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래에도 키작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기는 했지만 사고로 이어지려면,
수십길 아래 바위 절벽으로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재호의 몸을 추스리는 사이,
광경을 고스라니 목격한 두 친구가 사고 트라우마로 부들부들 떤다.
하강 후 장비를 챙기던 한신이가 크게 웃는다.
일행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럿지효과인 듯 하다.
오래 전 이 구간에서 해빙기의 질척한 땅을 밟기 싫다고,
바위 위를 폴착폴착 뛰던 후배가 넘어지면서 구르는 사고가 있었다.
천만 다행히도 바위와 바위 사이 구르던 몸이 가로 걸려 추락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 세로로 굴러갔다면 높이를 알 수 없는 절벽으로 떨어저 두번 다시 후배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한신이가 선등, 용호와 재헌이를 안자일렌을 하고 출발.
마음을 진정시킨 재호가 응급처치키를 꺼내 상처 소독과 연고를 바르고, 거즈로 상처를 보호한다.
사고 뒤 끝에 시간이 지체되는 듯 싶어,
진행시간과 초보산행친구를 신경쓰다, 혼자 치료하는 재호를 도와주지 못했다.
글을 쓰는 중에서야 ,
소나무 가지에 무릅이 찍힌 큰 부상이었는데 치료를 돕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이 든다.
안전사고의 황당함에 놀래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듯 하다.
원효봉 오름길에 행동식을 먹기는 했지만, 점심 때가 지나 모두들 허기질 시간.
피아노 바위 지나 바람이 잦아지는 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일행을 달래고 진행한다.
피아노 바위를 하강하는 이변.
우측의 양호한 홀드와 스탠스를 이용해 클라이밍다운해도 되는 곳이지만,
높이가 있어 안전을 위해 하강기를 이용한 하강을 하기로 한다.
재호와 한신이 모두 30년이 넘은 클라이머,
위치에 서면 확보부터 보는 것이 오랜 습관인 탓에 진행이 다소 느리다.
확보를 보는 이유는 딱 하나, 만에 하나 있을 추락을 방지하는 것이다.
바윗길이 초행인 이변도 확보줄을 당겨야 할 만큼 실수가 없었다.
책바위를 넘어서 자일을 사리는 동안에 일어난 안전사고도 예외일 수 없다.
확보는 자기 안전을 보험 들어 놓는 것이다.
' 아! 확보 없이 살아 온 인생 중 혼자 자빠져 일어나지 못해 상처 받고 방황하던 세월이 얼마인가. '
확보에 대한 생각 끝에 인생에 있어 확보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노련한 클라이머 둘이 알아서 챙겨 줄까마는,
뒤에 올라온 다른 팀 일행이 오지랖도 넓게 끼어들어서 감놔라 대추놔라 쓸데없는 참견이다.
안그래도 초보하강에 긴장해서 정신이 없는데,
아줌마 까지 거들며 썬텐로션이 하얗게 떴다며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신경을 여간 거스리는게 아니다.
바위 아래서 올려다 보다 한소리 안할 수 없다.
" 어이 아저씨 입 다물고 가만있어. 안그래도 바람 불어서 정신없는데 왜 당신까지 설쳐되고 난리야."
아래에서 올라오는 거친 목소리에 일행 셋이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게 냅두자는 둥 어짜자는 둥
뒷소리를 남기고 돌아선다.
하여튼 보면 산이고 어디고, 도움도 안되면서 한 목소리 높혀 보려는 싸가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사히 하강을 완료하고 인근 쉼터바위에서 늦은 점심을 갖는다.
시간 상으로는 만경대 초입에는 이르렀어야 할 시각이지만,
구간 마다 확보를 보느라 자일 사리고, 장비 챙기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공휴일임에도 장비검사가 철저해서인지 코스에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런 기회도 쉽지 않은데, 말바위 전,후 구간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 먹겠다.
책바위 지나 생각지 못한 안전사고도 있었던 터라
염초릿지의 백미인 말바위 구간을 생략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쉼터바위 지나 무너진 성곽에서 하산을 결정.
수량이 풍부한 북한산성 계곡에서 뒤늦게 만발한 산벚꽃을 배경으로 친구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 생맥주 한잔이 그립다.
북한산성 상가 한 쪽에 자리한 호프하우스에서 콩가루로 만든 사리가 일품인
매콤새콤한 골뱅이와 생맥주로 산행 뒷풀이.
예쁘장하게 생긴 여사장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같은 학번.
여사장의 외모 만큼이나 음식맛도 깔끔하고 정갈하게 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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