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SOUL TRAIN

신항저수지 황혼에서 새벽까지

오체투지해무 2009. 5. 12. 05:32

분당터미널에서 안성,일죽, 음성을 거쳐 괴산에 자리 잡은 신항저수지에 도착.

고속도로를 타면 더 빨리 왔을 길을 지도 한 번 보지 않고, 네비게이션의 도움도 없이 국도와 지방도, 군도의 한적한 길로 돌아왔다.

운전석에 앉지 않고, 길 시작에서 끝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감상한다.

 

   " 지금이 여행 다니기 가장 좋은 계절이야. 조금 지나면 녹음이 짙어지고, 이렇다할 풍경이 있지 않는 한 권태로워 질 수 있지."

   " 그래, 연초록 잎이 바람에 팔랑이고, 새순이 돋는 침엽수림과 활엽수림, 가는 곳마다 꽃피 피어나고 여행가기 최고의 계절이지."

   " 해마다 5월과 10월에는 일주일에서 십여일 정도 촬영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높다란 저수지 방죽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저수지로 들어서자 마음에 쏙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꼭 20 여년 만의 낚시.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따라 나섰던 기억이 떠오른다.

낚시를 따라 나서는 주목적은 아버지가 후라이팬에 구워주는 스팸을 얻어 먹는 일.

당시 남들은 도시락 반찬으로 잘도 싸오던 소시지를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단 한번도 집에서 해주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낚시를 따라 나서면 반찬하기 귀찮은 아버지는 스팸 한조각 구워 김치와 함께 밥 한끼 때우는 것으로,

낚시터에서의 식사를 마쳤다.

 

그 때 먹은 스팸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에 반해 훗날 바이크 전국투어를 계획하면서 스팸은 투어 중 반찬 일순위.

 

조용한 낚시터 주변환경과 함께 주차공간과 비박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넉넉하다.

 

 

 

 

20 여년 만의 낚시.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에게서 낚시를 배운 친구의 조력은 나와 비교 할 수 없다.

자리를 봐주고, 받침대를 설치하고, 수초 구멍을 찾아 찌 높이를 맞춰 주는 일까지 일사분란하게 해준다.

 

 

 

바로 옆자리에 좌대를 만든 친구 김태휘가 수초 구멍을 찾아 찌를 맞춘다.

 

20 년 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이 낚시 용품들이 좋아졌다.

받침대 설치대와 떡밥을 대신하는 글루틴이라는 밑밥까지..

찌에 고무를 달아 쓰던 케미도 아예 찌에 끼울수 있게 어셈블리 스타일로 제작되어 나온다.

카바이트로 밤을 밝히던 20 년 전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낚시터 주변 환경 오염의 주범, 카바이트.

밤이면 상대방 카바이트 불빛에 찌가 보이지 않아, 저수지 반대편 사람과 욕설을 주고 받은 경험담 한번 쯤은 다 있다.

 

태휘가 오랜동안 몸담고 있는 낚시 동호회 '붕어마을'의 회원들.

역사 있는 인터넷 동호회 답게 형님, 아우 하며 한가족 처럼 지내는 것이 정감이 넘쳐 난다.

소수양조장에서 사 온 막걸리부터 그 맛을 보느라 따라마시다, 술판으로 이어진다.

 

 

해는 떨어지고, 동호회 회원들과 적당히 떨어 진 곳에 낚시대를 펼쳐 한적한 시간을 갖는다.

해가 딱 떨어지니 기온은 급강하.

구스다운 자켓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태휘의 차안에 있던 군용 파커를 입으니 그제야 견딜만 하다.

 

태휘는 세대의 낚시대를, 나는 한대의 낚시대를 드리웠다.

어두워지자 입질 시작이지만,

전형적인 잔챙이들의 입질이다.

 

수초가 많은 곳이라 지름 약 15센티 바깥으로 찌가 떨어지면 여지 없이 수초 위에 뜬다.

20 년 만에 낚시이다 보니, 떡밥이 떨어지기 일수이고, 포인트에 정확히 띄우지를 못한다.

수초에 걸린 낚시대가 튕겨져 올라 입고 있는 옷에 꿰어지기도 한다.

 

몇 번의 입질에 잔챙이 몇마리를 걷어 올리다 수초에 걸려 떨어지고는 한다.

떡밥을 달며 바늘을 살펴보니 미늘이 없다.

 

어쩐지 딸려오다 자주 떨어진다 했더니  미늘 없는 낚시바늘이다.

그제야 태휘가 제대로 된 낚시꾼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외봉에 민바늘...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다.

 

세월을 던지고,세월을 낚고, 나를 던지고, 나를 건져 올리는 것이다.

 

 

 

12시를 넘겨 차 안에 침낭을 덮고 잠을 잤다.

배낭에 침낭과 침낭커버, 메트레스를 챙겨, 밤하늘을 보며 잠들고 싶었지만,

400그램 침낭이라 저수지의 추위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몇 년 째 선반에서 묵고 있는 1,600그램 구스다운침낭이 간절하다.

 

불편한 가운데에도 이것저것 잠자리를 돌봐주며 태휘는 동호회 회원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잠이 들었다.

새벽녘 태휘가 차 안에 들어와 부시럭 거리는 소리를 잠깐 듣고,

한참을 자다 요의를 느껴 깨어보니 동녘이 밝아온다.

 

 

저수지에서의 일출.

눈가는 피로로 축쳐지고, 숙취로 인해 속은 쓰리지만, 머리는 깨끗하게 비워져 맑다.

 

 

 

 

붉은 기운을 보기 시작한지 약 1시간 가까이를 기다려 저수지 한 쪽 야산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본다.

 

 

음성 일대 밭에 심어 놓은 담배.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꽃, 누런 갈대가 작년의 세월을 이야기 해준다.

신기하게도 5월의 신록에도 풀밭에는 작년의 갈대와 잡풀들이 누런 색을 띠고 남아있다.

어느 순간 누런 색이 사라지고 그야말로 온통 초록색이 되고 마는데,

그 누런 작년의 풀들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일까?

이 의문이 든것은 3년 전 쯤,

한순간 작년의 누런 풀들은 사라진다.

 

 

 

해가 떠오르자 저수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유난히 잔챙이의 입질이 많은 신항지.

월척의 꿈을 안은 조사는 어신을 서서 기다린다.

 

 

이윽고 조사는 낚시대를 거둔다.

 

 

 

연초록 봄빛이 수면 위에 드리워지고,

수초 사이 물고기들이 영양분을 뜯어 먹는 소리가 뽀각뽀각 들려오고,

새끼 붕어들이 수면 위에 뽀얗게 떠올라 뻐끔거린다.

 

저수지의 잠수왕 논병아리가 수초 사이를 헤엄치다 먹잇감을 향해 한참이나 물속을 헤메다 수면 위에 떠오른다.

 

 

해가 떠오르고 30분, 어둠에 묻혀 있던 저수지는 그 신비함을 벗고 쌩얼을 들어낸다.

 

 

 

방죽에서 바라 본 신항저수지 전경.

 

 

친구 덕분에 우연치 않게 따라 나선 이십년 만의 낚시.

비록 세치를 넘지 못하는 붕어들이지만, 손에 비린내를 묻힐 만큼 손 맛을 봤다.

민바늘을 쓰는 조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친구가 그 바늘을 쓰는지는 처음 알았다.

미늘이 없으니 정확이 입 위에 꿰어져 나온 붕어들을 놓아주어도,

아프지 않고 금방 바늘로 인한 상처가 나아지리라.

 

꼬박 24시간을 같이 한 초등학교 친구 태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