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
몇 번의 전주 여행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계절에 여행의 출발점을 전주로 잡은 것은
이곳에 새벽강이라는 선술집에 대한 정보를 알고 나서이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은 꽤 오래 전 부터 나와 인연이 있던 곳.
89년이 그러했고, 99년이 그러했다.
어떤 기억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히 내 과거의 한 구석에서 아이덴티티를 잊지않게 하기 위해
그 존재 가치를 알려오기도 한다.
한옥마을과 서점거리 사이의 오래된 건물 사이에 직관적으로 느끼지는 공간이 있었다.
이 곳에 대학로의 틈이나, 신촌의 무진기행 같은 술집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니 분명 있는데 내가 알지 못할 뿐이리라고 기감이 얘기해준다.
이 년 전 한옥마을 찾았을 때 분위기는 그럴듯한 술집에 찾는 손님이나 주인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 대해 전해 듣게 됐다.
멀리 해남의 조선생도 그곳을 알고 있다면 내가 찾던 바로 그런 곳이다.
신촌의 무진기행이 없어지고 그런 곳에 목말라했었다.
이쪽 테이블, 저쪽 테이블 구분없이 기타를 건네주며 노래를 청해듣고, 술과 이야기를 나눠갖고...
웹서핑 중 나윤선이 전주 공연을 왔다 이곳 새벽강에서 뒷풀이를 가진 컨텐츠를 접하게 됐다.
나윤선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다니...
여행지로서의 전주가 아니고, 술을 마시기 위해 전주에 가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새벽강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 했을 때의 기억이
작년 5월 쯤 해남 조선생과 동대문에서 양꼬치오 고량주를 마시다 전해들은 새벽강이야기를 듣고서이다.
그리고도 8개월이었으니, 자그마한 술집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겠는가.
허름한 건물의 외관을 바라보며 일말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물청소가 이제 막 끝난 도끼다시로 되어 있는 계단을 오르면서, 나윤선이 이 계단을 올랐단 말이지
하는 생각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술집 안은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새벽강이라는 술집에 대한 소문을 듣기 전, 한옥마을과 서점거리를 오가며 찾았던 바로 그런 분위기.
단촐한 식탁, 주인과 손님 구별이 없는 서빙체제, 지역 예술인들의 손때 묻은 작품, 기타와 이런 저런 악기들.
스틸선이 들떠 손끝을 파고드는 음정 불안한 기타를 잡고 몇곡 불렀다.
관심없이 대하던 맞은 편 테이블의 사람들에서 반응이 온다.
" 나이들어 보이는데 목소리는 꽤 어리네. 특이한 목소리를 가졌네."
스스로도 첫음이 나갈때 좋은 와인잔 부딪는 소리처럼 쨍~하는 소리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성감을 잡아낸다.
'음악하는 사람이겠구나'
지판과 기타선이 떠 있고 튜닝이 되지 않아 소리는 뮤트되거나 불안하다.
나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려고 꺼놓았던 음악의 볼륨을 올려놓자, 기타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 나윤선 CD있으면 아무 앨범이나 들려주세요."
먼저 신청한곡이 있으니 끝나면 들려주겠단다.
그사이 맞은편의 사내 중 한명이 기타를 잡고 깐소네를 열창한다.
한때 배워 보려했던 곡들도 있고 생소한 곡들도 있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음색이 아마츄어는 아니다.
건너다 보이기 좋게 방향을 바꿔 앉자 그제야 사내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손끝이 가늘고 고운 여자가 술을 따라준다.
징이 올리고, 찾아 듣기 힘든 목소리이 주인공들이 술에 취해, 흥에 겨워 노래가 이어진다.
맥주잔을 건네고, 맥주잔을 건네받고... 그렇게 낯모르는 이들과 여흥으로 하나가 된다.
밤새라도 이어질것 같던 여흥의 자리는 간단한 정리와 함께 끝이 나고 술집의 공기 사이로
나윤선의 스캣송이 흐른다.
' 정말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 잘했어. 잘했다.'
그날 밤 나는 얼마만의 숙면인지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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