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世上萬思

남의 허물

오체투지해무 2008. 2. 28. 14:37

수락산 지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다.

다양한 계층에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들어난 옷차림에서 나름대로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본다.

 

한때 즐거웠던 사람들이나 이제는 제각각 갈 길을 가는 사람들.

그래도 가는 세월이 아쉬워 어찌하고 사나 싶어 가끔 그렇게 얼굴 한번 보는 사람들.

친목모임이 그러하듯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참여도는 해가 갈 수록 줄어든다.

 

한때는 난다긴다 했지만 지금은 서울 변두리 자동차 영업소장을 맡고 있는 지인.

풍상에 깍여 많이 찌그러졌지만, 풍체나 안광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지금도 장난이 아니다.

 

식사시간을 조금 지나 들어오면서 먼저 와 있던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게 요란하다.

내 차례가 되어 악수를 건네며 예의 안부를 묻는 그의 이 사이에는 상추인지 파인지  야채가 끼여 있다.

들어오자마자 인사부터 나눴으니, 음식을 들을 시간은 없었을테고

점심식사 때 낀 이빨 사이 야채가 아직도 있단말인가.

혹은 오후 간식이라도 들면서 그때 깜빡하고  음식물을 제거하지 못한걸까.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나눈 시간은 길어야 20여 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사이에 끼인 음식물에 대한 추리를 서너껀도 더 했던것 같다.

 

' 웃으면서 이 사이에 뭐가 끼어있네요.

  아냐 아냐 무안해 할꺼야. 점심 때 부터 그랬다면 인사가 만사인 사람인데... 얼마나 쪽팔리겠어.

  음식을 먹다보면 빠지거나, 누군가가 얘기 해주겠지.

  그나저나 언제부터 이 사이에 음식물이 끼인채 저러고 다녔을까.'

 

긴히 이야기를 나눠야 될 사람이 있는 자리도 아니어서 내 눈길은 이 사이 야채의 뒤를 따랐다.

아직도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은 절반도 더 되는 듯.

인사를 나누는 몇몇 중에는 그렇게 봐서인지 모르지만

인사 도중 눈길이 잠깐 '이 사이 야채'에 머무는 듯 보이기도 했고,

그들 중 두셋은 뭔가 이야기 해주려다 마는 것 같았다.

 

배포가 용가리통뼈에 태평양 같은 사람이라면 그까짓것 쯤이야 신경도 안쓰겠지만.

사람이라는게 아무것도 아닌 이 사이 낀 야채 한점 때문에 추접스럽게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

한때는 전설이었던 사람이었는데... 한참 찌그러져 차를 팔러 모임에 나오는 듯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안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 가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이 사이에 음식이 끼셨네요' 할까?

아냐 진작에 아까 인사 나눌때 했어야지.

딱히 마주칠 일도 없는데 �아가서 그런다는 것도 우습잖아.

 

부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덜어내 먹고, 자리를 바꿔 가며 술잔이 오가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사이로 시큰둥한 웃음 몇차례 날리다가 '이사이야채'에게 또 눈길이 갔다.

이런저런 음식에 음료를 마셨기 때문에 빠져 나갔으리라 생각했는데 마치 문신이라도 한 듯 그자리 그대로.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서서 예전 입심을 과시하며 좌중을 사로잡는 그의 말솜씨와는 다르게

몇몇 사람들은 대화 내용 보다 ' 이사이야채 '에 더 신경이 쓰이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면 누군가 이야기 해줄만도 한데 아무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다.

 

입이 움찔움찔.

' 그...저... 이 사이에 음식물이 끼인 것 같은데......'

혀끝까지 나오다가 참았다. 나 말고 누군가가 이야기 할꺼야.

괜히 나서서 이야기 했다가 무안 줄 필요 없어.

 

비슷한 일로 십년 전 쯤 일박이일로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다.

이십키로 배낭을 메고도 날아다닐 무렵이라 배낭에는 먹을 것도 많았다.

청바지에 등산화 한켤레 신고 딸랑이 배낭 메고,

건장한 체력 하나 믿고 건빵에 생수 통 하나 들고 지리산 종주 하겠다는 갓 대학 졸업한 OL과 함께 하게 되었다.

산은 모르지만 체력 하나는 좋아서 긴 오르막을 오르는데도 호흡이 엉키지 않고 고루다.

중학교 시절부터 검도를 해왔단다.

세석에서 하루 자고 천왕봉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 늦은 점심을 송어회로 먹게 되었다.

하산 길 계곡에서 세수를 했는지 머리결에는 물기가 남아있고, 코에는 풀다만 콧물이 살짝 말라 붙어 있다.

보통 때면 수시로 거울을 볼만큼 빠지지 않는 미모의 아가씨인데 체력이 쇄진해지자

미처 그것 까지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송어회에 소주 한잔 건네며 ' 아가씨 코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휴지를 건네며 ' 흥~' 했더니 휴지로 쓱 딱다 묻어난 코딱지를 보더니 얼굴이 홍당무가 되버린다.

' 아 차라리 모른척 할껄.'

생기발랄하게 낯선 남자한테 말도 잘 건네던 아가씨가 시종일관 침묵이다.

서울 귀경길의 산악회 버스 빈자리를 얻어 타고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안건넨다.

피곤해서이리라 생각하지만, 아마 자기의 흉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 든 실망으로 마음을 닫은 듯 하다.

물어 볼 수도 없는 일.

그후로 어떡해 연락이 닿아 서울에서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리산 종주를 도와준 감사의 표시에서이지.

산행 내내 발랄했던 모습은 아니었고, 마치 자신의 치부는 잊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길지 않은 술자리 내내 있었다면

나만의 억측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일이 있고 이와 비슷한 일이 있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지만

오지랖 넓은 내 성격 탓에 비슷한 일이 그 이후에도 몇번 있었다.

 

아까 얘기로 돌아가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다 또 그 ' 이사이야채'에게 눈길이 머물었다.

먹을 만큼 먹었는지 과일을 먹다 손에 든 이쑤시게로 이 사이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순간 이쑤시게 끝에 꽂혀 나오는 파로 보이는 야채줄기.

눈이 마주칠까 얼른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한번 그의 표정을 봤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잠깐 얼굴이 어두워졌다,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에 끼인 이물질 정도야 당사자나 말을 나누는 상대자나 금방 잊고 말것들이지만,

내 입으로 이 사이에 낀 이물질에 대해 당사자 한테 이야기 했다면

그 즉시 시정이야 됐겠지만, 그 사람은 나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될것이고,

세월이 지나면 반감을 갖게 된 이유도 잊은 채 나를 멀리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정없이 상대의 흉허물을 늘어놓는 것은 상대만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그 화도 스스로에게 돌아온 다는 것이다.

상대가 불쾌하지 않을 만큼 말을 건네는 센스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렇게 이리저리 재다가는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가 되고 만다.

이 사람들과의 인연의 끝도 멀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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