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사진관/전람회의그림

이일섭 사진전 <더딘 대화, 경주>

오체투지해무 2010. 9. 29. 13:44

 

정일근 시인의 사진 소개 글에 등장하는 돌을 밀고 나오는 노승과 까치밥 감나무.

 

 

 

다른 듯, 닮은 사진. 박미경 관장은 이번 사진전을 부부와 같다는 함축적인 표현을 했다.

 

 

이일섭 사진 ‘경주’에 부쳐

신라로 돌아가는 통섭(通涉)

글 / 정일근 시인 · 경남대 교수

경주(慶州)는 걷는 곳이다. 걸어야 보이는 곳이다. 걷지 않고 경주를 본다면 그건 유물과 유적의 기념사진일 뿐이다.

많은 사진가들이 경주를 보려고 했다. 경주의 그늘 뒤에 퇴적되어버린 신라(新羅)를 보려했다. 신라는 사라진 제국이다. 사라진 제국을 보려는 것은 사람의 욕심이다. 욕심이 볼 수 있는 것은 허망뿐이다. 허망을 경주라 말하지 마라. 허망을 신라라 이름 하지 마라. 허망 앞에서 더 이상 기념사진을 찍지 마라.

사진가 이일섭은 경주에서 오랜 시간 발로 걸었다. 지난 해 한 권의 사진집으로 경주를 기록한 그가 다시 경주를 걷는다. 보라, 돌부처의 발이 그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 감나무는 까치밥을 남기고, 경주 남산(慶州南山) 부처바위 속의 노승(老僧)이 돌을 밀고 나온다.

내가 오래 마음 주는 것은 저 경주 남산 용장골 용장사(茸長寺) 터 3층 돌탑이다. 탑이 흔들리며 손을 흔든다. 탑이 살아 있다! 탑이 살아있기에 경주가 살아있고 신라가 살아 있다. 내 일찍이 오르면 오를수록 높아지는 산이,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깊어지는 산이 경주 남산이라 했는데 살아있는 탑을 만나며 무릎을 친다.

경주에서는 두 발이 가장 밝은 눈이며 신라를 보는 가장 맑은 렌즈다. 그것이 신라로 돌아가는 통섭(通涉)이다. 발로 경주를 읽어낸 이일섭의 젊은 사진이 오롯이 그러하다.

전시기간 2010-09-07 ~ 20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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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화랑가는 대부분이 휴관일이다. 류가헌 또한 일정대로라면 휴관하고 있었어야 했다.

뜰에 들어선 순간 갤러리가 열려 있고, 전시 작가와의 지인들인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그 사이에 끼어 관람과 함께 박미경 관장의 도슨트를 들을 수 있었다.

 

두 곳의 사진을 붙혀 놓은 사진 전시 형태는 낯선것은 아니다.

닮은 듯, 다른 두곳의 사진을 한 액자에 전시함으로써 두 사진의 연관성을 유추해 내려고 하는 심리가 발동한다.

그러다 보니 사진에 머무는 눈길이 어두운 해변가를 밝히는 서치라이트가 된다.

 

박관장은 한 액자의 두 사진은 마치 부부와 같다고 한다.

분명히 다른 곳의 전혀 다른 사물과 풍경인데 닮아 있다는 것이다.

형광등의 불을 밝히듯 그 말을 듣는 순간 깜빡하고 전시 사진이 설명 전 과 다른 느낌으로 들어온다.

 

류가헌의 오미자냉차를 마셨어야 했다.

박관장과 통성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번째의 대화지만,

만날때 마다 충만감을 주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