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가 되어서 인지, 운동을 했던 아는 사람들도 기득권 세력에 편승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많이 무디어 졌고, 성향 자체도 보수로 돌아 앉은 그들.
평등을 지향하고, 타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줄지 알고, 지구의 환경과 미래를 걱정하고 자그나마 실천해 나가는 것을 그치지 않는 이들이지만 정권을 보는 시각은 좌편향에서 우편향으로 변화한 것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박통이나 5공, 6공때 한자리를 해먹고, 여태 그것으로 잘먹고 잘사는 브루조아야 그렇다 치지만,
작은 상공인 출신이나, 군사정권과 날치기 문민정권에 혜택이라고는 받아 보지 못한 계층 중에
김대중은 빨갱이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노무현은 빨갱이로 만들지 못한것에 원통한 듯 대하는 이들이 있다.
노무현은 이상주의였을까?
'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 "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웹서핑 중 대하게 된 글이다.
글씨체가 워낙 작아 블러그에 퍼 온 뒤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들이 말하는 " 우리는 왜 노무현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http://blog.hani.co.kr/j1chju69/9570 <- 에서 퍼온 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증오'에 가까운 싫은 감정을 표출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과도 관련이 있고, 또한 의식적으로라도 남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점에 연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에리히 프롬 (E. Fromm)은 나찌스 치하에 탈출하여 미국과 멕시코에 정착하여 살았던 사회심리학자로, 자신의 조국인 독일이 당시의 기준으로도 대단히 민주적인 정부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강권 독재국가인 나찌스의 제3제국으로 돌변하는 상황을 똑똑히 목격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도대체 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내동댕이치고 히틀러라는 '독재자'에게 매달리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밀접한 권위적 조직체에 개개인이 매달려 있던 중세인들이 근대화가 되면서 '개인'이 되어야만 하였던 상황에 주목하였습니다.
어린아이는 개체화 (individualization)의 과정을 통한 완전한 개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머니나 가족들과 마치 '탯줄을 끊지 않은' 듯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이는 전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권위적 조직체에 자신을 매어 놓음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그러나 근대화를 통해서 인간은 '개인'이 되어야만 하였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하게 되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나가듯이, 근대인들에게는 이런 심리적인 과정이 강제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독감'과 '무력감'이 증대되고 이를 원만히 극복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의 개체성을 외부의 강한 힘에 던짐으로써 이를 회피하려는 충동이 생기게 됩니다. 마치 어린이들 일부가 '피터팬 신드롬'에 몸을 던져서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양상입니다.
한중일의 동양삼국은 일찌기 근대화를 완성한 서구와는 달리 사회심층부에 이런 '유아적인 문제점'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도 자식이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잡은 다음에도 뒷바라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심리적으로 부모나 가족들 혹은 성장한 다음에는 학연집단, 출신지역집단, 직역집단 등의 강한 권위에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을 던짐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동양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이런 사회적인 측면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도 공산독재를 행하고 있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파 정치인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국회의원직을 세습하는 일본도, 수상 자리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싱가포르까지 결코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결정적으로 동양국가들의 국민들은 결코 개체화된 권위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탈시킨 '개인'이 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곤란 혹은 정치적인 혼란을 맞게 되면 언제든지 강한 권위에 자신들의 자유를 팔아넘길 준비가 되었다는 점이 문제일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런 문제점일 깨달은 이들이 세운 정부였습니다. 군사독재정부와 싸우던 이들은 그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레 '자유'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윗세대와 절연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체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근대인들이 중세시대 사회적인 혹은 혈연적인 권위의 속박에서 자신을 해방하면서 심리적으로도 강한 '개인'이 되었던 것과 같은 과정이었지요. 흔히들 386세대를 경멸하는 분위기가 이 세상에 만연하였는데, 이는 아직도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를 찾은 이들에 대해 보내는 '질투'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자유로울 때에만 사회의 모순을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자유와 진리는 이렇듯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당연히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들이 만든 이 정부는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가진 모순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서 그들이 이 사회의 지배층이 되어버린 사실, 독재정권에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던 그 사람들이 지금도 사람들을 재판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점, 영남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호남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야할 경제적 혜택을 박탈하고 좋은 자리를 독점하연 온 점, 온갖 뒷돈이 오가며 이권을 주고받던 공무원들과 기업인들간의 유착, 담합과 뒷돈으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을 가로채어 잇속을 챙기던 기업인들 등, 이성적이 못한 권위가 사람들을 속박하는 것을 시정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혈연, 학연, 지역 등 집단에 자신을 기대어서 자신들의 고독감과 무력감을 달래려고 하는 유아적인 심리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지적'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순'에 대한 지적과 같았습니다. 실재로도 여권 내에서조차 자신의 조상이 친일파였고, 자신의 가족들이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고, 자기 자신이 과거에 부정부패에 몸을 담궜던 일들이 비일비재하였으니 말입니다. 이른바 사회적인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입니다.
더군다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386세대들조차도 중년이 되고 자신의 가족을 꾸리고 직역집단에 들어가면서 과거에 누렸던 '자유'를 던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지배자가 된 이상 피지배자에게 '자유'를 주면 싫것 부려먹을 수 없게 되거든요. 그들도 가끔 자신들이 잠시 가졌던 '자유'를 그리워하기는 하겠지만, 자신들의 후세를 조정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선배들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권위에 기대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치 독일국민들이 바이마르 공화국하의 자유를 버리고 나치스의 독재국가를 선택하였듯이 일단 한 번 쟁취한 자유를 버리고 '권위'를 통해서 자신의 편안함을 도모한 것입니다. 사실 '자유'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댓가를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자유로부터 도피한 것이고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배들보다도 더 철저하게 부패하고 모순에 찬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치스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들 잘 기억하시지요?
이와 비슷한 일은 북송(北宋)대의 신종(神宗)조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 송(宋)은 5대 10국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화폐를 통한 중세 자본주의경제를 실현한 상태였습니다. 당(唐)대까지와는 달리 엄청난 양의 화폐가 국가에 의하여 강제로 유통되면서 거대한 중국 전체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진 최초의 시기였지요. 그러나 이런 상태가100여년간 지속되면서 제도의 문제점도 드러났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요역(?役)을 국민들에게 지웠던 점이 가장 큰 모순이었습니다. 즉, 국가에서 필요한 물품을 징수해서 중앙에 수송하는 일까지 모두 일반국민들에게 의무로 부과하였는데, 단순히 징수만 아니라 수송까지 담당하게 하다보니 생산자들을 몰락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던 것이지요. 이 이외에도 화폐경제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빈부의 격차문제, 농업경제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풍흉(豊凶)의 교대에 의한 농산물 가격문제 등도 심각하였습니다. 신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왕안석(王安石)을 등용하여서 이른바 '신법(新法)'이라 일컬어지는 '균수법(均輸法)', '청묘법(靑苗法)', '면행법(勉行法)', '모역법(募役法)' 등을 잇달아 시행하였습니다. 당시의 경제적인 모순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이런 시도는 분명히 올바른 조치였고, 북송을 지배하던 관리들의 눈에도 이는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일반 민중들이야 지적인 수준이 안되니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적어도 과거를 통해서 정계에 진출한 지식인들인 관리들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한기(韓琦), 소동파(蘇東坡), 사마광(司馬光) 등 이른바 구법당(舊法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신법을 성토하였습니다. 이들은 '조법(祖法)을 파괴한다'는 논리로, 한마디로 과거의 권위에 복종하여야만 한다는 논리로 그 당시의 모순에서 눈을 돌린 것입니다. 신종이 재위 15년 만에 죽고 섭정으로 선인태후(宣人太后)가 철종조에 집권하게 되면서 신법은 폐기됩니다. 그러나 신법을 추진한 쪽에서도 반격을 가해서 결국에는 향휴 30년에 걸쳐서 신법당과 구법당이 번갈아서 업치락 뒷치락하게 되지요. 어떤 조치든지 적어도 30년은 안정적으로 시행을 하여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법입니다. 당시에는 경기순환의 속도고 현대 사회에 비하여 현저하게 느린 중세였는데, 고작 8년여의 시행만으로 경제적인 모순이 해결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만다 법 시행이 뒤집어지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신법(新法)은 효과를 보기는커녕 사회적인 분열만 부추긴 꼴이 되어버렸지요. 결과는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라는 금(金)나라의 북송침략으로 나타났습니다. 북송은 망하고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나서 남송(南宋)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회모순에 대한 지적은 당대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상당한 지식인들에게 조차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를 어떤 형태가 되었든 수용하여서 극복할 때에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모순이 없다고 눈을 감아 버린다고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 부역하였던 이들의 후손들이 호의호식하면서 건재해 있는 점을 모든 이들이 잘 알고들 있는데, 그들에게 마음 속 깊이 복종하겠습니까?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이들과 그 자손들이 지금도 사람들을 수사하고 재판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조치에 수긍할까요? 호남인들도 적어도 이 나라의 30%는 되는데 그들을 천시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다면 그들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습니까? 서로 담합하여서 가격을 조절하고 뒷돈을 주고받아서 치부한 기업인들을 과연 사람들이 존경할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눈에 띄는 부정부패를 벌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 주고받았다는 것이 아녀자들 옷로비나 신정아 사건에서 보이듯 혼외애정행각들 아니었습니까?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권위에 복종하여서 자유를 팔아넘기고 그 댓가로 안락을 구하던 이들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그들을 공격하지도, 그들에게 손해가 나는 정책을 취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떠올려주는 이들이 집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껄끄러웠던 것이지요. 이런 무의식적인 불편함, 혹은 언제 자신이 행한 부정이 들통나고 자신의 비합리적인 권위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든 것은 노무현때문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의 형태로 표출된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비가 많이 와도 노무현 때문, 장사가 안되도 노무현 때문, 태풍이 와도 노무현 때문, 석유가 새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그렇게 매도하지 않았나요?
자, 이제 긴 글의 매듭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두 편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특히 사람들이 내놓고 하는 비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점, 즉 자신들이 아직 완전한 개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고, 그래서 고독감과 무력감을 달래기 위해서 비합리적인 권위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자꾸 깨닫게 해주는 존재인 김대중, 노무현 같은 자유주의 우파 정부가 싫었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린아이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 길러내지 못한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성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것은 결코 건전한 사회 (the sane society)가 될 수 없습니다. 지적 수준이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유를 한번이라도 누렸던 이들이라면 제발 정신차리시기를 바랍니다. 자유를 반납하여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유아기적 퇴행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아이들까지도 성장하지 못한 피터팬으로 묶어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요즘 20대들을 보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서량도 부족하고 세상을 보는 눈도 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조차도 없습니다. 이는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입니다. 아이들을 벼랑끝의 경쟁으로만 내몰아서 폭 넓게 독서하고, 토론하고, 생각할 기회를 빼앗아버린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88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점보다 그 모순을 이해하고 극복할 능력을 빼았겼다는 점이 그들의 진정한 불행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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