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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인수봉 고독길

오체투지해무 2010. 5. 4. 15:34

 

 

 

 주말의 인수봉은 코스 차례를 기다리는 클라이머들이 줄을 서는데,

올 들어 최고 더웠다는 기상청의 예보 때문인지,

휴가 기간과 맞물린 탓인지 염려했던 클라이머들이 붐비지 않는다.

 

 

 

 

 

 하루재에서 인수산장으로 향하던 중, 인수봉 전망이 빼어난 곳에서 코스 설명을 들으며 기념사진.

사진 붉은선으로 그려진 곳이 오늘 오를 고독길의 대략적인 개념도이다.

인수봉으로 오르는 가장 쉬운 길로 알려져 있지만,

노련한 선등자의 인도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 한 곳.

국내 산악인들의 로망과도 같은 성지,

인수봉을 오르기 위한 첫발자국을 고독길이라 명명되어진 루트로 발길을 옮긴다.

 

인수봉은 유럽의 클라이머들도 부러워 할 만큼 뛰어난 산세와 다양한 루트를 통한 암벽등반 대상지.

고독길 출발 지점에는 여타의 산악회 회원들이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로프를 사리며 오늘 오를 코스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다.

 

그 중 눈에 띄인 팀은 어린 딸을 동반한 부부 가족 세명.

아버지의 선등과 엄마의 후등에 힘입어 애릿한 딸이 쉽지 않은 바위 코스를 선뜻 선뜻 올라선다.

 

이어 재호가 선등을 하고, 용호가 뒤를 따른다.

도봉산 오봉에서 기초적인 암벽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지만,

실전은 훈련보다 경우의 수가 많은 곳.

훈련 받은 경험을 토대로 응용동작을 구사하며 용호가 어렵게 첫 피치를 오른다.

꼭 십년 만에 오르는 인수 고독길 첫피치.

늘어난 체중을 감안 페이스와 크랙을 이용한 레이백 자세로 오르려다 두번째 스텝에서 슬립.

 

" tension!"

 

너무도 쉬운 곳에서 슬립을 먹고 말았다.

아니 쉽다고 생각한 것은 머리였고,

몸은 마음을 따르지 못했다고 했어야 옳을것이다.

 

레이백 응용 동작과 스탠스를 이용 첫피치 완료.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김정구라.

 

탑을 선 재호의 유연한 몸동작과는 달리,

매 피치마다 어렵지 않은 크럭스를 몸으로 비비며, 어찌어찌 고도를 높여 간다.

 

 

 

인터넷을 통해 몇번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친 우리의 주치의 민원장이 참기름 바위인지 알았던 곳.

하루종일 볕이 들지 않아 바위에는 제법 이끼가 살아있지만, 참기름 바위는 영자 클랙 위에 있다.

때로는 트래버스를 해야 하는 곳에서도 몇번 주춤거리다가도  통과해 나간다.

 

' 몸이 너무 무겁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몸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홀드와 스탠스는 어디를 써야 하는지,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염려했던 민용호보다 내가 죽을 맛이다.

 

 

 

 

어렸을 때 북한산의 모양이 케네디 대통령이 누워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고 했었다.

하이카라 머리 모양을 한 곳,

스핑크스의 높다란 코 모양으로 보이는 부분이 위의 사진 삼각형의 오버행 바위이다.

바위 틈 레이백을 하거나, 우측의 페이스를 통해 영자크랙에 다다르고,

영자 크랙을 통과하면 참기름 바위,

그러면 인수의 정상에 서는 것이다.

 

 

 

레이백으로 페이스를 오른 뒤 침니로 선등하는 재호.

그 뒤를 따르는 용호가 몇 번의 슬립을 먹고 무난히 크럭스를 통과한다.

 

 

 

침니를 빠져 나가기 전 귀바위 오버행 등반 대기중인 타 산악회 회원들이 용호 뒤로 보이고,

우이령 일대  짙푸른 숲이 발 아래 싱그러움을 더해주며 펼쳐저 있다.

 

올들어 최고 더웠다는 이날, 고독길은 인수봉 그늘에 드리워져 있어 산바람과 함께 더위는 날려갔다.

도대체 관리라고는 하지않은 체력은 두피치를 끝내고 바닥이 났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힘들면 하늘이 노랗게 보인 다는 것을 이날 알게 되었다.

잇몸이 시큰거릴 만큼 떨어진 체력저하를 친구들이 알 턱이 없다.

 

귀바위 아래에서 산바람을 씌며 쉬고 있단 한쌍의 중년커플인지 악우인지,

힘겹게 올라오는 나를 보고 아줌마 한 명이 입 빠른 소리를 지껄인다.

 

" 아저씨, 그 몸을 해가지고 올라오기 힘들겠어요."

 

위로라고 내놓는 말이지만, 내용은 야지를 놓는거나 다름 없다.

누구누구님 어쩌고 하는 것이 인터넷 산악동호회에서 온 듯 하다.

 

" 아줌마도 만만치 않은데 뭘..."

 

함께 있던 남자를  흘깃 처다보고,

시건방지게 벌렁 누워 염치 없이 꿰져 나온 뱃살에,

교만과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빛과 대책 없는 욕구불만이 볼따구니에 가득한 아줌마에게

남 얘기 할 것 없다고 댓꾸를 해됐다.

 

쏘아 부치는 짧은 말 한마디에 눈빛이 발끈해진다.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건냈다가, 같이 있던 남자가 슬쩍 시선을 피한다.

한편이라고 편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제대로  한 번 씹어 줬을 것이다.

그제야 양팔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누워 있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황망한 표정으로 꿰어져 나온 허릿살을 추스리는 꼴이 입고 있는 명품 등산의류가 아깝다.

 

 

다리가 풀리고, 동공이 풀릴 지경에 이르렀는데, 쓸데없이 벌어진 시비에 서 있을 기운 마저 없다

홀드를 잡고 트레버스를 하다 침니 자세로 올라서야 하는 곳에서 일어서지도 잡아당기지도 못한다.

 

민탈 슬랩을 이용해서 가도 되고, 침니, 트래버스 해도 가도 되고, 길은 보이는데 몸이 안따라 준다.

어떻게든 올라서야 하는 길.

 

펌핑으로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침니 구간을 올라섰다.

 

 

 

 영자클랙,여자의 성기 모양처럼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

발도 제대로 안들어가고, 얕은 크랙에 양손을 집어넣어 벌리듯 뜯어야 올라가지는 곳.

 확보에 의지해 어렵사리 통과.

 

선등자 확보줄에 가까스로 확보를 보고 나서,

하늘이 또 한 번 노래지는 것을 경험한다. 

 

 

 

 

영자크랙을 통과 한 후 잠시 휴식.

 스핑크스의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귀바위 너머로 상계동 일대 아파트 단지와 수락산,

불암산의 녹음이 눈에 들어온다.

 

 

 

 

 

 

짧지만 알딸딸한 참기름 바위,

화강암의 돌기가 살아있는 듯 한데, 죽죽 미끌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드디어 인수봉 정상.

점심으로 김밥을 먹는 내내 손의 경련이 멈추질 않았다.

몸도 마음도 망가질데로 망가진 상태라는게 여실히 드러나는 날이었다. 

 

점심을 나누며 펌핑이며 체력저하를 이야기 하다 귀바위 아래 아줌마 이야기가 나왔다.

선등한 재호와 용호에게도 길을 가로막고 누워 앉아 싸가지 없는 말을 건네는 것을 참고 지나왔단다.

무슨 정신으로 산에 오는지 가끔 족수 믿고 깝치는 아줌마가 있다.

심지어는 자기 일행 남자와 다른 일행들 간의 시비를 야기시키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터넷산악회가 이것저곳 헤집고 다니며,

북한산, 도봉산 후미진 곳에서 취사를 하지 않나...

예전이면 동대문 캬바레나 떠돌던 대책없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산에 오면서 명품등산의류가 불티나게 팔리고,

세상 아쉬울것이라고는 자기의 욕구를 채워 나가기에 능수능란한 꼴통들.

 

귀바위 아래 아줌마에서 꼴불견 등산백태로,

저질체력으로 방치 해놓은 자신의 태만함,

처음 인수봉으로 올라왔을 때 경험담,

설악과 지리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꿈에 그리던 인수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는 민용호.

기대했던 것 보다 담담하단다.

 

 

 

십년 만에 올라선 인수봉 정상에서 재호와 기념촬영.

수많은 산을 수많은 경우의 수를 두며 다녀봤지만,

 이 날 만큼 힘들었던 산행도 없었던 듯 하다.

 

 

 

 

잠시 인수봉 서면 하강 쪽으로 바라보다, 후면 하강을 결정한다.

뒤에 보이는 것은 백운대 대슬랩과 호랑이굴 코스

 

 

 

 

 

인수 후면 첫피치 하강 완료 후 두번째 피치 하강 준비 중인 김재호.

각종 장비에 피치 마다 자일을 사리고 풀고...

 

 

확보 줄에 의지해 자일을 사린다.

뒤로 보이는 것이 영봉으로 올라서는 숨은벽 릿지.

 

 

 

 

8자 하강기를 자일에 설치하고 있다.

 

 

 

 

인수봉 후면 하강길에서 재호.

이후 하강을 한 번 더 했지만, 실질적인 마지막 하강이다.

60m 자일을 걸고도 만에 하나 있을 사고에 대비해 40m 보조자일을 용호에게 걸어주는 철두철미함을 보고,

재호의 등반에 대해 한결 믿음이 갔다.

 

 

 

 

인수봉 서면 하강 코스를 지나 인수 대슬랩에 선 민용호.

멀리서 보는 인수봉과는 달리, 암벽이 가지고 있는 그 위용에 압도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09년 8월 올들어 최고 더웠던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