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AIN/기분좋은만남

서릿발 같은 순수로 마음 따듯하게 해주는 작가 이외수

오체투지해무 2009. 4. 1. 17:13

 

 

 

 

 

 

 

 

유난히도 물길 깊고, 산길 깊은 46번 국도의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길. 오랜 시간 흠모했던 첫사랑의 애인을 만나게 되는 설레임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설레임은 작가 이외수를 만나게 된다는 것. 내게 있어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던가, 학창시절 데이트 장소의 추억보다는 작가 이외수가 살고 있는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70년대 중반,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접한 글은 마치 서릿발 위를 맨발로 걷는 듯한 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안개. 폐결핵을 앓고 있는 주인공에게 안개는 언제나 치명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안개는 예민한 감수성을 보호해주는 엄폐물 같기도 한 것. 부딪히고 깎이어도, 무뎌지지 않는 지독한 감수성. 강원도에 접어들은 취재여행 내내 봄비 같은 겨울비가 안개를 대신했다.


춘천 교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그의 거처 격외선당. 이미 매스컴을 통해 눈에 익은 곳. 부인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들어서자 2층까지 탁 트인 응접실의 밝은색의 높은 천장으로 대가를 만난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감옥의 철문이 달여있던 방문도 예의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으로 바뀌어 있다.


몇 해 전 선물 받은 달력형태의 시화집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탓에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는지에 대해 물었다.


" 글 쓰기 이전부터 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고등학교 이전이니까. 대부분의 크로키는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그렸어요. 특별히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그려야 하겠다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변에서 잡히는 데로 그리고자 하는 것을 그려보고 싶은 생각에 그렸던 것인데, 특별히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그려야 겠다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요즘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결국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데, 목전의 쾌락을 위해 가기 편한 샛길로 빠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결국 그 길은 자기의 행복을 좀 먹는 길이 되고 말텐데요."


" 외로움, 그거 갈무리 잘하지 못하면 사람 망치는 거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자기연마에 들어가야 외로움 속에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그리는 것인데."


" 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산 속에서 살아왔지.  함양에서 살 때는 지리산이 내 앞마당이었고, 인제에서 보낸 어린시절은 장수대, 봄이고, 가을이고 장수대로 소풍을 갔었어요.(웃음)"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30여분. 명지산에서 야영을 하다 한 텐트 안에서 동시에 네명이 외계인을 목격했었다는 말에 화제는 UFO 목격담에 이르기도 하고, 올해 들어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작품전을 여는 등 바쁜 시간 속에 좋아하는 낚시도 못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에 따라서는 여행을 업으로 삼는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며, 생소한 지명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글을 처음 접한 지 근 25년만의 만남은, 유명작가와의 대화로 영광스럽다는 사사로운 감상보다는, 고갈되어 있던 감성이란 연료탱크에 에너지를 충만한 듯했다.


 

 

거실에서는 도청 관계자들이 접견을 기다린지 두시간여.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 얘기부터 불이 붙더니, 외로움에 대해서에는 목소리에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몇 번의 찻잔을 더 채우고, 부인으로 부터 외부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채근을 더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별인사를 드리는 나에게 " 멀리 나가지는 않겠소, 또 들리시오." 한다.

 


인터넷에 작가 이외수의 홈페이지가 열린 시기는 1998년. 그 이후 작가 개인 홈페이지로서는 국내에서 상위를 기록하고 있는 2백만 방문객 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작가 이외수가 좋아 모인 단체인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만들어졌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홈페이지가 회원제로 운영되는 데에는 인터넷에 횡행하는 뜨고 보자는 식의 무뢰한의 소행이 있었다. 작가 이외수 자신이 몸소 나서 자재를 요청했지만 막무가내. 급기야 홈페이지는 열린 공간에서 잠정적으로 회원가입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회원제로 운영하면서 모임은 더욱 굳건해졌고, 정기적인 행사도 진행하는 등 더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열람 가능하게 운영되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4, 50대에서 10대, 20대 30대 까지, 이외수의 서릿발같은 순수한 감성으로 그려내는 그의 글과 그림은 세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 받고 있다.

 

 

 

 

2003. 11. 춘천 격외선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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