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를 찾은지 세번째 만에 사찰 경내를 제대로 둘러봤다.
보물 161호인 대웅보전의 꽃창살
대웅전의 양식은 맞배지붕이나 사람人자 처럼 전면의 처마가 후면의 그것보다 더 긴게 특색이다.
석탑이 있는 곳에 올라서면 서해안의 바닷물이 들고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39년(선덕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다음 이곳의 지세가 불제자의 삼매정수(三昧精修)에 적당하다고 판단되어 정수사(精修寺)를 창건했다.
1426년(세종 8) 함허(涵虛)가 중창한 다음, 법당 서쪽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절이름을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다. 그뒤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1883년(고종 20) 근훈(根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보물 제161호)·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탱화 7점, 부도, 동종 등이 있다.
정수사에 있는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61호. 1957년 해체·수리 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424년에 창건되고, 1588년(선조 21)에 중창, 1689년(숙종 15)에 6창했음이 확인되었다. 원래 앞면 3칸, 옆면 3칸이었으나 어느 때인가 앞퇴를 덧붙여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보기 드문 평면구조가 되었다. 따라서 건물의 앞쪽과 뒤쪽 공포가 다른데 앞쪽은 2출목으로 외목도리를 받게 하여 1출목의 전형적인 주심포계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뒤쪽은 1출목으로 조선 초기의 주심포 양식을 보여준다. 앞면의 가운데칸에는 꽃살무늬가 장식된 분합문(分閤門)이, 좌우협칸에는 넉살무늬의 4분합문이 달려 있다. 건물 내부의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고,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그 주위의 빗천장은 나중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에 보이는 앞퇴는 개목사 원통전이나 성불사 응진전 등 조선 초기의 건물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