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섹스
신현림
은은한 몸. 은은한 달빛 이불을 깔고 서로 쓰다듬지.
빵 같은 입을 먹어가는 키스.
둥근 바퀴 둥근 달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가 빨대가 되어 시간을 빨아들이는 쾌감.
흐느끼는 안개가 분홍빛 허벅지로 넘쳐가지.
수많은 장례식과 시든 꽃다발과 절박한 나날의 말뚝을 넘어 나비같이
가볍게 날아오르지.
피부 한 장으로 혀와 혀로, 입술과 입술이
하나의 폭포가 되고 꿀같이 흐르는 기쁨.
너를 만나 나도 모르게
빠진 나의 뭔가를 깨닫는 행위.
잡고 싶어도 잡아지지 않는 손과
놓고 싶어도 놓아지지 않는 손이 만드는 하나의 섬.
섬 위로 흰 새떼가 가득 날아오르지.
애정이 있어야 모든 게 잘되어 가는 불안한 육체.
내일은 좀 더 차분하고, 강해지겠지.
외로움을 따뜻이 뎁히며
좁은 삶의 골목길을 잠시 넓혀가겠지.
그래도 아무래도
세상 끝인 것 같아. 지푸라기육체. 몰락을 향해 미끄러지는 이곳.
조금씩 바다로 미끄러지는 몸.
우리밖에 없는 여긴 세상 끝인 것 같아....
2003 10. 충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