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나도 몇 번의 노숙의 경험이 있었으니...
일 년 전, 세영이가 번개 친 날 아침의 일이다.
그 전 날 강남구청 인근에서 친구 다섯이서 가볍게 술을 한잔 걸쳤는데,
그 중 한 친구의 가위바위보 게임 제안.
이미 일차 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로 치사량 가까이 마셨던 터라
될 수 있으면 마시지 않기 위해 게임에 집중을 했음에도
희안하게도 내가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날 깨어보니 압구정동 고수부지
카메라 가방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고,
큰길로 걸어 나오는 길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주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한여름 햇살에 얼굴은 벌겋게 익고...
속은 모래가 쓸고 다니고... 돈 한푼 없이 지하철을 몰래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카메라 가방과 휴대전화를 맡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퇴계로 극동빌딩 근처에서 퇴근 무렵 카메라와 휴대전화기를 돌려 받았다.
얼핏 그 전날 친구들과 헤어지고 어느 건물 계단에 잠깐 앉았다
빈 택시가 와서 잡아탔고,
의정부를 외치자 의아해 하는 택시기사의 표정이 생각나고,
앞자리 콘솔박스가 택시의 그것이 아니라 일반 승용차의 그것이라는 것과
뒤를 돌아보니 꽃다운 여자 둘이 타고 있었다는 기억 뿐.
근 6년 만의 일이었다.
6년 전에는 작가협회 사람들이랑 인사동에서 치사량의 술을 마시고
종로5가 의정부행 심야버스 정류장에 갔었나 보다.
약국 계단에서 자다가 카메라와 책 몇권이 들어 있는 배낭을 도둑 맞았다.
치사량을 마시고도 본능적인 귀소본능으로 집에 돌아오고는
했는데, 길에서 잔 최초의 일이었다.
남들에게야 입문용 카메라로도 잘 쓰지 않는 저가의 카메라지만
몇 푼 안되는 원고료 아껴서 산 소중한 카메라를 잃어버렸으니
카메라도 카메라려니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필설로 전할 수 가 없다.
사업 할 때 수입의 1/10도 안되는 한 달 원고료에
자꾸 위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이란 자학에
며칠을 괴로워 했다.
당장 취재를 가야 하는데 카메라가 없으니...
그나마 안면이 있는 선배 작가에게 카메라를 빌리기로 하고 만나서
어렵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주태백 한테야 일상 다반사지 뭐 그것 가지고 자학까지 하고 그러냐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한번은 출판사와 집필계약을 맺고 뒷풀이 술자리를 대학로 인근에서 가졌단다.
글쟁이 주제에 양주 잔을 부딪칠 일이 그런 자리 말고 없는지라
간만에 과음을 했단다.
기분 좋게 마시고 잠을 자는데
‘ 파란 신호등이 켜졌으니 건너시기 바랍니다.’
라는 기계음이 들려 꿈인가 싶어 눈을 살짝 떴더란다.
웬걸 대학로 중앙 가장 넓은 횡단보도가 앞에 펼쳐져 있고
출근시간에 우르르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간밤의 일을 정리해보지만
숙취로 정신없는 머릿속에 생각의 가닥을 잡을리 만무하다.
빨리 이 쪽팔리는 상황을 모면해야 하는데
그 순간 “ 파란 신호등이...” 횡단보도의 기계음
벌떡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군중 무리에 휩싸여 길을 건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송에서 잘 나가는 선배작가도 저런 경험이 있다는데
그러면서 이어지는 함께 나온 동료 작가들의 과음 백태
바위라도 등에 지고 있던 며칠간의 압박감이 일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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