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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

오체투지해무 2007. 7. 16. 11:03
 

 


백두산.

분단된 민족에 대한 그이들의 적나라한 연민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 땅에서 숱하게 뿌리고 다닌 연민을 같잖고도 창피하게 여겼다. 그이들이 우리보다 조금 못 입었다고, 조금 덜 정결하다고, 조금 작은 집에 산다고 여길 때 마다 아끼지 않은 연민은 이제 그이들로부터 받고 있는 연민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도 천박스러운 것이냐.

돌이켜보니 우리 세사람의 ‘호곡강’은 다 달랐지만 결국 한 뿌리에 닿아 있었다.


네팔

이대의과대학 정신과 의사 이근후박사 “ 신은 우리들의 입맞춤에도 있다.” 내 시야에 들어온 은퇴한쿠마리 단양은 무표정한 얼굴에 거의 카타토니아(긴장성 증후군을 나타내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에 가까운 자세로 삼십팔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니 인간적인 연민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신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내가 살아 있는 신을 향해 야릇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신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워 팽겨쳐논 인간의 짓거리가 미워서 였을 게다.아무리 선이라고 우겨도 쿠마리는 오랜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둔 탓인지 정상인으로서의 사고나 감정, 행동 판단과 현실감을 이미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