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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오체투지해무 2011. 3. 8. 23:49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 철학의 아버지다. 그는 항상 대결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소크라테스 본인은 글 한줄 쓴 것이 없다. 그 제자인 플라톤이 쓴 『대화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하고 있는 말, 그것을 소크라테스의 것으로 재구성 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초기, 중기, 후기 세 시기로 나뉜다. 똑같이 소크라테스가 나오지만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 플라톤이 젊을 때 쓴 것이 역사적인 소크라테스에 가깝겠고 후기는 아마 자기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재구성된 모습이 소크라테스다. 이른바 4대성인, 예수, 부처, 공자는 자기가 직접 쓴 것이 없다.

 

▲ 소피스트

플라톤의 『대화편』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늘 소피스트들과 싸우고 있다. 소피스트란 어떤 사람인가. 철학, philosophy는 philos+sophia다. philos는 ‘사랑한다’는 것이고 sophia는 ‘앎’이다. 소피스트Sophist는 sopiha를 다루는 사람ist이다. 앎을 다루는 사람, 선생이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아테네가 융성기로 들어가던 시기인데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던 시기다.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큰 고민할 필요 없으니까 다들 아테네 민주정치에 참여해서 정치적으로 출세하기를 원했던 시대였다. 그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소피스트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교양과 웅변술이다. 웅변술과 수사학을 가르치던 것이 소피스트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기법, 테크닉을 가르쳤다. 이른바 기승전결 혹은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논증적인 구조를 닦은 것이 소피스트다. 여기서 논리학이 발전한다. 논리적인 테크닉, 특히 수사학적인 테크닉이 발전하는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 스승과 제자의 패러독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제자가 스승 소피스트에게 배우고 실력이 늘었다. 소피스트가 이제 마쳐도 되겠다고 하면서 거액의 수업료 청구서를 보낸다. 그런데 제자가 그것을 보고는 자신이 배운 게 없는데 왜 돈을 내야 되냐며 재판을 한다. 당시는 본인들이 직접 자기의 주장을 하고 배심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판결을 내렸다. 스승이 말한다. ‘불쌍한 놈아, 네가 어차피 나에게 돈을 내야 된다. 내가 재판에서 이기면 어차피 돈을 받을 것이고 만일 진다고 해도 네가 돈을 내야 된다. 왜냐면 내가 지면 네가 나보다 훨씬 말을 잘한 것이기 때문에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배운 게 많다는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도 질세라 말한다. ‘불쌍한 스승님, 나는 어차피 돈을 안 내도 됩니다. 내가 이기면 당연히 돈을 안 내도 되고 내가 지면 내가 말을 못해서 진 거니까 별로 배운 게 없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돈을 내겠습니까.’ 일종의 딜레마를 이용한 논법이다. 이 시기에 논리적인 테크닉들이 굉장히 발전한다.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소피스트들이 그런 테크닉을 가르치고 고액의 돈을 받고 따라서 귀족자제들이 소피스트들에게 배웠다. 소피스트와 아테네의 귀족층은 일종의 하나의 인맥을 형성하는 그런 구조가 되었다. 그런 때 혼자 외로이 떠돌던 철학자가 소크라테스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부자여서 안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먼저 길에 보이는 사람에게 묻고 다녔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귀납적이다. 그렇게 소크라테스가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본인이 스스로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자신의 철학방법을 산파술이라고 했다. 산모의 출산을 돕듯이 본인이 스스로 깨닫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이가 돈을 내려고 하면 소크라테스는 가르쳐준 것이 없다며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술상을 차리라고 해서 만날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가 바로 심포지움symposium이다. 그렇게 함께 모여 앉아서 먹고 마시며 대화를 했다.

 

▲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 선생이 필요한 이유

저자는 교과과정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철학공부가 아니라고 한다. 진짜 철학 선생은 소크라테스처럼 문제를 던지는 사람이다. 문제를 푸는 건 본인 자신이다. 그게 바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고 그래서 철학은 본인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이란 말의 뜻은 앎을 ‘배우는’것이 아니고 앎을 ‘사랑’하라는 얘기다. 선생이 하는 역할은 문제를 던지는 거다. 문제를 푸는 건 누군가. 본인이 풀어야 된다. 그게 바로 소크라테스 산파술이고 그래서 철학은 본인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이란 말의 뜻이 앎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앎을 사랑하는 얘기다. 에로스 신화에서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빈곤과 풍요, 충족과 결핍 그 사이에 있는 존재다. 따라서 사랑의 본질은 뭐냐면 빈곤에서 풍요로, 결핍에서 충족으로 끊임없이 가려는 특성, 그게 사랑이다. 그래서 앎을 스스로 끊임없이 추구해가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원형이다. 철학은 어떤 면에서는 정답이 없다. 앎을 ‘추구’하는 거지 앎을 ‘획득’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철학의 운명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philos란 표현을 쓴다. 끊임없이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점검하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같은 과정을 통해 철학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