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月下獨酌

안개 속 흥국사

오체투지해무 2009. 2. 12. 16:41

 

2006. 1.

 

 

다시는 안보리라 다짐했다는 김수철의 노래처럼 다시는 안볼것 처럼 헤어지기를 몇 번.

지조도 없이 헤푼 마음에 연락이 오고,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북한산 북한산성 쪽을 드나든지 이십 여년이 지나도록 흥국사 입구라는 버스 정류장 명으로만 알고 있던 곳으로 발 걸음을 한다.

 

도대체 그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와 애증과 번민, 하루에도 수백번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번뇌의 근원.

인파로 복잡한 거리에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확연한 그녀의 윤곽이 시야에 들어오자 감출수 없는 기쁜 마음에 입꼬리 부터 올라간다.

잘지냈느냐는 형식적인 안부인사에 서로의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설레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안온함이 둘 사이에 가득찬다.

 

숲과 숲 사이로 길은 이어지고, 흥국사 일주문 앞에서 차를 세워야 한다.

일주문 앞 약수터에는 꽤 여러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

 

약수터를 둘러싼 숲에는 정오를 한참 넘은 시각임에도 안개에 쌓여 시계가 30여 미터 정도.

안개가 찬 날이면 코끝에 익숙한 스모그 향에 독특한 내음이 섞여있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체취이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때  절의 뜨락에 드리워진 안개를 헤치고 여인 한명이 걸어나온다.

 

"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우십니다."

 

 여자를 옆에 두고 작업성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는 나의 입담에

내 편의 여자나, 안개를 헤치고 나온 여자 모두 멋적은 분위기가 된다.

 

" 혼자 들었다면 너무나 근사한 말인데, 옆에 여자분이 있으신데 그런말을 하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일주문이 있는 약수터로 향한다.

 

 

흥국사의 존재 여부는 군 복무시절인 85년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우이동, 정릉 쪽의 북한산 코스만을 다니다 90년대 중반 북한산성 계곡 코스를 자주 다니며 주말이면 늘 지나치고 말았던 곳.

탈옥수 신창원이 그의 차를 몰고 밤을 보내다 신고를 소홀히해 놓쳤었다는 곳으로 흥국사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도 흥국사 일주문 안으로 발길을 하게 된것은 6~7년 후.

 

다시는 안보리라던... 이제는 추억 속에서도 조차도 들여다 보기 싫다던 그 감정이 안부를 묻는 단 한통의 전화에 스르륵 날아가고 말았다.

 

흥국사는 신라시대 문무왕 시절 북한산에 와 계시던 원효대사가 한미산 자락에 신령한 기운이 있는 것을 예지하고,

이 터에 이르니 약사여래가 발현하여 절을 지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져 오는 오래된 사찰이다.

절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은 듯 포근한 형상에 절의 방향도 남동쪽을 향하고 있고,

불사도 이루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확장 할 수 있는 부지를 지니고 있는데도 부속건물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한 감사함이 인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남동쪽이 북한산으로 막혀 있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북한산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도 절터 부지보다 커다란 가람이 들어서고, 철불이 들어서는데에는

일반인이 알지못하는 뭔가가 있나보다.

 

본전인 약사전, 요사채, 법당 등은 수도권에 있는 사찰 중에서도 검소하다 할만하다.

약사전 뜨락을 가로지르면 무슨 용도에서인지 건물부지의 서너배 쯤 되어 보이는 공터가 조성 되어 있고,

지은지 얼마안되 보이는 절의 부속건물이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안개는 거칠줄 모른다.

 

마음은 아직도 일주문을 서성이는데 몸은 벌써 뜨락에 들어서 있다.

같이 어깨를 맞대며 걷는 사이 숨소리를 가다듬을 수 없을 만큼 몸이 달아오른다.

육체는 정직한것인가, 헤푼것인가.

 

스님 한분이 말을 건넨듯 한데 기억나는 대목은 한마디도 없다.

법복을 입고 성큼 성큼 걸어와 우리 둘에게 제법 말을 건넨 듯 한데, 꿈결 같다.

 

습기가 많은 탓에 옷섶을 파고 도는 냉기로 체감온도를 뚝 뚝 떨어트린다.

날이 을씨년하다는 핑계로 송추 진흥관에서 짬뽕을 먹었던 듯 하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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