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사진관/portrait

인사동 낭인

오체투지해무 2021. 11. 1. 22:03

서울 북인사물길 2012. 6.
이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97년 11월에서 98년 2월 사이 따스한 날 20년 전 종로학원이 있던 뒷골목 허름한 식당 앞에서이다. 친구들과 고기나 탕 안주로 술을 마시고 나오는 문 앞 쓰레기를 뒤지는 그를 보고, 식사 뒤 입가심으로 나눠주는 요쿠르트를 어찌하나 싶어하면서 문을 열고 나오다 문 앞 쓰레기를 뒤지는 그를 본 것이다. 걸인이거나 광인이거나 그 눈빛은 영롱했고, 보석에서 내뿜는 빛에 매혹 된다면 저런 빛이리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한 그 빛이었다. 맨 정신이었다면 느끼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했을 그의 행동에 손에 들고 있던 요쿠르트를 그에게 건냈다.

옆에 있던 감수성 예민한 연극하는 친구가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쓰레기를 뒤지던 낭인은 내가 건넨 요쿠르트를 보고 경멸하듯 나를 쳐다 보고는 다시 자기가 하는 일에 열중했다. 일별 짧은 순간이었지만 연극하는 친구와 나와 낭인의 눈빛이 한번씩 교차했고, 세명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느낌이 찾아 들었다.

나는 이내 내가 마시지도 않는 요쿠르트를 내민 손이 창피했고, 연극하는 친구는 그 무안한 시간을 넘기려고 " 에이 거지도 자존시이 있지."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실이었고, 전달은 명료했다.

몇 년 후 어떤 일로 풍문여고 정문 쪽에서 정독도서관의로 걸어 들어 갈 일이 있었다. 담벼락에 세워진 사용한지 오래되어 보이는 리어카에 어떤 걸인이 드러누워 멀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사이, 말끔한 정장차림의 초로의 남자가 빵과 음료수가 들어 있음직한 비닐봉지를 그에게 건네는 것이 보였다.

동냥이라기 보다, 마음 먹고 제공한 선물 같은것이었고는 느낌을 받았다. 나보다 키가 훤칠한 초로의 말끔한 정장차림의 비닐봉지가 그에게 내밀어졌고, 그 걸인은 가소롭다는 듯 초로가 건네준 빵과 음료수를 든 비닐봉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초로신사의 눈을 잠시 맞춘 뒤 다시 자기가 보던 곳에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은 IMF 무렵 종로학원이 있던 그 뒷골목에서 봤던 바로 그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그에 몇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의 기골은 쫄아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곤 그 길을 오갈때 마다 동냥이나 적선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는 했다. 2000년 겨울 서울의 한낮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곤두박치던 그때 난 발에 입은 화상으로 거진 석달여를 출입하지 못했고, 그 이듬해 봄에도 발걸음이 온전치 못해 볼일 마져 못볼 때였는데도 인사동 첫 나들이에서 그의 존재 유무가 궁금했다.

그 추운 겨울을 어디서 보냈는지 이듬해 봄에 그는 그 담벼락 아래에서 뭔가를 먹거나,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얼마나 날수 있을까?

올 6월 사진 속의 그를 보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모습을 담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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